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저는 지금 말레이시아에 와 있습니다. 온 지 딱 1주일이 되었고, 낯선 호텔방 침대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여행으로 온 것은 아니고, 운 좋게 말레이시아에 취업을 하게 되어 오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왜 오게 되었냐고 물어보신다면, 이유를 말씀드리기 앞서 저의 첫 회사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군요.
제가 첫 회사에 있었을 때...
앞날에 대해 진지하게 걱정을 하기 시작했던 것은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대학은 당연히 가는 것이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직장(=크고 이름이 널리 알려진 회사)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이 곧 성공이라고 믿었던 시기였고, 나는 대학만 가면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며 심지어 살도 빠진다고 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묻고 싶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무슨 일을 해야 하나요?
이 고민의 시작은 내가 대학시절 몸담았던 동아리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마케팅 학술 동아리에 가입했고, 곧 내 대학생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주로 마케팅에 대한 이론이나 사례를 공부하는 동시에 공모전에도 출전하는 것이 동아리의 주요 활동이어서, 덕분에 나는 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고, 술로 밤을 지새우는 것보다 공모전을 준비하다가 새벽녘 별빛을 바라보며 기숙사로 돌아가는 나 자신이 스스로도 대견해 보일 때가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뽕'에 가득 차 있었다.
뒤져보니 딱 한 번 작은 공모전에서 입상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대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 돌아보니 일궈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장 관심 있었던 분야는 여전히 마케팅이었고, 공모전에 간간히 출전했지만 번번이 낙방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생각보다 창의적이고 재기 발랄한 사람이 아니었고, 쌓아놓은 스펙이라곤 1도 없었는데, 이력서 빼곡한 주변 선배들이 하나 둘 취업을 하는 것을 보니 덜컥 겁도 났다. 나 같은 사람을 채용해 줄 회사가 존재하기는 할까?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성취에 대해서 언급하기에는 살짝 어린 나이였고, 다양한 경험을 마주하는 것이 나에게 더 도움이 되는 시기였지만 누구도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소모적인 걱정은 나를 급하게 만들었다. 조급함 때문에 잠깐이지만 SAP ABAP 코딩을 배우거나, 닥치는 대로 대외활동에 지원을 하고, 조그마한 MICE 회사에서 일을 하는 등 중구난방으로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학교 홈페이지에서 인턴 모집공고를 보았다. 교내의 산학협력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할 수 있는,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한국인이면 누구나 알만한 외식 브랜드를 보유한 회사의 마케팅 팀에서의 4개월간의 인턴직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공고를 보는 순간 '지원만 하면 붙겠구나' 싶었다. 학교 내에서의 경쟁이었기 때문에 경영학을 전공 중이고 마케팅 공부를 하고 있던 나는 무난히 뽑히리라고 생각했다.
당시 내가 가장 궁금했던 점은 '마케팅 팀에서는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가?'이기도 했지만, 내가 그 안에서 얼마나 일을 잘할 수 있는지였다. 짧게나마 직접 가서 일을 해보면 수박 겉핥기로나마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을 테니, 4개월 후에 내 진로에 대해 다시 결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학점 인정도 해주고(무려 전공학점으로!), 나중에 이력서에 한 줄이나마 쓸 수도 있으며, 작지만 월급도 나온다고 하니 절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지 않은가. 나는 지원을 마음먹었고, 곧 해당 기업의 인사팀으로부터 출근 안내 메일을 받았다.
나는 나의 첫 직장에 출근한다. 물론 당시에는 그 회사가 나의 첫 직장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때는 모든 게 다 잘 될 줄 알았지
인턴 생활은 재밌었다. 학생으로서는 죽었다 깨나도 접하지 못할 내부 정보(ex. 매출 데이터)를 접한다는 것 자체가 흥분되었고, ERP 등을 쓰는 업무환경 덕에 학교에서 이론으로만 배웠던 내용을 직접 해볼 수 있다는 사실 덕분에 꽤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4개월이었던 인턴은 6개월로 조금 더 연장되었다. 그리고 6개월도 채 한 달이 남지 않았던 어느 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부서에서는 더 이상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을 주지 않고 있어서 흡사 말년병장 같은 기분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섭섭하지는 않았지만 아쉬운 마음을 품은 채 구글맵을 들여다보며 동남아 배낭여행 루트를 짜고 있을 때 당시 브랜드 리더였던 부장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너무 농땡이 치고 있었던 것이 걸렸나' 싶은 마음에 쫄리는 마음으로 부장님을 따라 회의실로 따라갔는데 부장님께서
"윤호 너를 채용하고 싶어서 인사팀에도 알아봤는데, 아직 졸업을 하지 않아서 불가능하다. 그러면 학업을 병행하는 방식으로라도 계속 일을 했으면 좋겠고, 졸업 후에 정직원으로 전환하자. 내가 많이 도와줄게."
라는 말씀과 함께 인턴에서 계약직으로 신분이 격상이 되었다. 1년 후 나는 학교를 졸업했고, 약속대로 정직원으로 전환이 되었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꽤 괜찮은 스토리다. 취업 스트레스도 비교적 적었고, 1년 반 정도 같이 일해보니 (아무리 보수적으로 말해도) 얘가 나쁘지 않다 싶어서 전환된 것 아닌가? 나도 기뻤고, 가족들도 기뻐했고, 심지어 몇몇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나름 회사의 귀염둥이(?)로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 시기의 나를 돌이켜보면 나는 당시의 내가 가엽다. 대학생 계약직에서 정직원으로 전환되고 보니 업무의 양과 책임감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었지만, 그뿐이라면 괜찮았을 것 같다. 월급도 늘고 복지혜택도 받으니 시쳇말로 '밥값'은 해야 되지 않는가? 하지만 2년 여 동안 10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칼퇴, 당연하다는 듯이 6시에 잡히는 회의(당시 office hour는 8시~5시였다), 주말과 휴가 때도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 회사 전체의 막내로서 여러 가지 잡역에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등 짬에 치이고 나이에 치이던 그런 시기였다. 그리고 나는 흔히들 마케터에게 갖는 창의적인 이미지의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마케터에게 필요한 역량이 단순히 창의적인 면만은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반짝반짝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대신에 나는 내가 논리적이고 분석하는 것을 훨씬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회사를 다니면서 깨달았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당시 회사에서 새파란 신입이었던 나에게 CRM을 맡겼다. 당시 회사의 고객 데이터는 무작정 2년간 쌓여가고 있었는데 그 누구도 손을 대고 있지 않던 시기였다. 시스템에 돈과 노력을 들였으니 누군가는 이를 활용해야만 하는 시기였고, 그래서 내가 담당자로 낙점이 되었다.
당시 회사 내부는 딱 이런 상황이었다. 어찌나 상황을 잘 표현해 놓았는지 감탄스러울 정도.
하지만 약 1년 정도 업무를 진행하면서 내가 배웠던 것 중 하나는 '이건 혼자서 진행하기에는 불가능한 업무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데이터 분석에 대해 1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 과정을 요리에 비유해보면 내가 겪었던 과정은 다음과 같지 않을까 싶다. 재료(데이터)를 준비하여 요리 도구(각종 분석 툴)를 이용하여 다듬어서 요리(결과물)를 내놓는 과정이 분석의 굵직한 과정이다. 그런데 당시 나는 재료 준비부터 요리까지 직접 했는데 나는 아직 숙련된 요리사도 아니었고 요리 도구는 식칼과 냄비가 다였고, 요리 과정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와서 '그렇게 요리하면 안 된다', '소금을 좀 더 넣어봐', '그냥 다 넣고 푹푹 삶아' 등의 부탁을 해서 정신이 없었는데 막상 요리를 내가면 다들
"아니 맛이 왜 이래? 다시 해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덕분에 내 인사고과는 최하위권을 머물고 있었으며,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그만두기 3개월 전부터는 자발적으로 7시 즈음에 출근을 해서 일평균 근무시간은 12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6시 즈음에 퇴근을 했고, 당시 나의 실장은 나를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야, 맨날 바쁘고 일 많다며. 근데 왜 벌써 퇴근해? 네 선배들, 상사들 다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거 안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