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이것은 채팅인가 소개팅인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갑자기 분위기 사랑

by 윤호 그리고 보람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약속한 후 태국으로 이민을 계획 중인 커플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틴더에서 매칭이 된 후 첫 만남을 갖기 전 열흘 동안 우리는 카톡으로 최소 책 한 권을 썼다. 소소한 일상을 공유했고, 그동안의 삶이나 연애, 좋아하는 여행지, 어쩌다 엘지 트윈스(같은 팀)를 응원하게 되었는지, 커피는 핸드드립인지 에스프레소인지 등등... 눈에 보이는, 손에 닿는, 감정적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대화 소재가 되었다. 그런데 직접 만날 약속을 정하고 나니 막상 걱정되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카톡에선 이렇게 재밌고 즐거웠는데 막상 만나서 어색하면 어쩌지? 심혈을 기울여 찍은 셀카에 속아 내 모습에 실망하면 어쩌지? 그런데 사실 그런 것들보다 더 많이 걱정됐던 건, 그는 곧 캐나다로 떠날 예정이라는데 덜컥, 진짜 마음에 들어버리면 그땐 어쩌지? 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마음에 안 드는 경우라면 지금까지 나눠온 대화가 조금 허탈하게 느껴지긴 했겠지만, 그건 차라리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만약 진짜 마음에 들어버리면? 따지고 보면 소개팅이나 크게 다를 것도 없는 만남이었는데 내가 그렇게까지 걱정했던 이유를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얼굴을 마주하기 전부터 난 이미 그가 좋아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세상에.. 서른둘에 데이팅 앱에서 만난 남자를, 그것도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상태에서 좋아하게 되어버리다니...!



[윤] [오후 10:20] 누나도 나랑 비슷한 생각한 건가 지금ㅋㅋㅋ

[보] [오후 10:21] 어떤? ㅋㅋ

[윤] [오후 10:21] 그냥 뭐

[윤] [오후 10:21] 김칫국일 수도 있는데

[보] [오후 10:21] 응응

[윤] [오후 10:21] 잘 돼도 문제, 안 돼도 문제

[윤] [오후 10:21] 같은 느낌?

[보] [오후 10:22] 응 아마도 ㅎㅎ

[윤] [오후 10:23] 만나지 말까??

[보] [오후 10:23] 아니 ㅋㅋㅋ


그렇게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은 지 열흘 만에 우린 만났다. 성수역 개찰구 앞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의 얼굴이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키가 큰지 작은지, 어깨가 넓은지 좁은지 이런 것들은 이미 그리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우리 드디어 만났구나!’ 하는 반가움이 훨씬 더 크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가 먼저 대화를 많이 이끌어줘서 금세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한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너무 말이 많나?”하며 멋쩍어하던 모습도 참 좋았다.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다 나오니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 둘 다 당황하고 있었는데, 그가 그의 가방으로 내 머리를 가려주는 것을 보고 오늘 우리의 만남이 마지막은 아닐 것 같다고 직감했다. 그리고는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보통의 소개팅에서 분위기에 신경 쓰느라 그리 맛있지도 않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게 참 별로였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날의 물회는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밥도 먹었으니 조금은 아쉬운 상태로 헤어지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것도 좋았겠지만, 시간을 조금 더 같이 보내면 좋겠다 싶었다. 저녁 식사 후 용기를 내 맥주 한잔 하자고 말했고, 그날이 우리가 처음 손을 잡고 사귀게 된 날이 되었다. 손잡는 게 뭐라고, 마치 10대 소녀라도 된 듯 설레는 마음 가득했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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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캐나다로 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게 여전히 마음속을 복잡하게 만들었지만, 어차피 알 수 없는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게 아닐까. 나는 그저 우연인 듯 인연인 듯 만난 우리 둘의 운명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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