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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호 그리고 보람 Aug 07. 2019

[윤] 영어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던 순간들

무한한 세계, 저 너머로!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이태원의 작은 MICE 회사에서 3개월가량 아르바이트 비슷하게 일했던 적이 있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한 달 전 우연히 당시에 선임으로 모시던 분과 통화를 할 일이 있었다. 내가 필리핀에서 어학연수 후 호주에 갈 예정이라고 말씀드리자 그분께서 웃으시면서 “윤호 씨, 역시 영어 공부가 필요한 것 같죠?”라고 말씀하셨다. 그만두었던 첫 회사에서는 영어 한마디 할 줄 몰라도 업무에 전혀 지장이 없었지만, 그간 겪어왔던 여러 가지 경험 덕분에 그 말씀에 십분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1

이태원에서 일했던 회사는 홍콩에 본사를 둔 글로벌 MICE 회사의 의뢰를 받아 한국에서 열리는 행사의 대행 업무를 주로 진행하였다. 당시 일을 하면서 영어를 쓸 기회가 비교적 많았는데, 나는 그 흔한 토익 공부 한 번 하지 않았던 덕분에 영어 덕분에 창피했던 경험이 매우 많았다.


당시 홍콩에서 한국으로 주로 출장을 오는 담당자 중 Greta라는 여자가 있었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이 여자 덕분에 ‘영어를 못 하면 이렇게 개무시를 당할 수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3개월간 일하면서 3번 정도의 각기 다른 행사에서 이 담당자와 마주쳤었다. 첫 번째 행사에서 비루한 내 영어 실력이 들통났고, 두 번째 행사에서는 "이 남자가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다"(사실 알아는 들었다. 대답을 제대로 못 해서 오해가 쌓였을 뿐...)라는 전화를 사무실로 넣은 후 내게 영어를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봤으며(학교에서 배웠지,라고 하니까 표정이 참 볼만했었다), 세 번째 행사에서는 나를 거의 없는 사람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열심히 일하면 알아주겠거니,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사실 언어는 잘 통하지 않아도 분위기는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불유쾌한 경험이었고, 그나마 회사나 조직의 생리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지금도 그 여자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는 면이 조금 있긴 하다. 하지만 실력이 없으면 x밥 취급을 당하는 것이 순리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고, 덕분에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을 그만둔 직후 거의 바로 첫 회사의 인턴을 시작하게 되어 본격적으로 영어를 공부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 전 새벽 시간을 쪼개서 회화학원에 다니는 등 어떻게든 끈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나는 내가 꽤 영어를 잘하는 줄 알았다. 특히 15년 5월에 혼자 방콕을 갔던 적이 있다. 처음으로 혼자 떠나본 해외여행이었고, 5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호텔 클레임이라던가 현지 투어를 가는 등 자잘하게 영어를 쓸 상황이 꽤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잘 놀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정확히 6개월 후에 이 오만한 생각은 탈탈 털리게 된다.



#2

그해 가을 나는 회사를 그만둔다. 회사를 그만둔 다음 날, 나는 대학생 때부터 숙원이었던 배낭여행을 떠나기 위해 방콕행 비행기에 탔다. 태국과 라오스, 베트남을 거쳐 캄보디아를 들른 후 다시 방콕으로 돌아와 한국으로 돌아오는 2달간의 일정이었다. 사실 여행이라는 것이 참 묘해서 의외로 외국어를 한마디도 못해도 충분히 여행이 가능(실제로 여행하면서 그런 케이스도 많이 보았다)하다. 물론 언어 장벽으로 인해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경험할 수 있는 범위의 차이가 있겠지만, 언어의 구사 여부가 여행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이 여행에서 두어 번 영어로 인한 좌절감을 크게 느꼈다.

앤 해서웨이 넌 내게 모욕감을 주었어.... 그나마 로버트 드니로의 대사는 알아들을 만했다. 그나마....


태국 치앙마이에서 다음 도시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터미널 근처 영화관에서 당시 개봉 중이었던 <인턴>을 봤던 날이 있다. 자막 없이 본 인생 최초의 영화였는데 나는 앤 해서웨이의 대사 절반 이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행히 화면을 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나마 이해할 수 있어서, 비언어적 표현이 의사소통에 이렇게나 큰 도움을 주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나면 개인적으로 평점을 매기면서 내가 본 영화의 리스트를 관리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영화관을 나온 당시에는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판단하여 평가를 하지 못했다. 결국 귀국 후에 자막을 입힌 채로 영화를 한 번 더 보니, 일부 장면은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몹시 자괴감에 빠졌었다.


#3

이틀 뒤, 나는 태국의 국경 근처에 있는 라오스의 작은 마을인 훼이싸이(Huey Xai)에서 1박 2일 코스의 트레킹인 기븐 익스피리언스(Gibbon Experience)에 참여했다. 기븐 익스피리언스는 총 3가지 코스가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라오스의 울창한 산속을 트래킹 하며 계곡 사이는 짚라인으로 넘나들며, 잠은 나무 위에 지어진 집에서 자는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평생 탈 짚라인은 여기서 다 탔다. 다음 도시에서 핸드폰이 부숴져서.. 사진 출처는 기븐 익스피리언스 홈페이지


처음에 이 투어를 알게 되자마자 '굉장히 서구권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구성이네'라고 생각했는데(심지어 가격도 비쌌는데, 1박 2일 코스에 USD $180 정도 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나 다를까 당시 투어 참가자들의 국적은 캐나다, 미국, 호주, 영구,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모두 서구권이었고 나만 그룹의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용어로 영어가 채택되었고 나는 벙어리가 되었다. 와이파이는 고사하고 핸드폰도 안 터지는 산속에서 그들은 몇 시간이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영어로는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만 할 수 있었던 나는 그 재밌어 보이는 대화에 거의 끼지 못했다. 덧붙이자면 그들 모두 친절(심지어 다음 도시에서 다시 만나 생일을 맞은 내게 맥주를 산 사람도 있었다)했고 나를 그들의 대화에 참여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친절함만으로는 극복할 수 있는 한계가 분명 있었다.


배낭여행 당시 나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여행 내내 대부분의 이동을 버스로 한 덕분에 도합 100여 시간 정도를 버스에서 보냈다. 덕분에 책을 읽을 시간은 넘쳐흘렀고(전자책 만세!), 내 인생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충분했다. 그리고 나는 다낭에서 무이네로 가는 야간 버스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작품임은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 책을 읽고 오랜 고민 끝에 외국 생활을 경험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을 한국에서 살았고 그 인생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냈다. 잠깐이나마 경험한 세상은 이렇게 넓고 재밌어 보이는 일로 가득 차 있는데, 왠지 한 도시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냈다는 사실이 왠지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합리적이고 더 여유로우며, 비교적 공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환경에서 일하고 생활을 해보고 싶었다. 이건 외국 생활(또는 서구권 나라들)에 대한 막연한 환상일 수도 있겠지만, 그 환상을 직접 마주하고 부수는 것도 내 몫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6개월 뒤, 나는 필리핀을 거쳐 호주 시드니에 도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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