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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Yoonher Dec 28. 2021

퇴사 후 삶의 방식

바뀌고 다듬어지는 것들 



회사에서 일을 할때 스스로를 멀티태스커라고 생각했다. 브랜드 기획과 운영을 동시에 하는 일은 대부분의 브랜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한 가지 일만 우아하게 할 수 없는 상황들이 하루에도 수 없이 생긴다.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 협럭 업체들, 보고해야 하는 자료, 수십 명의 팀원들의 업무 분장, 일 진행상황 체크 및 조정, 종종 발생하는 면담과 조정, 그리고 끝 없는 회의. 동시에 기존 비지니스 운영와 신규 기획까지 겹치는 건 다반사.


시즌 기획, 월간 기획, 신규 브랜드 기획, 마케팅 프로모션, 사이트 리뉴얼, 신규 매장 기획, ERP 개선 등 그리고, 끝 없는 회의. 마치 외줄타기를 하는 곡예사처럼 일을 하는 것은 일상. 자연스럽게 새벽과 주말은 생각을 하기 위한 시간으로 덜어놓지 않으면 안되었다.



책을 쓰면서 깨달았다. 동시에 다른 '모드'의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글을 쓰는 생각의 주파수와 '일'을 하는 주파수는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완벽하게 다른 세계라,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일부러 내지 않으면 한 줄도 써지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난 후, 나는 멀티태스커 보다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에 더 익숙해졌다. 이게 뭐랄까, 익숙해진 것인지 그러한 태도를 선호하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확실한 것은 멀티태스킹 보다 다른 일은 제쳐두고 한 가지에 빠져드는 삶의 방식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음이 다 하지 않을때는 애써서 공허한 무언가를 남기는 것도 지양하고 있다. 

이를테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하나씩,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만.





개인적으로는 회사의 형태를 떠났기 때문에 일정부분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기도 하다. 학교 강의를 하면서 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는데 근무시간에 회사의 니즈에 따라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 자신을 세팅하던 방법과는 다르다. 스스로 시간 안배를 하고 과다한 에너지를 소모할 것 같은 일이나 결에 맞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하게 된다. '시간'이 어떤 일을 선택하거나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었다.



스타트업과 패션 브랜드 임원을 퇴사하고 경력 30년 이상의 대표님들과 몇 가지의 사업을 진행하면서도어느 순간 깨닫게 된 것은, 회사를 떠났는데 똑같이 (미친듯이) 일하고 있네. 라는 사실이었다. 겉표면이 달라졌지만 내용물은 변하지 않았다. 의미없이 달리지 않고 웅크리고 있을 동굴이 필요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얼마 전 서울메이드 강연에서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하고, 나만의 리추얼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얽매이지 않고 편안한 상태로 자신을 놔두는 것. 스스로 감정을 들여다보고 천천히, 하나씩 원하는 것을 하는 것. 무얼 하느냐가 중요한 것 보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있는지, 그리고나서 하나씩 차근차근 하면 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해내지 말자고, 요즘 기업 컨설팅하나 끝내고 논문을 쓰면서 잘 안 될때 마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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