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우리의 연애가 좋은 이유

파랑새를 찾아서

by 윤호 그리고 보람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약속한 후 태국으로 이민을 계획 중인 커플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나의 본격적인(?) 첫 연애는 조금 늦은 편이었다. 연애가 잘되지 않던 시절 이상형에 대한 상상을 종종 한 적이 있었는데 내용은 대충 이런 식이었다. 나에겐 대화가 잘 통하는 남사친이 있고, 그 남사친과 어느 날 갑자기 이성의 감정을 느끼게 되어 연인이 되는 상상.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상상이었지만, 이 기대가 내 연애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시간이 좀 지난 후였다. 동성의 친한 친구들과 나누는 쫀쫀하고 농밀한 대화가 가능한 이성의 상대를 만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에 좌절하는 나에게 연애 깨나 해본 친구 A가 이렇게 말했다.


“애인이랑 굳이 친구처럼 대화가 잘 통해야 하나? 농밀한 대화는 친구랑 나누고 남자 친구랑은 사랑을 나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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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했다. 그렇게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은 나는 그 이후 거짓말과 같이 연애가 술술 풀려나갔다. 깨달음을 얻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바로 연애를 시작할 수 있었고 나에겐 그 어느 때보다 설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좀 지나자 나는 내 연애가 너무나 공허하게 느껴졌다. 첫 연애 상대였던 남자 친구와는 같은 야구팀(엘지 트윈스)을 좋아한다는 커다란 공통분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우리의 대화는 겉도는 느낌이었다. 이건 마치 그가 공을 던지고 나는 그 공을 받아치긴 하지만 어쩐지 계속 파울볼만 치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 이후의 연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화가 잘 통하는 남자’는 여전히 나에게는 파랑새와 같은 존재였고 나는 파랑새를 찾으려 애쓰고 시간을 소모하기보다는, 나에게 다른 부분에서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여전히 내 연애는 공허했고 어딘지 모르게 답답했다.


허나,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연애임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연애가 끝난 후 나는 분명한 몇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연애 관계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몇 가지와 의외로(?) 포기 가능한 몇 가지에 대한 것이었다.



-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

1. 대화가 잘 통할 것 (돌고 돌고 돌아 이것이 나에게 이것은 결국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2. 가부장적이지 않을 것

3. 가족 구성원이 상식적일 것 (첫 번째 글 참조)

4. 삶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일 것 (어쩔 수 없이 산다든가, 이 사회는 결국 경쟁이야! 하는 식의 태도는 좀 곤란했다.)


- 상대적으로 포기 가능한 것

1. 경제적 안정성 (돈이 전혀 없어도 된다.. 이런 건 당연히 아니고, 현재의 안정성보다는 미래의 가능성과 그가 일과 돈, 삶을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굶어 죽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으니까.)

2. 유머감각 (상대가 웃겨주는 것도 좋지만 난 내가 웃기는 게 훨씬 더 좋다.)

3. 취향. 취미 (나의 경우에 취향이나 취미가 꼭 맞을 필요는 없었다. 다만, 서로의 취향과 흥미 분야에 관심을 가져줄 수 있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기준이 공고해지다 보니, 이제 나의 연애는 모 아니면 도이겠구나 싶었다. 지금부터의 연애는 나와 정말 잘 맞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와 동시에, 다시 한번 예전의 철벽녀 시절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불안감. 나이가 들 수록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하는 게 더 어려워진다는 말을 이런 뜻이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혼자 살래!라고 선언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그게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을 원했기 때문에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한 희망의 끈은 놓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이전의 연애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났다. 그는 어떻게 보면 안정적이지도 않고 세상 제일가는 미남이라고 보기에도 좀 어렵고(내 눈엔 가장 잘생겼지만), 엘지 트윈스의 팬도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몇 가지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아도 좋을 사람이었다. 특히나 누군가 내가 그를 왜 사랑하는지 딱 한 가지만 말해보라면 나는 주저함 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인생의 가장 하찮은 이야기부터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가장 못난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나의 ‘최고의 대화 상대’라고,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애인이자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이다.



너한테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서 나는 참 좋아. 가령 33살의 나의 꿈이 유튜버가 되는 것이라든가, 누구도 믿지 않겠지만 내년엔 엘지 트윈스가 우승을 할 수 있을 것이라든가. 하는 것들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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