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여자 친구가 있다고 말하면 의례적으로 묻는 질문 중 하나는 "어디서 만났어요?"이다. 적당히 말해도 상관은 없을 텐데, 나는 늘 곧이곧대로 대답한다. "틴더요".
'Tinder'는 아직까지 한국에서 크게 유명한 어플리케이션은 아니기에, 열 명을 만난다고 하면 '틴더'를 아는 사람은 둘 셋 정도이다. 아는 사람은 대체로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고, 모르는 사람들은 '그래서 대체 그게 뭔데요?'라는 표정을 짓기에 이내 나는 '틴더'가 뭔지 설명해주기 시작한다. 몇몇 사람들은 묘한 웃음을 보이고, 누군가는 내게 위험하지는 않은지 물어보며, '틴더'를 이미 아는 사람은 자신이 들었던 데이팅 앱을 통해 일어난 좋지 않은 사례를 열거하기도 한다. 이 모든 반응의 기저에 깔려있는 감정은 '온라인 데이팅은 일반적이지 않다'라는 생각이어서, 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내심 즐거워 둘러대지 않고 말한다.
"네, 저희는 틴더에서 만났어요."
정호승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고 노래했다. 시인의 말처럼 외로움을 견딜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우리는 모두 외로운 존재기에 누군가는 언어를 만들고, 누군가는 도로를 만들었으며, 누군가는 틴더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자타공인 틴더 헤비유저였다.
2년 전에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 이 앱을 처음 알게 되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남들을 보면 외국에서 쉽게 친구들을 사귀는 것 같아 보였는데 나 같은 경우 같이 일하거나 운동하는 사람들을 빼고는 만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여자 친구도 없었기에 문자 그대로 외로워서, 틴더를 시작했다. 내 외모가 잘생긴 편은 아닌지 1~2일에 한 번 꼴로 매칭이 되었고, 대화를 이어나가다 기회가 닿으면 실제로 만나러 나갔다. 외국생활은 난생처음이었기에 초반에는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길 막연히 기대하면서 나갔지만,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고 금세 기대를 접었다. 하지만 나와의 접점이 1도 없어 평생을 살아도 인연이 닿기 어려울 것 같은 사람들(이를테면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저널리스트나 우크라이나 출신의 NGO 직원 같은, 때로는 이름도 나이도 진짜인지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어 이용을 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틴더'는 본질적으로 데이팅 앱이지 않은가. 5인치 남짓한 액정 안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더 열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진정하고 Swipe Right 하세요. 당신의 인연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요 :)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18년 6월의 어느 날이었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귀국한 지 3주쯤 되었고, 여전히 솔로였으며, 호주와 캐나다를 포함하여 2년을 영어권 국가에서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유학에 필요한 영어점수를 맞출 수 없었어서 강남으로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에세이 수업은 지루했고 무료했으며, 무엇보다도 외로워서 다시 틴더를 켰다. 이내 어떤 여자와 매칭이 되었다. 사진이 3장쯤 있었고 그중 한 장은 LG 트윈스의 유니폼을 입고 있고 찍은 사진이었는데, 프로필에 적혀있는 것이 없어 이름과 나이 그리고 야구를 좋아할 것 같다는 것 외에는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경험상 프로필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경우는 대체로 대화가 잘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나는 당시에는 6개월 내에 다시 캐나다로 유학을 갈 생각을 하고 있어 큰 기대를 갖지 않고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는 간단한 인사 후에 대화를 시작했다. 그녀는 왕십리 토박이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고 했고, 나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 '틴더'에서 어떤 사람을 찾고 있는지, 외국 생활은 어땠는지, 이전엔 어떤 사람들과 연애했는지 등등.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첫 데이트 전까지 하루 종일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가끔은 시시껄렁한 농담도 하기도 하고(ex. LG 트윈스는 언제 우승주를 개봉하나요?), 서로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묻다 보니 어느새 나는 매일같이 그녀의 연락을 기다리게 되었다. 알렝 드 보통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전화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문 도구가 된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연인은 아니었지만 나는 비슷한 심정으로 그녀의 답장을 기다렸고, 하루에도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곤 했다. 사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나에 대하여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녀와의 대화는 늘 유쾌함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나에 대해 숨김없이 전부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눈지 3일 만에 나는 커피 한 잔 하자는 진부한 말로 데이트를 신청하였고, 그녀는 나의 제안을 수락하여 곧 만나기로 했다. 사실 나는 당시에는 나 자신을 '6개월 이내에 한국을 떠날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누군가(이성이든 동성이든)와 한국에서 새롭게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애써 거리를 두려고 했었다. 하지만 고양이도 죽인다는 그놈의 호기심 때문에, 그녀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