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호 그리고 보람 May 27. 2019

[윤] 하노이에서 스냅사진 찍기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약속한 커플로, 태국으로 이민을 계획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보람이와 하노이 여행을 가기로 결정한 후, 내가 가장 신경 썼던 두 가지는 '어디에 가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와 '하노이에서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뭐가 있을까?'였다. 나와 보람이 둘 다 관광보다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면서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좋은 식당을 찾는 것에는 자신이 있어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는데 하노이에서 뭘 하면 좋을지는 찾아봐도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하롱베이(편도 4시간 거리라길래, 결국 안 갔다)와 쌀국수로 요약되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 무렵, 문득 하노이에서 보람이와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사진을 잘 안 찍는 편이다. 일례로 한국에 오기 직전 1년간 머물렀던 캐나다에서 찍은 사진이 모두 합쳐 채 50장이 되지 않고, 방콕으로 4박 5일 동안 해외여행을 가서 10장도 안 찍고 돌아온 적도 있을 정도니 이쯤 되면 사진을 애써 찍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게다가 나는 카메라 렌즈 앞에 설 때의 부자연스러움을 잘 견디지 못한다. 사람 대 사람으로 얘기하면 차라리 눈을 보면 될 텐데, 카메라 앞에 서면 도대체 렌즈를 봐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딘가를 응시해야 하는지 항상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갈팡질팡한다. 결국 표정과 자세마저 어색해져 버린 나를 사진으로 다시 마주하는 것 또한 내게는 당황스러운 일이 되어서, 차라리 순간의 느낌을 마음속에 잘 담아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 순간부턴가 나는 사진을 잘 찍지(또는 찍히지) 않는다.


문제(?)는 보람이도 도통 사진을 찍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1주일에 못해도 한 번은 만나서 데이트를 하고, 여기저기 쏘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커플인데, 사진을 찍지 않는 우리의 성향 덕분에 추억을 반추할 만한 사진은 거의 없다. 그래서 언젠가는 만나는 날마다 하루 한 장씩이라도 셀카를 찍어보자고 다짐했건만, 한 달도 채 가지 못해서 흐지부지되었고 둘 중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았다. 정말이지 이러다가 결혼식 때 놓을 사진조차 없겠다는 생각(여담이지만 우리는 결혼 준비를 하면서 '스드메' 중 스튜디오 촬영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이 들을 무렵, 하노이 여행을 가기로 결정되었다. 사실 결혼식용 사진도 사진이지만, 새로운 여행지에서 추억도 남기고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곧 하노이에서 스냅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인 업체가 있는지 찾아보았는데, 우리처럼 하노이까지 와서 사진을 찍으려는 한국인들이 많지는 않은지 두 곳 밖에 찾지 못했다. 그런데 사진의 느낌이 그리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게다가 가격도 생각보다 비싸서 망설이다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개인 포토그래퍼가 있는지도 알아보았다. 하지만 연락을 취했보았던 두 명의 포토그래퍼 모두 우리가 여행을 가는 시기에 하노이에 없다고 하셔서 난관에 봉착했다. 그 소식을 들은 보람이가 내게 말했다.


"현지인 포토그래퍼는 없어? 방콕에는 많이들 활동하는 것 같은데?"

"찾아보면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런데 의사소통이 잘 되려나?"

"간단한 영어 정도는 하겠지. 말 안 통하면 몸으로라도 알려주겠지 뭐. 그리고 더 재밌을 거 같지 않아?"


확실히, 이 여자가 나보다는 더 유연하다고 또 느꼈다.



그래서 네이버가 아닌, 구글로 다시 포토그래퍼를 찾기 시작했다. 보람이 말대로 하노이를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는 포토그래퍼를 여러 명 발견할 수 있었고, 그중 한 작가의 사진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주로 스냅샷 위주로 사진을 찍는 작가인데 홈페이지에서 필모그래피를 보니 한국인 커플도 여럿 있어서 왠지 안심이 되었다. 무엇보다 사진마다 뭔가 독특한 느낌이 담겨 있어 문자 그대로 '느낌 있는'  사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보람, 이 작가 어때?


http://www.thequi.com/


결제를 받았습니다.



보람이의 동의 후, 포토그래퍼의 홈페이지를 통해 문의를 했는데 비용도 생각보다 저렴했고 스케줄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해서 예약 후 계속해서 컨택을 했다.  포토그래퍼의 이름은 Qui로, 예약 이후 나와 Qui는 종종 메일과 Whatsapp으로 촬영 컨셉과 스케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무언가를 이야기하거나 물어봤을 때 Qui로부터 답장이 빠르게 오지 않아(이건 토종 한국인인 나의 성격 때문에 답답하게 느꼈던 탔도 있는데, 알고 보니 내가 문의를 했던 기간에 Qui가 엄청나게 바빴다고 했다) 조금 불안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Qui는 자신에 일에 대해 굉장히 열정적이고 실력 있는 작가였다.


일례로, Qui는 내게 보람이와 찍은 사진 몇 장과 인스타그램 주소, 각자의 관심사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이유인즉슨 우리가 어떤 느낌을 가진 사람들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알고 그에 따른 촬영 장소를 물색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촬영 때 입으면 좋을 옷의 톤도 추천해주고, 우리가 처음 약속한 시간에 날씨가 좋지 않다는 예보가 있으니 시간을 옮기자고 먼저 제안해주기도 했다. 또한 약속한 촬영일에는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묻자 '내가 너희들이 묵는 호텔로 가겠다'는 답변이 왔고(세상에!), 촬영 당일 Qui는 시간에 맞춰 우리가 묵고 있었던 호텔로 왔다.


나와 보람이 모두 이전에는 전문가와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원래 사진작가들은 다 이 정도는 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낯선 도시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만나 작업을 한다는 약간의 불안감은 Qui의 태도 덕분에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고대하던 당일이 왔다. 촬영은 유쾌했다. 처음에는 렌즈 앞에 선다는 어색함 때문에 몸이 많이 굳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잘 안 왔지만, Qui는 계속해서 "너네가 하고 싶은 것 하면 돼!"라고 해주어서 보람이와 가볍게 데이트하는 느낌(을 가지려고 노력하며)으로 하노이 거리를 걸어 다녔다. 가끔씩 특정 장소에서 포즈를 취할 땐 서로에게 무언가를 말하라고 주문(ex. 사랑하는 이유 5가지, 싫어하는 것 3가지) 하기도 했는데, 어색함을 떨쳐버리기에 좋은 방법이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데, 우리 마음에 쏙 들어서 베트남 특유의 습하고 더운 날씨 속에서도 힘든 줄도 모르고 촬영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하노이의 거리, 작은 시장, 골목, 철길 등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약속했던 2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이제 촬영이 끝나려나? 싶었는데 Qui는 "호텔 쪽으로 다시 돌아가자"라고 했고, 숙소 근처의 호안끼엠 호수에서도 촬영을 계속 이어갔다.


"Qui, 우리 2시간 얘기했는데 지금 벌써 2시간 넘었어. 너 가야 되는 거 아냐?"

"괜찮아, 여기서 조금만 더 찍고 가자."


그렇게 조금만, 조금만을 연발하더니 결국 3시간을 꽉 채워 촬영을 마치고 호텔로 다시 돌아왔다. 사실 우리가 시간을 넘겨 촬영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열정적인 Qui의 태도에 감동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여 추가 금액을 받기를 원하는지 물어보았는데 본인도 우리 덕분에 즐겁게 작업했다고 하며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저녁에 사진을 찍으러 가야 하는 행사가 있는데, 입구에서 내 이름을 말하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게 등록해 놓을 테니 저녁에 와서 음식도 먹고 재밌게 놀아. 가능하면 사진도 조금 더 찍어줄게."

라며 우리에게 또 다른 호의를 베풀었다. 그래서 우리도 한국에서 챙겨갔던 백세주와 마스크팩 등을 약소한 선물을 Qui에게 건네주었고, 다시 저녁에 만나 Qui를 위해 맥주(베트남에선 맥주가 저렴해서 식당에서 마셔도 한 병에 1~2천 원 정도여서 민망한 수준이었다..)를 샀다.


https://www.youtube.com/watch?v=G4O0ITCzjdg&t=

Qui와 촬영하는 동안 틈틈이 보람이가 찍은 영상으로 만든 클립. 마음에 든다면 구독과 좋ㅇㅏ...ㅇ....ㅛ.....


그리고 여행을 갔다 온 지 3주 정도 되어 조금씩 하노이를 잊어가던 어느 날, Qui가 보정본과 원본 사진이 담긴 구글 드라이브 링크를 메시지로 보내왔다. 보정된 사진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고, 사진을 보고 있으니 하노이가 다시 그리워졌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하노이에 갈 계획이 있다면, Qui를 만날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추천한다.


* 홍보에 관해서 Qui에게 어떠한 부탁도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와 보람이는 Qui와 함께했던 시간이 매우 x100 마음에 들었고 그의 열정과 작업이 조금이나마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Qui의 홈페이지와 인스타를 공유합니다.


홈페이지 : http://www.thequi.com/

인스타 : https://www.instagram.com/thequi.photographer/




매거진의 이전글 [보] 난감하고 무모한 여자축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