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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코패스를 만나고 시작된 여행

by 윤 Yoonher

세상은 노력하면 다 이루어지고 선한 사람이 잘 되는 건 당연하다고 믿어왔다. 심지어 세상은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직장인은 하루에도 여러 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는다. 그러고는 깨닫는다. “어쩌면 상식은 애초에 주관적인 거군.” 이렇게 체념하고 마는 것이다.


따뜻한 봄 날, 몇 번째 이직을 했다. 이제까지 일이란 곧 성취감이었다. 마치 내 회사처럼 뛰어다니며 일을 했다.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는 건 미처 몰랐다. 지금회사에 오기 전까지. 일을 통한 내 성장 역시 중요했다. 회사에서 더 이상 개인의 성장이 어렵다고 생각했을 때 이직을 꿈꿨다. 과감한 도전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직의 선택은 항상 심사숙고가 필요했다. 특히나 워킹맘이 된 후에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더 많아졌다. 회사와 집의 거리, 퇴근 시간, 프로젝트 강도, 잦은 출장 등. 내 경우, 운이 좋게도 주변에 도와주시는 양가 부모님들 덕에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주로 했다. 회사 브랜드나 직무고민 등이었는데 이번에 이직하는 직장은 회사에서 새롭게 진행하는 프로젝트 관리를 하는 일이라고 했다.

정해진 업무를 하는 것 보다 새로운 것을 즐기는 내 성향에 잘 맞을 것 이라는 생각에 고민 끝에 이직을 결정했다. 중소기업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대기업, 외국계를 거쳐 다시 대기업에서의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개 목걸이 같은, 그럴듯한 사원 증을 걸고 서른 살엔 맛없다며 가지도 않던 회사직원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땐 묘한 안정감 같은 걸 느꼈다.


그 안정감은 싸이코패스를 만나면서 바로 무너졌다. ‘올바른 이직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라는 식의 기준이 존재한다면 겉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안정된 직장이었다.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회사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적극적인 자세로 일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조직 내에는 사각지대와 정치, 암묵적 불평등이 기생하고 있는 기묘한 느낌이었다. 싸이코패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반적인 보통 회사의 모습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싸이코패스는 어디나 있다는 이상하다고 불리는 사람과는 철저히 다른 종류였다. 자신이 만든,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혼자 살면서 타인을 좀 먹고 있었다. 어제는 혼잣말로 이상한 지시를 하던 사람이 다음 날 웃으면서 둘도 없는 사이라고 한다.

이런 일이 1년 동안 지속된다면 어떨까. 실제로 공황장애 비슷한 증상이 온다. 휴일에 운전을 하려고 차를 탔는데 도무지 무엇을 하려고 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머릿속에 해야 할 일들이 떠다니지만 아무 목적지도 정하지 못하고 동네를 몇 바퀴 돌다가 눈물이 터져버렸다.

권력이 잘못된 사람 손에 들어가면 주변에는 틈을 노리는 악랄한 영혼들이 기생하게 마련이다. 또 비겁한 사람들은 복종을 하고 잘못된 권력을 키우는데 일조한다. 이런 공간에서의 하루하루는 지옥같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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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걸까. 바로 뒤 돌아 가야 하는 걸까. 부딪혀 봐야 하는 걸까. 아니면 순응하며 적응해야 하는 걸까. 인생의 선택지 앞에 항상 그래왔듯 정답은 없다. 어떤 선택도 적당해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한 순간 뒤엉켜버렸다.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단 하나, 이 사람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외부상황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 하는 것을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이번 이직이 잘못된 선택이었고 지금 힘들더라도 스스로 떠나기로 선택했을 때 퇴사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자아와 현실의 충돌은 시작되었다. 출근할 때면 오늘 하루 버티는 것을 작은 목표로 삼았다. 아니 하루의 유일한 목표였다. 회사의 겉모습, 복지, 부모님의 만족 등을 떠올리며 위안했다. 출근하면 결심은 고작 몇 시간 안에 무너졌다. 퇴근 할 때는 마음속으로 ‘이건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뿐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지시, 불안을 만드는 히스테리, 존재에 대한 의문,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날들은 계속되었다.

수많은 일이 있었다. 나를 포함한 순진한 직원들은 회사가 정의로울 것이라고 기대했다. 회사는 최소한의 액션을 보이더니 여전히 방관자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싸이코패스의 존재로 일어난 사건은 사람들에게 어떤 식 으로든 상처를 남겼다. 쓸데없는 말들이 난무했고 진심은 결과에 의해 가려지는 마음 아픈 일들. 어지러웠다. 살면서 겪지 않아도 될 일을 한 무더기 겪으면 분노마저 사라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지난 1년을 인생에서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부르곤 했다. 스스로 기억상실을 만들어 낸 사람처럼 아무기억도 나지 않았다. 분노도 미움도 없다. 단지 나를 되찾고 싶었다. 20, 30대를 치열하게 달려와 눈앞에 벌어진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심사숙고해서 내린 선택은 뒤통수를 치면서 이제까지 인생을 잘못 살아 온 거라고 애써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새로운 세계에서 홀로 공중에 떠 있는 느낌.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느낌이 수개월 동안 강하게 반복되었다. 여행은 떠남으로 인해서 자신을 찾으려는 발버둥이다. 온전히 나로서 존재했던 곳, 행복했던 기억이 가득한 곳, 꿈을 꾸었던 곳 그리고 꿈을 이뤘던 느낌을 기억할 수 있는 곳.


“이태리에 가야겠어.” 무엇에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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