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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우물 Feb 19. 2020

꿈 - 풀밭 위의 소풍

20170218

그러니까,

모두 몇 달 전 선명하게 보았던 꿈 속에 답이 있었다. 살다가 마음이 지쳐 있을 때, 나에게 비일상적인 일들이 많이 생기거나 보인다. 그것을 재능이라고 부른다면 좋겠지만, 어쩔 때 그건 죽을 때 까지 가지고 갈 지병 같기도 하다.


어느 순간 나의 현실은 날마다 풍랑이 치는 바다였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서 어디로 가는 지도 잠시 잊은 채, 현실의 나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화장도 지우지 못한 채로 누워, 밤을 지새며 생각에 몰두해 있었다.

답을 찾을 수 없는 먼 과거의 문제를 모두 끌어 안고, 수 없이 많은 시간들을 새로 살며, 과거의 실마리들이 한 순간에 풀리던 일이 찾아왔다. 나는 이 일을 계속 써서 더 명확히 알아내고 싶다. 그게 무엇인지. 나는 어떤 문을 연 것인지. 그 일 후 한동안 개운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과거를 재정리하고 이해했다면, 앞으로의 일들을 몹시 알고 싶었고 또 앓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 꿈을 꿨다.

소풍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모든 재료들을 정성 껏 준비해 만들어 넉넉히 채웠다.

발걸음은 어쩐지 가볍지 않았다. 그것이 소풍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원은 한적했고, 새들도 조용히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분수대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몇 마리의 토끼가 공원을 가로 질렀다.


한 사람은 하얗고 지친 얼굴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흔들었고, 내게 흔들어 답하는 그 사람을 가만히 서서 바라봤다. 공원의 가장 울창한 배경을 등진 그 사람을 나는 끝까지 신뢰했다.


소풍 자리는 간소했다. 빨간 체크 무늬가 들어간 피크닉 담요를 깔고, 세 명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가장 어여쁜 사람은 단정한 자세로 나를 맞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웃지 않고 있는 모습에서 여러 근심들이 읽혔다.


한 사람은 책을 들고 있진 않지만 책을 읽는 자세로 자리의 끝에 다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그는 안경 너머로 슬쩍 나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인사를 대신 했다. 나는 그가 거기 있다는 사실이 그냥 좋았다. 아무 말이 없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살다보면 아주 드물게 만난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흥미를 느끼지만, 모두와 잘 되진 않는다. 그들은 나와 다르지만 아주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심연 속에 심연이 겹쳐 빛나기도 하지만 깊고 검고 푸르게 썩을 수도 있다. 그런 만남은 때론 신성하지만 가혹하기도 하다. 몇몇의 얼굴이 떠오르고... 익숙한 듯 무섭다.


그 때 고개를 돌려 옆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누워 날 바라보던 한 사람 때문이다. 나는 괴로운 마음을 겨우 추스렸다. 그리고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편안해 보이던 얼굴을 나는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편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돕지 않아도 그 사람은 잘 할 것이라는 걸 알았고, 그것 만은 믿었다.


그저 네 사람이 있었던 자리에서 나는 많은 것들이 나를 뒤흔드는 것을 느꼈다. 나에겐 소풍보다, 공원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샌드위치를 싸간 도시락을 사람들에게 건내고 뒤돌아 공원을 빠져나갔다. 슬펐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원은 잿빛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나는 나의 구두 조차 시멘트빛으로 물들자 벗어버리고 뛰어나갔다.


때문에 나는 이미 알고 있었고, 원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두려웠다. 공원에는 먹구름이 몰려 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알려주고 싶었지만 두려워서 말할 수 없었다.

비가 오면 그냥 맞겠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을테고, 나무 그늘과 우산 등을 찾아 분주히 자신의 갈길을 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생의 카르마 작용이 옮겨감에 따라서 공간을 바꾸고 인연들을 끌어 당긴다.

나는 여기가 끝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는 아직 많은 재료들이 남아 있어 충분한 도시락을 싸고 소풍의 날들이 남겨져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공원을 빙 돌아 산책을 했다. 공원은 호수와 이어져 있었고, 나는 호수의 테두리를 바라보았다. 세계지도 같은 둘레를 걸어 나는 오각형의 별 앞에 섰다.


더 이상 공원이 생각 나지 않았지만, 심장 속에 또 한개의 방이 하나 생겼다는 것은 알았다. 한 아이가 거기 있었다. 나는 내 심장의 고동과 함께 걷는 그 아이를 지금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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