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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우물 Feb 19. 2020

종묘. 필명. 춤.

20170222

+ "장식과 기교를 배제하여

단순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


단순함 속에는 삶과 죽음의 깊은 의미를

엄숙함 속에는 왕조의 신성한 권위를

담았다. "


종묘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오늘 내가 들은 것들에 대해 말씀드렸다. 내색은 안하지만 기쁜 목소리였다.


종묘를 거닐면서, 나보다 먼저 있던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신로를 밟지 않고 걸으면서 왕과 왕비의 행렬을 떠올렸다.

정전을 바라보며 한참 서 있었다. 빗소리와 중국어 가이드의 선하고 고요한 목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뤘다.

티비에서 보고 라디오에서 듣던 종묘 제례와 제례악이 보이고 들리는 듯한 공간이었다.

절제된 동작의 제례무도 어디선가 나타나는 듯 했다. 오래전 봤던 그 동작들을 기억한다. 소름이 돋을 만큼 엄숙하고 정제된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 춤을 제대로 출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른다.

우리 나라에서 춤을 잘 추었다는 사람들의 영상 자료들을 다 찾아봤던 일이 생각났다.


다시 찾아볼 것.


두 명의 사람들이 제례무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나가자 내 머리속을 채우던 그림들은 허공으로 곧 사라졌다. 뇌 속에 시원한 박하맛이 났다.


정전 악공청에 앉아서 빗소리도 아무 것도 듣지 않고 지금은 들리지 않는 음악을 떠올려봤다. 지금은 악공들이 쉬는 시간. 악기들을 조심히 손질하는 소리 사이로 현대음악과 같은 불협의 화음들이 아름다웠다.

한 중국 인사가 서양의 클래식 공연을 감상한 후 소감을 묻자,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들었던 음악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했다한다. 악기들을 튜닝하는 그 소리. 조화를 찾아가는 소리. 음과 음 사이를 오르는 소리. 그 속에 진짜 음악이 있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계절이 시작하는 달에 제례를 공개한다고 하니, 보러갈 것.



늘 길을 걸으면 꼭 노래를 하던 버릇이 오늘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생각이 명료해졌기 때문이다.

새로 알게된 내 이름 하나를 계속 부르며 종로를 걸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하지만 이내 내가 앞으로 해야할 일들과 도전할 일들의 목록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느 회사에서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전에 다니던 회사의 피디에게도 또 전화가 왔다.

다들 내가 쉬고 있는지 어떻게 안 걸까...

얼마나 쉬고 다시 일을 할지는 아직 가늠이 되지 않는다.

다만 전보다는 좀 여유를 가질 수 있을 정도로만.

A project 시나리오 작업 몰두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저 살고 있는데, 많은 일들이 다가 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두근두근-

괜찮은 기분이다.


+ 선생님께 필명을 받았다. 필명을 받기 전 나는 꿈에 선생님이 나왔던 이야기를 해드렸다.

꿈에서 받은 필명 이야기에 조금 놀라며 들으시더니 그건 좋은 꿈이라고 볼 수 있다 하셨다.

그리고 내가 꿈으로 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예지를 가진 사람들은 더러 있다고 했다. 그런 일이 많은지 물으시기에 어릴 때, 자주 그러기도 했다 말씀드렸다. 그것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겠다 하셨다.


필명은 일주일을 넘게 생각하고 지으셨다고 한다. 그동안 깊이 보았는데, 그 생각이 전해져서 꿈에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하셨다.

선생님을 찾는 몇몇의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나도 누군가가 한 생각이 내게 말도 없이 전달이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했다. 선생님은 걱정할 건 없다고 하셨다.

나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나만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 남들이 나를 '틀리거나,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라고, 단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보듬고 다독이며 함께 살아가고 싶으니까.


어차피 오해는 그들의 몫이고

이해는 나의 숙제.


선생님은 내 속에 이런 바람을 아셨는지,

바다처럼 세상을 아우르는 리더가 되라는 뜻으로 '윤해' 라는 이름을 주셨다.

커다란 필명 선명증서에 쓰인 이름을 보니 낯설지 않았다.


'귀품'을 가진 이름으로 만드셨다 하시며, 나를 바라보셨다. 그 말에 나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고, 감사 인사를 드렸다.

그때, 내 속에 차분한 불빛 하나를 보았다.

그리고 어떤 뒷모습. 옛날 배경. 그게 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다만 그게 나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필명에 드는 비용을 조심스레 여쭸더니,

감독님과의 오랜 인연, 그리고 내가 작가로 성장할 앞날과 이루게 될 성공을 위해서... 선물로 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미 필명 작명비가 고가인지를 알고 있던 터라 할 말을 잠시 잃고 앉아있었다. 하지만 문 밖으로 배웅해주실 때 선생님을 보며, 정신을 가다듬고, 감사의 말씀을 세 번 드렸다.


왠지 그래야 해야할 것 같았다.

꿈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 내 뒷모습에 백 선생님이 하신

마지막 한마디 - '성공이 보인다.'

그 전에 하셨던 말씀은

'한국을 이끄는 인재가 되어 최고의 작가가 된다.' 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의 무게 때문에 놀라서 눈물을 흘릴 뻔 했다. 북돋아 주기 위해 하시는 말이신지 여쭸을 때, 아무에게나 한 적은 없는 말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사실 전에도 절 봐주신 어떤 분께 제가 작가의 길로 가며 원하는 글을 모두 쓸 수 있고, '정상에서 만나게 된다'" 라는 말을 들었지만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아 그때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선생님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건 그것을 채워서 완성해 나가면 되는 것이니,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정진하라고 하셨다.


지금 계획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들을 스스로 이뤄나가라고. 내 속에 그만한 뜨거움과 차가움이 있다는 말로 나는 알아들었다.


내가 얼마나 이룰 수 있는지

스스로 보듬고 나아가야겠다.


+한상률 선생님 현대무용 클라스에 조금 일찍 도착. 

성신여대 앞 한적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오늘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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