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구아르와 책방할아버지

by 곽소민

전주 오프라인 낭독회 대본을 어제 새벽 썼다. 어릴 때 1년 365일의 동화가 녹음된 테이프를 쉴 새 없이 돌려 듣고, 따라 외던 기억이 생각났다. 그 동화 낭독 테이프를 좋아했던 이유. 그건 오로지 목소리 만으로 눈 앞에 거대한 세상이 펼쳐지고. 머리 속은 드넓은 우주처럼 확장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 작은 테이프 속 목소리는 삶이라는 모험에 불을 지피는 강력한 영감이었다.


더 큰 세상을 보여주는 도구인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항상 변치 않았다. 사랑했던 작가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여행도 했고.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 살고 있는 것도 모든 작가들과 책 덕분이라 여기며 감사하고 있다. 책은 좋은 스승이고, 삶의 촉매제이자 삶을 이끄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이제 낭독을 만나 어린시절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던 목소리처럼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는 낭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책의 배경, 수레국화 요양원에는 또 다른 스파르타식 낭독수업이 있다. 다양한 빛깔과 형태의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책을 덮은 뒤에 ‘불과 숨 그리고 모험’ 이라는 세 단어가 마음에 남았다. 제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진하게 밑줄 그었던 구절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P.50~52

나는 그가 불타오를 때가 정말 좋다. 그럴 때 그의 모든 것이 젊음을 되찾는다.

“나는 변화와 모험을 선택했어. 책을 통해 최후의 투쟁에 대한 내 생각을 널리 퍼뜨리고 싶었지. 다 지나고 나서 보면 선명하게 보이지만, 걷고 있는 당시에는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보이지 않아. 그저 본능이나 직관에 따라 걸어갈 뿐. 하지만 많은 저자들의 책을 읽음으로써 나는 그들에게서 빛을 얻었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

뭔가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느낌 가슴께가 기분 좋게 화끈거리는 느낌이 든다. 정말이다.

나는 전과 다른 방식으로 숨을 쉰다.


P.117-118

“네 목소리가 열에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전해진다면, 그걸로 이미 성공한 거야. 자신감을 갖고 당당해져! 너는 영화를 만들어내야 해. 네가 책을 읽을 때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장면들을 떠올리듯이, 그들 역시 귀로 듣는 장면들을 눈으로 보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호흡을 해 그레구아르, 숨을 들이마셔! 배에 힘을 주고!”

“그게 무슨 상관이 있어요?”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 하는 거야. 프네우마. 공기의 흐름. 너의 숨결에서는 문장의 구문구성 냄새가 풍겨나와야 해. 너 자신, 너의 호흡, 너의 프네우마는 언어 도구들의 매개물이야. 그 동기가 멀리 퍼져나가 공유되기 위해서는 호흡이 필요해. 별빛 한 점 미치지 않는 땅끝에 서서 칠흑 같은 어둠을 향해 ‘거기 누구 없어요?’ 하고 외칠 때처럼.”


P.223-227

“인간이라는 존재는 움직임 그 자체란다. 네 주변을 보렴. 저기, 저 바깥세상을 봐!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보라고. 진짜 인생 말이다. 진짜 인생은 춤을 춰! 헤엄을 치지! 뛰어오르고! 걷고! 움직여! 내가 저 바깥세상에서 네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안다면, 나는 죽음을 맞이할 힘을 얻을 거야.”

“그러니까 저는 할아버지를 위해 대신 걷는 거군요”

“어쨌든 내가 너한테 바라는 건 그거야. 그 대수도원 성당과 그녀가 있는 장소에 가보면 너는 저항할 수 없을 거다. 숨이 막힐 거야. 숨을 쉬어. 너의 정신이 아주 크게 확장될 거야.”

“그녀의 눈은 돌로 만든 책을 보고 있지 않아. 위쪽을 향하고 있지. 생각에 깊이 잠겨 있어. 어쩌면 여왕으로서 그녀가 살아온 인생에 관한 책을 곱씹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죽은 뒤에도 후세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혜안을 지닌 사람이었지. 나에게 중요한 건, 그녀의 대담한 용기를 기리는 거야.”


P.302

피키에 씨 당신의 가설은 확인되었어요. 알리에노르 와상은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면서 눈을 뜨고 있어요. 당신은 제게 말하셨지요. 그건 육신의 부활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암시한다고요. 아마 당신의 두 눈은 디알리카가 당신을 향한 애정을 가득 담아 감겨드렸겠지요.

“정말 먼길을 걸어왔구나. 하지만 멈춰서는 안 돼. 문학은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언젠가는 바로 그 문학의 모험에 뛰어들어야 한다.”라는 당신의 말씀에 따라 제 인생에서 Pauca Meae” 내게 남아 있는 건 거의 아무것도 없다”라는 그 글귀를 확장시켜나갈 수 있다면, 당신은 그것으로 만족하시겠지요.”


- 마르크 로제,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그레구아르와책방할아버지 #송정희낭독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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