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지금까지 이런 소개팅은 없었다

갑자기 분위기 오늘부터 1일..?

by 윤호 그리고 보람

Tinder에서 만나 결혼 후 태국으로 이민을 계획 중인 커플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혹자는 데이팅 앱을 통해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람 사이의 만남이 이렇게나 가벼워질 수도 있구나' 라며 개탄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틴더'가 관계의 본질을 더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상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정보라고는 사진과 프로필이 전부인 단순한 구조 속에서, 앱에서의 매칭이 실제 만남으로 이어지려면 좋은 대화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불과 10년 전의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세상이 도래했지만, 상대방과의 대화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틴더에서 매칭된 후 10일간 52,583 단어, 8,000줄이 넘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스마트폰이 없었을 때는 도대체 어떻게 연애를 했던걸까?


서울이라는 넓은 도시에서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이만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감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만나러 가는 당일까지도 복잡한 마음이었다. 나는 반년 내로 캐나다로 다시 떠날 예정(그땐 상황이 바뀌리라 생각하지 못했다)이었으니, 내게 남은 선택지는 그녀와 친구가 되거나 짧은 기간 동안의 만남이었는데 둘 다 달가운 옵션은 아니었다. 이런 방식으로 만난 친구 사이가 잘 이어지기는 할까? 그렇다고 잠깐 만나고 떠나자니, 그건 시작하지 아니한 만 못한 관계 아닌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나는 집을 나섰다.


성수역 개찰구 앞에서 마주한 그녀의 첫인상은 밝았다. 그 모습이 내 마음을 얼마나 편하게 해 주었는지, 그녀는 아직도 모를 것이다.


함께 가기로 한 카페에는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고, 그다음에 들른 카페는 냉방이 잘 되지 않아 다시 다른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여름이 시작된 6월 말이었고, 잘 아는 동네가 아니어서 대안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짜증이 났을 법도 한데 별다른 내색 없이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모습이 내 눈엔 예뻐 보였다. 이윽고 카페에 앉아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참 괜찮다 싶었다. 그녀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프리랜서의 세계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나는 이전 회사와 외국에서의 시간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후 2시에 만났는데, 어느덧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될 정도로 집중해서 대화를 했었다.


함께 카페를 나섰는데, 아뿔싸. 식당으로 가는 길에 비가 꽤 내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맞고 갈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내가 우산을 사 오기로 했고, 편의점에 들렸는데 순간적으로 어떤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쳤다.


'우리가 우산 하나를 나눠 써도 괜찮을까?'


편의점 안에서 잠깐 고민하다가 우산들 중 그나마 조금 커 보이는 비닐우산을 하나 집었다. 의외로 그녀는 하나뿐인 우산을 보고도 별 말을 하지 않아서, 우리는 처음 만날 날부터 함께 우산을 쓰고 걸어갔다. 내 팔에 느껴지는 감촉이 좋았고, 그녀의 머리에서 나는 샴푸 냄새가 좋아 오래도록 같이 걷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식당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우리는 물회(첫 만남에 물회라니, 얼마나 로맨틱한가!)를 먹었고, 저녁을 먹으면서는 서로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누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항상 이 순간이 어렵다. 나는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데, 상대방은 밥 먹고 커피 먹었으니 '의무'는 다 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마음은 아니지만 애써 쿨한 척, 그녀에게 묻는다


"날이 어두워졌는데 들어갈래?"

"음... 괜찮으면 맥주라도 한 잔 더 할까?"


그럼요. 제가 어떻게 마다하겠습니까.


나는 술을 굉장히 즐겨 마시는 사람인데 비해, 그녀는 소주 2잔이면 고꾸라진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맥주를 먹으러 가자고? 이게 말로만 듣던 그린라이트인가?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크래프트 맥주를 파는 펍에 들어갔다. 나는 에일과 라거, IPA 등 맥주에 대해 신나게 떠들다가 이내 조용해졌고, 천천히 맥주를 마시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분이 묘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한데, 한편으로는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싶은 상반된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고 싶어졌다. 약간의 취기를 빌려 그녀의 손을 잡았고, 만나보고 싶다고 고백을 했다. 그녀는 곧 떠날 사람과 연애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려 주저했지만, 결국 내 고백을 받아주었고 우리는 처음 만난 날부터 연애를 시작했다.


그녀를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그녀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여러모로 기묘한, 전화번호도 몰랐던 이와의 연애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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