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동생의 조화로운 삶.
퇴사 후 세계여행

by 윤 Yoonher

여행은 삶을 변화시킨다. 변화의 진폭이 작든 크든, 어떤 파장을 갖고 있는지는 내밀한 마음만이 알고 있는 것 아닐까. 이탈리아를 20개월 동안 여행한 괴테는 그 전과 후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애써 괴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도 내 주변에도 있다. 연년생인 첫째 남동생, 결혼을 했고 아직 아이는 없다.


이제껏 살면서 부모님 속 한번 썩이지 않고 모범생의 삶처럼 보이던 그가 별안간 회사를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아무런 걱정 없이 “우와 좋겠다! 그래, 잘 다녀와.” 라고 한 사람은 조금 독특한 아빠와 나 뿐이었다.


괴테가 37살 생일을 마치고 홀로 도망치듯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한 것처럼, 하루키가 마흔 살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며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시간을 보낸 것처럼 아마도 그 즈음에는 우주가 흔들리는 경험을 하는 것 같다. 30대에 영원할 것만 같던 젊음이 그렇지 않다는 걸 실감을 하게 되는 경계선 즈음 되는 걸까. 이제까지 살아오던 방식을 돌아보고 버릴 건 버리고 단단히 할 것들을 챙기는 때.


동생은 비슷한 나이에10년을 다닌 회사를 홀연히 그만뒀다. 아쉬움은커녕 회사생활에 신물이 나는 모양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S전자 직장인의 삶은 피폐하고 고달픈 면이 많다. 적지 않은 연봉과 사회적 인정을 받지만 개인의 삶의 균형과 가치관을 유지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동생은 회사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도 떠나고 싶어 했다. 나쁜 공기, 비교, 경쟁, 답도 없는 쳇바퀴 같은 지긋지긋한 이 사회를 떠나고 싶어 했다. 진심으로 외국에서 우체부를 하면서 살고 싶다고 한 적도 있었다. 일이 삶의 중심이어서 결국 삶이 희미해지는 건 싫다는 뜻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애써 묻지는 않았지만 조용하면서도 자기주관이 뚜렷한 남동생은 오래전부터 이민을 결심한 것 같았다.


동생은 좀 특별한 준비를 했는데 해외생활을 해보지 않은 와이프를 1년 동안 호주로 보낸 일이다. 해외생활을 해보고 만약 좋다면 이민을 가자는 것이었다. 손수 어학원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며 와이프의 경험을 장려했다. 내 동생이지만 뭔가 독특하다. 와이프가 호주에 있는 동안 동생은 혼자 광어회를 떠서 책과 라디오를 들고 캠핑을 가는 여유를 보였다.


어쨌든, 이민 전초전으로 1년 동안의 세계여행을 준비하고 떠났다. 25kg짜리 배낭 하나씩 짊어지고 36개국을 누빈 용기는 가상했다. 캠핑만 100일 이상을 했고 노르웨이에서는 오로라를 기다리다 차에서 자느라 얼어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하와이에서는 3주 동안 캠핑비가 10만원이었다는 말엔 마냥 부러웠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는 와이너리에서 만찬을 즐기고,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먹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극과 극을 오가며 여행의 강약을 조절할 줄 아는 건 내제된 유연성, 그 사람의 본능이다.


동생은 공대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곧잘 한다. 세계여행을 다녀와서 가족들에게 들려준 처음 얘기는 온통 서양아이들과 싸운 얘기였다. 이를테면 장거리 버스여행에서 의자를 뒤로 젖히려는데 뒤에 앉은 독일 남자가 배낭을 다리 사이에 놔두는 바람에 의자를 움직일 수 없었다. 위 선반에 가방을 올려놓으라고 몇 번을 이야기 했지만 들은 체도 안하 길래, 일어나 따진 이야기.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에 놀랐을 표정이 상상이 가서 한참을 웃었다.


아프리카 주유소에서는 기름을 가득 넣어달라고 했는데 흑인여자직원이 알았다고 하고는 혼자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춤을 추고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그만 기름이 넘쳐버렸다. 흑인점원은 자기잘못이 아니라고 하면서 주유한 만큼 돈을 다 달라고 해서 대판 싸운 이야기. 동생 와이프는 세계여행의 목적이 마치 “세계와 논리로 싸워 이기기”였던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이 얘기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고집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순한 동생인줄 알았는데 어딘지 모르게 나랑 비슷한 면이 있구나. 남매는 남매구나 싶었다.


동생은 세계여행을 마치고 나서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퇴사여행을 꿈꾸고 세계여행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떠나는 용기는 부럽지만 다녀온 후 뭐하고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질문과 다시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세계 곳곳의 여행기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얼마 지나자 특히 엄마는 노심초사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원 졸업하고 대기업을 그만두고 백수가 된, 마흔 살 먹은 아들을 본다는 건 속이 탈만한 일이었다. 오히려 당사자는 천하태평이었다. 한국이 또 다른 여행지인가 싶을 정도로.


이민준비로 비자인터뷰를 신청하고 인터뷰 날짜를 기약 없이 기다리는 동안 동생부부는 소소한 일을 시작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동생은 새벽 5시부터 5시간 동안 김밥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출근 첫 날, 기다란 주방 모자를 쓰고 씩 웃는 사진을 동생이 가족 카톡 방에 올렸다. 엄마가 애써 멋지다고 칭찬해줬다.


얼마 전 들뜬 목소리로 '누나, 나한테 사장님이 불고기 덮밥 조리도 맡겼다. 나 이제 혼자 할 줄 알아.' 난 이런 동생이 참 좋다. 가게에서는 오랫동안 캐나다 이민생활을 하다 귀국한 아주머니랑 곧잘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직원 분들이 너 뭐하다가 김밥 집 아르바이트 하는 줄 알어?”

“나? 뭐 아무 말도 안했는데. 에유, 뭐 하러 말해.”동생은 현재를 그저 즐기며 산다. 작은 발전에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과거에 얽매이지도 미래를 불안해하지도 않고. 한편, 동생 와이프는 디자이너 일을 접고 배웠던 바리스타 경력을 살려 별 다방 면접에 합격을 했다. 둘 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걱정 같은 건 괜한 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동생이 이민 가기 전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샀으면 했다. 퇴근하고 친정에 가면 부족한 지식을 끌아 모아 동생에게 얘기를 했다. 그럴 때면 아빠는 와인을 한 병 꺼내어 엄마에게 귀농하자고 설득하며 자주 얘기했다던 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얘기했다. 엄마는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었던 <조화로운 삶> 내용이 술술 나왔고 동생과 나는 조화롭게 사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토론 아닌 토론을 하곤 했다.

며칠 후 친정에 가니 동생이 선언을 했다. “누나, 난 집 안 살래. 물질적인 것을 쫒다보면 내가 세계여행하면서 깨달은 진정한 행복을 동시에 추구할 수가 없어. 난 무얼 하든 적게 벌어도, 가진 한도 내에서 쓰고 행복 할 수 있는 방법을 몸소 알았어.”

“아 그래 좋아. 그럼, 그 내용을 책으로 쓰는 건 어때? 퇴사 세계여행 소재는 조금 일반화 되었다고 해도 넌 특별하게 풀어낼 수 있어.”아쉬움에 내가 말했다.

“게다가 너 대학교 내내 사진 동호회였잖아. (동생은 자전거, 사진, 캠핑 매니아다) 사진전을 하든 글을 쓰던 뭐든 너만이 가진 스토리를 이민 가기 전까지 인생의소재로 활용하는 거야. 사람들과 공유하는데서 너도 몰랐던 기획가 생길지도 모르쟎아. ”안타까운 누나는 구구절절 말한다.

그러자 동생이 대답했다.

“누나, 난 내가 느낀 느낌을 그냥 간직하고 싶어.”

“그리고 내가 케냐에서 사슴 떼를 정말 많이 봤는데, 그걸 한번 누나도 봐봐.

사슴이 스프링처럼 튀어 오른 다니까.“


난 충분히 동생 삶의 방식을 좋아하고 존중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무언의 스트레스를 준 것 같아 이내 미안했다. 한편 유연하게 자신의 의견을 얘기해주는 동생이 고마웠다.

언제나 그렇듯 누구나 저마다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있다. 게다가 동생은 똘똘하고 현명하게 잘 해나갈 거라는 건 너무 믿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정작 자신이 원하는 삶이라고 오늘도 달려가고 있지만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삶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것 아닐까. 무엇이 진짜 삶인지 알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세계여행해서 좋았냐고 누군가 동생네 부부에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 이젠 두려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 않을까. 그냥 나 자신대로 사는 지금이 너무 풍요롭다고.


동생은 최근 몇 개월 동안 요리를 배우고 있다. 덕분에 우리가족은 종종 동생이 손수 떠 준 광어, 우럭, 연어 스시와 뉴질랜드 소비뇽블랑 와인 한 병으로 작은 해산물 파티를 하곤 했다.

"누나, 내가 처음엔 제일 느렸는데 요즘엔 팀의 에이스야." 들뜬 동생의 말에 이어서 엄마가 웃으시며 하는 말씀, "아이고, 이런 줄도 모르고 공대 대학원까지 학비를 냈으니."

동생은 이에 질세라 공학과 요리의 프로세스적 사고가 비슷해서 도움이 된다나. 맞다. 뭐든 도움이 되지 않는 경험은 없다. 배운 것, 경험한 것, 실패한 것들까지 인생의 자양분으로 언젠가는 쓰인다. 매일 꾸준히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상상하고 한 걸음씩 내딛는 동생. 항상 응원할게. 사랑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만의 보석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