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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우물 Jul 05. 2020

패닉

달. 김수영. 문학과사회. 부드러움의 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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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푸는 건지 여위는 건지 모를 완벽한 구체에서 약간 이지러진 달이 보고 있었다  

터벅 터벅 내 발 끝에 긴 그림자 끝나는 곳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음료가 조금씩 남은 일회용 플라스틱 컵들과 구겨진 과자봉지와 쓰다버린 방역 마스크들 무더기 옆에

그냥 쓰레기 옆에 앉아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

하지만 편의상 그 쓰레기 더미 옆에

마치 쓰레기가 되고 싶다는 양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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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소각장 옆이 하루 중 가장 편했던 날이 있었다  

주번이 아닐 때도 그 앞에 서서 쓰레기가 쌓인 것을 바라볼 때가 있었다

쓰레기의 면면은 가관이었다

쓰레기는 한무더기 였지만 곧 소각될 쓰레기였다

창밖으로 쓰레기 태우는 냄새가 날 때는 집에 가고 싶었다

돌아가서 편히 누울 집이란 걸 가지지 못했으면서

쓰레기들의 집은 소각장이었다

나를 태우고 또 태우면서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썼다

그 백지들에 쓰여진 많은 것들이 놀랍게 그 후 이루어졌다  

아니 쓰여진 것들은 의식의 수면 아래로 차곡 차곡 가라 앉았고 무의식은 잊지 않고 나를 이끌고 먼 곳으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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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한 없는 괴로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김수영의 거미 라는 시를 가끔 기억 한다.

서점에서 책을 보다가 갑자기 그것이 또 왔다. 처음엔 그냥 땀이 나는 줄로만 알았다. 주위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가만히 버텨보았다. 눈 앞이 하얗게 변하는데 숨을 고르면서 계속 숨을 고르고 물이 있는 곳을 물어서 찾아가 마시고. 계단식 분수대 옆에 앉아서 좀 울었다. 이럴 때 우는 게 살길인 이유는 숨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숨길을 열려 울음이 나오는 거고 나는 자동으로 눈물기계가 된다  

이번엔 그것을 혼자 해결했다.

그리고 일의 전말을 언니에게 고했다. 고해 하듯 말했다. 자꾸 마음이 걸려 넘어지는 때론 맨홀 같은 그곳에 빠지는 지점들이 보여주는 마음의 좌표에 대해 

이걸 어떻게 고치나 가 아니라...

무엇을 취하거나 버려서 고치나 가 아니라..

오늘 너 그건 병이 아니라 재능이다 라는 말을 들었다. 천부적 재능이라고. 울다가 웃었다. 서점 셔터가 닫히는 걸 보면서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분수의 물 소리를 들으면서 잠시 웃을 힘을 충전하고 오래 걸었다.


달을 보며 걷는데 노래가 되려는 음표들을 떠올렸다.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새로 쓸 이야기가 로그인 하듯 의식에 올라왔다.


오늘 산 책의 최종심엔 내 이름이 없었다. 언급만 있어도 기뻤겠지만 없어도 괜찮았다 어차피 될 때까지 할 거니까 그리고 그건 그냥 또 시작일 뿐이니까 가야 할 길이 어디 인지를 알고 그 길이 아주 길고 멀 다는 것을 아니까 그 목적지에 닿는 게 중요하다기 보다 희망차게 여행하는 일이 먼저라는 걸 안다 이 여행이 끝나는 날은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일 것이므로  


작고 사소한 통증은 토민이를 안고 쓰다듬으며 잊었다 모든 하루의 끝이 남긴 통증이 부드러움 속에 용서되며 녹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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