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열한 번째 면접

패션MD가 되기 위한 여정

by 윤 Yoonher

11번째 면접


어찌 입학한 대학교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옷을 만드는 일이 적성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남들보다 특별히 뛰어나지 않았고, 옷을 좋아했지만 재봉틀에 실 끼는 것도 어렵게만 느껴졌다. 4학년, 졸업작품 전시회에 출품하는 옷 봉제를 학교 앞 세탁소에 맡겼을 정도였으니.


막연히 좋아하던 패션을 통해 졸업 후 어떤 일을 해야할까 고민을 거듭하다가 경영학 복수전공을 하면서 마케팅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마케팅은 다른사람들을 흥미를 갖게 만드는 일이랄까.

'그래, 남이 만든 옷 중 어떤 것이 잘 팔릴지는 잘 고를 수 있지. MD? 그래 상품기획자가 되겠어.'

라고. 호기롭게 마음을 먹었다.


4학년 겨울이 시작할 무렵부터 정확히 10번의 면접에서 떨어졌다. 학점이 뛰어나지 않았던 터라 대기업은 생각도 없었다. 다만, 조금 멋있는 브랜드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야무진 꿈은 쉽게 이루어 지지 않았다. 원서를 60 군데를 낸 후 더 이상 좌절 할 것도 없이 갔던 11번째 면접. 무거운 마음으로 최종 면접장소에 들어갔다.


긴 테이블 끝에 앉아있던 사장님의 첫 질문.


자넨 왜 일류대를 가지 못했나?


귀를 의심했다. 압박질문이 계속 이어졌고, 나 역시 당당하게 거침없이 대답했다.

평소 일류대 졸업이 대체 왜 인생의 최고로 여겨져야 하는가, 나름의 시니컬한 철학을 갖고 있었던터라 사장님의 질문은 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면접이 끝나고 나온 후 문을 다시 두드리고는
'죄송하지만 발표는 언제 나나요?' 배짱좋게 질문까지 했다.

면접 결과는 탈락일것 같았지만 빨리 결과 듣고 잊고 싶은 마음이었달까.

면접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일류대를 왜 못 나왔냐는 질문을 들었던 상황에 새삼 화가 났다. 이제껏 자격지심 없이 살아왔는데 역시나 세상을 만만히 봐온걸까. 허탈한 생각으로 집앞 도서관에서 마저 토익공부를 했다. 면접을 본 후 취준생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 뿐이었다.

며칠 후, 걸려온 전화애서는 10명 중 내가 최종 합격을 했다고 했다. 면접 당시 충격때문인지 합격의 기쁨보다도 사장님은 일류대 출신이 아닌 나를 대체 뽑았을까 의구심이 엄습해왔다.


입사하고 보니 상품기획팀 (MD) 상당수가 S대 출신이었다. 첫 팀장님과는 아직도 연락을 한다. 최근 모임에서 와인을 마시다가 그에게 물었다.

"아니, 정말 그때 절 왜 뽑으신거에요?"

그러자 그가 허허 웃으며 진짜 '이렇게' 말했다.

"학력철폐로 뽑은 사람이 이제까지 딱 두명이 있어. 그 중 한명이 너야." 라고.



질문의 힘

10번의 면접 중 한번은 최종면접에 불합격했다.
수 차례 면접 후 두명으로 추려진 면접 이었기 때문에 내심 기대를 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문득 왜 떨어졌는지 이유나 알고싶어졌다.고민 끝에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사님,
다름이 아니라 제 불합격 사유를 알고 싶어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느부분이 부족했는지 알아야 저도 다음 면접을 준비할 수 있을것 같아서요. 부탁드립니다.


진심이었다. 내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고 싶었고 노력하고 싶었다.


"허허, 자네 같은 사람은 처음보네." 그러면서 이어가던 말씀이 이탈리아 브랜드 유통을 하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이 없어서 밀라노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다른 후보자를 뽑았다는 것이었다.

질문을 통해 인생에서 헛된 시간을 자책하며 보내지 않아도 되고 실패한 일은 그 일대로 흘려보낼 수 있었다.

첫번 째 직장 면접에서 훨씬 스펙이 좋았던 10명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최종 합격했던 이유는

혹시 이 질문 때문 아니었을까.


저 죄송한데 결과는 언제 발표되나요?


험난하고 치열한 직장인 세계에서 필요한 성향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오래전 봄, 첫 회사에 MD / 바이어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