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우리의 연애가 좋은 이유

Here’s to the ones who dream

by 윤호 그리고 보람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약속한 후 태국으로 이민을 계획 중인 커플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그녀는 본인의 꿈이 유튜버라고 말했다. 뒤이어 "캐나다에서 잘돼서 나 유튜버 시켜줘."라고 말했다.

우리가 교제를 시작한 지 2주째였다.


32살에 꿈을 가진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2015년, 28살에 첫 직장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허덕이고 있을 때, 나는 퇴사하고 외국에 나가는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가족들, 같이 일하던 동료들, 주위의 친구들 모두 힘들게 들어간 그 좋은(=유명하고 커 보이는) 회사를 왜 그만두냐고 만류하였다. 심지어 한 친구는 내게 <베르세르크>라는 만화에 나온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의 대사를 말해주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그는 회사 선배였고, 지금은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 온 우주가 나의 퇴사를 말리는 기분이었다. 심지가 견고해도 주변의 목소리에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주위에서 한 목소리로 내가 곧 잘못된 길을 걸어갈 사람처럼 말을 하니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회사를 더 다니면 정말로 병이 날 것 같아서 퇴직을 하고 6개월 후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시드니에서 1년을 꽉 채운 후에 또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캐나다로 넘어가서 1년을 거주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떠날 당시, 내 공인 영어점수는 IELTS General 5.5였다. (영연방 국가에 이민이나 유학을 고려하거나 떠났던 사람들이라면 얼마나 초라한 점수인지 잘 알 것이다)


내가 특별하거나 용감한 사람인가? 절반 정도만 맞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나라까지 오게 되었는지 설명해주면 "용감하긴 한데,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사는 게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이야? 내 주위에는 그런 사람이 많은데?"라고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리고 꼭 그들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나는 2년여간 수많은 이민자들을 목격하면서 '그래, 내 선택이 그렇게까지 특별하지는 않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일을 하고 있는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꽤 용감했던 선택을 했었던 것 같다고 느낀다.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 남의 오지랖과 걱정을 뿌리치고 원하는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이력서에 남길 수도 없고, 커리어에 도움도 되지 않지만 호주와 캐나다에서 2년여간의 경험은 내 인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세상이 이렇게 넓은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죽었다 깨나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가끔 나의 퇴사를 만류했던 사람들에게 화가 날 때가 있다. 정작 외국에서 한 달도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왜 겪어보지도 않은 남의 인생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커리어는 끊겼지만, 장기하의 노래처럼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나는 외국에 살고 싶다. 처음에는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스러운 점 때문에 막연히 외국 생활을 동경했는데, 2년 간의 외국 생활 동안 현실적인 어려움(ex. 경제적 문제, 비자 등)을 접하다 보니 동경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더 경험하고 배울 것이 남아 있는데, 이 넓은 세상을 두고 한국에만 산다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인생을 낭비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커리어의 연장만이 나의 성장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에 나는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한 번쯤은 다시 한번 한국에서 나가서 생활해보고 싶다. 다만 이런 삶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안정적'인 삶에서는 멀어지기에 누군가와 교제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워 내심 포기하고 있던 차에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내게 신기한 존재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나처럼 한국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더 대담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한 달 전만 해도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사람을 따라 캐나다에 간다고 하거나, 태국 치앙마이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것을 생각한다던가, 아시아의 모든 미슐랭 빕구르망 식당을 찾아다니면서 영상을 찍는 것을 기획하는 등 다른 사람들이 듣는다면 '아니, 도대체 그걸 왜?'라고 할만한 아이디어들을 끊임없이 내게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오히려 걱정하는 것은 내 쪽이었다.


"그러면 우린 뭐 먹고살아...?"

"글쎄.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데 재밌을 것 같지 않아?"



<La La Land>의 OST 중 하나인 'Audition'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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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smiled,

Leapt, without looking

And She tumbled into the Seine!

The water was freezing

she spent a month sneezing

but said she would do it, again


그녀는 미소지으셨죠

눈을 감고 뛰어올라

센 강으로 들어갔어요

물은 얼음장 같았고

재채기를 한 달을 해야 했지만

시간을 되돌려도 똑같이 할 거라 말했죠


Here’s to the ones who dream

Foolish, as they may seem

Here’s to the hearts that ache

Here’s to the mess we make


꿈꾸는 자들에게 경배를

무모해 보이곤 할지라도

아픔을 느끼는 마음에 경배를

우리가 만드는 난장판에 경배를



그녀도 사람이기에 당연히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걱정도 갖고 있다. 하지만 걱정과 불안함에 사로잡혀 우물쭈물 대기보다는 한 발자국 더 걸어 나갈 사람이기에, 나는 그녀로부터 용기와 영감을 많이 얻는다. 우리의 미래가 얼음장 같은 센 강에 뛰어드는 것처럼, 어쩌면 한 달을 고생할 독감에 걸릴 수도 있는 무모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재밌을 것 같기는 하다. 그녀와 함께라면.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난 액션캠을 사줬다.

그녀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삶을 응원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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