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우리의 첫 만남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by 윤호 그리고 보람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약속한 후 태국으로 이민을 계획 중인 커플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나는 먼 미래의 계획은 잘 세우지 않는 편이다. 그동안의 인생에서 내 계획대로 된 건 어차피 ‘대충 살고, 잘 먹자’는 정도밖엔 없으니까.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안 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흔히 사람들이 ‘결혼 적령기’라고 하는 시기에 결혼을 계획했던 적이 있었다. 운명 같은 끌림까지는 아니었지만, 객관적으로는 흠잡을 곳 없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다정했고, 소위 말하는 좋은 직장엘 다녔고, 술이나 담배도 전혀 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일과 나밖에는 모르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프리랜서 나부랭이인 나에게는 안정적인 조건에 특별히 튀는 구석 없는 이 남자야말로 어쩌면 최고의 신랑감 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는 그의 가족에게서 튀어나왔다. 나와 전 남자 친구는 그의 친누나 소개로 만난 사이였는데 연애 초반, 내가 남자 친구와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그의 누나에게 호출당한 것을 시작으로, 연애 2년 차에 접어들 즘 비슷한 이유로 나는 다시 그의 누나와의 면담에 불려 나가게 되었다. 첫 번째 면담에서는 남자 친구와 여행을 가느라 가족분들께 걱정을 끼치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 같지도 않은 사과 같은 걸 늘어놓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었는데 두 번째 면담에서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하는 대신 소릴 질렀다. 이 상황에 본인의 동생이 아닌 나를 왜 불러 앉혀 놓은 건지 모르겠다고, 우린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시누이 노릇을 하고 싶으신 거냐고, 혹여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나는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다고. 사람이 가득 찬 카페에서 나의 사자후를 듣고 난 그녀는 한참을 벙찐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가 ‘참 독한 사람이네’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돌아갔다. 그 사건 이후 바로 헤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날의 일이 발화점이 되어 얼마 못가 그 남자 친구와는 헤어졌다. 남자 친구와 헤어진 건 후회되지 않는데, 첫 번째 면담 때 죄송하다고 사과했던 게 내내 후회되는 거지 같은 연애였다.


인생 최악의 연애를 끝내고 나는 한동안 잔뜩 물을 먹은 곰인형 마냥 지냈다. 미래를 위해 계획했던 무언가가 수포로 돌아가자 내 인생이 다시 텅 빈 종이가 된 느낌이었다. 여기에 무언가를 다시 그리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비슷한 시기에 이별해서 가끔 서로의 헛헛함을 달래주던 친구가 나에게 틴더라는 소개팅 앱을 추천했다. 본인도 별 기대 없이 사용했지만, 헛헛함을 달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면서. 친구에게 추천을 받고 틴더를 다운 받기까지는 했지만, 사실 쉽게 시작하진 못했었다. 평소 누굴 어디서 만나야 하는가에 대해 특별한 편견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은근히 쫄보 구석이 있는 나에게 소개팅 어플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운 미지의 세계임이 분명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고 한참 대학원과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곱절로 받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전 남자 친구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날은 내가 틴더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기에 최적의 날임에 틀림없었다.

1 (1).jpg 작은 한 걸음이었지만, 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미지의 세계에서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났다. 미래의 일은 여전히 알 수 없고, 나는 앞으로도 나의 예상 혹은 계획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나갈 테지만, 나는 현재 시점에서 한 가지만은 확신하며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의 남자 친구와의 연애가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연애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무언갈 준비하고, 계획하고, 또 어떤 밑그림을 그려 놓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분명 꿀잼일 것이라는 것도 말이다. 인생. 참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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