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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호 그리고 보람 Apr 05. 2019

[보] Bangkok city, I can't stop

결국 그렇게 또 방콕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약속한 후 태국으로 이민을 계획 중인 커플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한 해에 적어도 한두 번은 시간을 내, 내가 사는 서울이 아닌 다른 곳을 찾는다. 그런데 여행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그동안의 내 여행을 곱씹어 보면 대학시절 남들 다 한 번씩은 다녀온다는 유럽여행 경험도 없고, 그 외에도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 너무나도 많다. 반면, 본격적으로 여행을 다닌 20대 중반 이후부터 약 6~7년간 나는 방콕만 총 6번을 다녀왔다. 어느 순간 내가 여행을 간다고 하면 주변 친구들이 “혹시 또 방콕?” 하고 물었고, 90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응 이번에도 방콕”하고 대답하면 거기에 숨겨둔 남자 친구라도 있는 거 아니냐며 의심과 의문이 두루 섞인 반응을 보이곤 했다. 도대체 방콕이 왜 그렇게나 좋냐고 묻는 질문에 어떤 특정한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은 사실 없었다.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에 이곳저곳 관심 있는 여행지들을 알아보다가 이곳은 너무 멀어서, 여기는 물가가 너무 비싸서, 여기는 너무 추워서, 여기는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이 없어서, 여기는 방콕이 아니라서... 결국 그렇게 나는 다시 방콕으로 떠나곤 했다.  


그저 무언가에 이끌리듯 다시 찾는 그곳이지만, 그 안에서 나름의 이유를 찾아보자면 바로 이 두 가지가 내가 방콕을 멈출 수 없는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1.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심심하지 않은 도시.

 오지은의 여행 에세이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에서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동북아인의 여행 스타일에 대한 내용이었다. 동북아의 성장 집약적 나라에서 태어난 우리의 여행은 마치 출장처럼 바쁘다는 것이다. 나 역시 흔한 동북아인 중 한 사람으로서, 어린 시절에는 관광지라도 한 곳 더, 맛집이라도 한 곳 더! 를 외치며 내일 당장 이곳을 떠나더라도 아쉽지 않도록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허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쉬움 없는 여행' 보다는 그저 좀 쉬운 여행, 편안한 여행이 나를 더욱 만족시킨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방콕은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 딱 좋은 도시였다.


 올 초 엄마, 이모와 함께 오사카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짧은 일정에 너무 많이 돌아다닌 탓인지 이미 나와 엄마, 이모는 모두 지쳐있었고, 내일 하루쯤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호텔 방에만 있는 건 그곳에선 상상하기가 좀 어려웠다. 엄마와 이모가 함께 하는 여행이었기에 나름 괜찮은 호텔을 예약했던 건데도 불구하고 호텔 방은 좁고 답답했다. 창밖 풍경 역시 갑갑했고 오사카 도심 한복판의 호텔에 수영장 같은 게 있을 리도 만무했다. 게다가 중년의 동북아인인 엄마와 이모가 여행씩이나 왔는데, 좁은 방 안에서 서로 얼굴만 바라보는 상황을 용납할리 없을 테니 결국 우리 셋은 그날 밤 휴족시간으로 지친 다리를 달래가며 다음날 역시 쉬지 않고 오사카 곳곳을 누볐다. 정말이지 그 순간 나는 또 한 번 방콕이 간절했다.


방콕에선 하루 종일 호텔 안에만 있어도 전혀 심심하거나 답답하지가 않다. 느지막이 일어나 호텔에서 조식을 먹는다. 그보다 더 늦게 일어났을 경우, 호텔 근처 쇼핑몰 푸트코트 같은 곳에서 밥을 먹어도 좋다. 그리곤 호텔 수영장으로 간다.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책도 보고, 노래도 듣는다. 그리곤 방에 들어와서 어젯밤 사다 놓은 망고나 수박을 먹다가 낮잠도 좀 잔다. 낮 시간 동안 게을게을 지내다 조금 심심해질 때쯤이면 그쯤부터 밖에 나갈 준비를 한다. 한낮은 덥고 낮보단 밤에 더 할게 많은 도시기 때문에 지금 나간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다. 나는 주로 나이트 마켓을 구경하거나 라이브 바에서 맥주 한잔 정도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곤 돌아오는 길에 숙소 근처 마사지숍에 들러 마사지를 받는다. 일찌감치 자고 느지막이 일어난다.


저렴한 물가, 맛있는 음식, 다양한 즐길 거리가 공존하는 방콕은 그 어떤 도시보다 심심하지 않지만, 그 어떤 도시보다 여유롭다. 그게 내가 방콕을 멈출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다.

수영 좀 하다 물 위로 올라와서 땡모반 한잔 마시면 여기가 바로 천국일까 싶다.



2. 친절하고 다정한 태국 사람들

간혹 태국 여행 후기를 보면, ‘택시 기사에게 사기를 당했다,’, ‘마사지숍에서 눈탱이를 맞았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물론 전혀 그런 곳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특히나 관광객이 많은 도시들의 특징 중 하나니까 말이다. 허나 내가 지난 6번의 방콕 여행을 통해 겪은 태국 사람들은 대부분 인정 많고 친절했다. 간혹 태국 사람들의 친절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시절에 살아보진 않았지만, 우리나라 6~70년대의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해보곤 한다.


한 번은 교통이 불편해서 주로 택시를 타고 다녀야 하는 호텔에 묵은 적이 있었다(사실 내가 귀찮아서). 그 호텔의 매니저는 맨날 택시만 타고 돌아다니는 나를, 물가에 애를 내놓기라고 한 표정을 지은 채 나를 잠시 세워놓고 태국에서 택시 눈탱이 맞지 않는 비법을 1분 특강으로 들려주었다(멈춰 있는 택시는 절대 타지 말 것, 늦은 밤 번화가에서 돌아올 때는 미터 켠 택시를 탈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300밧 이상은 주지 말아라! 같은.). 어느 날은 택시를 타고 가다가 잘못 내려 길을 잃고 헤매는 나에게 다가온 태국인이 저쪽에서 배를 타면 금방이라며, 그런데 거기에서 영어가 안 통할 수 있으니 그럼 그때 보여주라며 내가 내려야 하는 선착장 이름이 태국어로 적힌 쪽지를 손에 꼭 쥐여주기도 했다. 

결국 배 안 타고 다시 또 택시를 탔지만...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이 쪽지는 한동안 가지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 저렴한 물가, 다양한 즐길 거리,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여유로움까지. 아니 이러니 방콕엘 왜 안 가? 결국 그렇게 나는 또 방콕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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