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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우물 Aug 11. 2016

사료를 먹일까? 건초를 먹일까?

반려동물로 토끼 키우기


동네에 토끼를 키우는 약국에 프로바이오틱스를 사러 들렀다.

가격과 효능만 물어보고 다음에 살 예정이었지만, 프로바이오틱스가 면역강화, 천식에도 좋다는 말을 듣고 안살 수가 없었다.

주로 동네 마실 나가면 토끼보러 가는 곳인데, 갈 때 마다 저 에어컨 시원한 가게 안에 좀 넣어주면 좋겠다 싶었다.


항상 약국 문 앞에 있던 아로와 나민이는 오늘 푹푹 찌는 날씨 덕에 가게 안으로 모셔져 있었고, 보는 내가 다 시원해졌다. 에어컨 아래 두 마리 약국토끼는 세상 편한 얼굴로 졸고 있었다.


별로 나눌 말은 없지만 계속 '안녕?' 하며 주의를 끌어보았다. 하지만 '너 같은 손님이 어디 한 둘인 줄 아니?' 하는 눈빛으로 쓱 쳐다보더니 고개를 휙 돌려 건초를 뜯는 '아로'. '나민'이는 졸리니 자길 좀 내버려 두란다.


그때, 문자가 왔다. 토민이 줄 제네시스 티모시 사료가 곧 배송될 예정이라고.

카페에서 책을 좀 읽고 들어가려 했지만 저가 좋아하는 사료가 오늘 오는 지도 모르는 토민이를 생각하니 얼른 받아서 주고 싶어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택배는 집에 온 뒤 곧 도착했고, 토민이는 봉지를 뜯기가 무섭게 달려들었다. 그릇에 담아줘도 제네시스 봉지에 턱칠을 하며 '이거 내꺼다' 하고 영역표시를 한다.


토민이는 어릴 때부터 내가 무슨 봉지에 든 것만 흔들어도 잽싸게 달려오곤 한다. 주로 봉지에 든 것들은 티모시 건초보다 달콤하고 맛있다는 걸 아는 것이다. 그래서 침대 밑에 들어가 나오지 않을 때면 손에 잡히는 아무 비닐봉투라도 부스럭거리면 얼른 뛰쳐나온다. 하지만 그게 먹이가 아니란 걸 알면 다시 오지 않는 영특함도 갖췄다.


사료를 먹이면 일단 참 편하다. 그냥 그릇에 담아 주기만 하면 끝. 늘 그릇 바닥까지 깨끗하게 먹어치우고 더 달라는 눈빛을 보내는 건 사료를 줄 때 만이다. 하지만 토민이의 건강을 생각해서 사료는 가끔씩 주고, 건초는 하루에 두 번 듬뿍 담아준다.

사실 건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담아 놓더라도 바닥에 버려지거나 흘린 오줌에 오염되버려 상당수 버리게 된다. 줄기가 억세고 맛이 없으면 아무리 그릇에 담아도 휙 낚아채서 바닥에 버린다. 그래서 여러가지 이유로 한 그릇을 퍼다주면 1/4 정돈 버리는 셈이다. 그걸 또 일일이 쓸고 닦고 치워야한다. 그러니 건초 급여는 토끼노예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건초를 주지 않을 수는 없으니 사람들은 더 머리를 써서 헤이볼을 만들어 달아주거나, 락앤락 뚜껑에 구멍을 내서 넣어주거나, 건초를 볏단처럼 묶어서 토끼가 뽑아먹게 한다. 난 여러 방법을 써 본 뒤 최근에는 큰 플라스틱 통에 건초를 담고 집게로 토민이 집에 고정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다.


토민이는 두살 정도까지는 건초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때 사료와 알파파 건초를 주면 알파파에는 거의 입을 대지 않아서 바나나를 건초에 묻혀주곤 했다. 그러면 조금 먹는 시늉을 했다. 그 후로 사료를 좀 끊고 티모시 건초를 먹여보려고 아예 사료를 주지 않았더니 제 풀에 지친 듯 건초를 먹기 시작했다. 왜 진작 그런 방법을 쓰지 못했나 싶었지만, 마음을 먹는 게 쉽지 않았다. 좋아하는 걸 더 많이 줘야되지 않을까? 와 건강에 더 좋은 걸 줘야겠지? 두 마음의 갈등 속에서 결국 모질게 사료 끊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건초를 주로 먹이다보니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회사일로 바빠서 건초 외에 과일이나 야채를 자주 챙겨주지 못한 어느날 토민이를 품에 안다가, 몹시 말랐다는 걸 알았다. 무슨 병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놀라서 '차오름 동물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토민이는 전체적으로 아주 건강하다고, 잘 키웠는데, 몸무게가 보통 이 나이 또래 토끼에 비해 2kg이 조금 못미친다고 했다.  5월에 잰 토민이 몸무게는 1.98kg. 배를 만져보면 홀쪽하게 들어가 있었다. 사료를 계속 먹이다보니 소변 본 후 토끼 변기에 얼룩도 남고, 냄새도 좋지 않고, 다른 집 토끼들은 다 황금 응알을 본다던데 변도 늘 검은색이라서 건초 급여로 바꿨다는 이야기를 선생님께 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사료는 오히려 티모시외에도 비타민 미네랄이 들어가있어서 토끼 영양 균형에 좋다고, 사료가 몸에 좋지 않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짚어주셨다. 그리고 변 색깔은 먹은 음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검은 변이라고 나쁜 건 아니고, 사료를 먹으면 나트륨이 배출되어서 소변에 결정이 생기는 것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하셨다.



그제서야 사료에 대한 오해가 풀렸고, 일단 토민이가 더 건강하도록 건초와 사료 그리고 야채를 많이 줘서 이제 다시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그래도 사료만 주거나 건초만 주는 방법 모두 영양 과잉이나 영양 불균형을 불러올 수 있으니 둘을 적당히 섞어서 급여하고, 또 야채와 과일을 간간히 주는 게 바람직 할 것 같다. 나는 제대로 안 챙겨 먹으면서 토끼 식사에는 이렇게 신경을 쓰니, 난 아마도 토끼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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