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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호 그리고 보람 Aug 16. 2019

[윤] 부당함을 참지 않기로 결심한 날

우리 이제 참지 마요. 그동안 많이 참았으니까요.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시드니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여행이 아닌 '거주'를 했던 도시였다. 그래서 호주 생활의 모든 면면을 낱낱이 기록하고픈 유혹이 가득한데, 문자 그대로 매 순간이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 찬 1년이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울림이 컸던 순간은 다음과 같다.




이전 글(날카로운 첫 회사의 추억)에 썼던 나의 첫 직장을 떠올리면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애증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는데, 그 이유는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그 속에서 배운 것도 분명 많았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내 권리를 정의하고 주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회사를 그만두고 깨달은 것이 나의 불찰이긴 하지만...  아래 일어났던 일은 호주에 처음 도착했던 2016년 7월부터 10월까지 겪었던 장장 4개월간의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발단
6월 말 시드니에 도착하여 이력서를 돌리고 좌충우돌 끝에 얻은 일자리는 사장은 중국인, 매니저는 대만인이었던 Rhodes라는 곳에 있는 한 카페였다. 커피와 음식이 모두 맛있고 인테리어도 훌륭한데 무언가 전반적으로 정돈이 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다른 스태프들에게 물어보니, 카페의 매니저 또한 근무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편의상 이 매니저를 E라고 하자. 스태프들 모두 E가 근무하기 이전에 있었던 매니저(본인의 카페를 창업하면서 나갔다고 한다)를 칭송하면서 E를 따르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당시 나는 호주에 도착한 지 1달도 되지 않았던 터라, 낮은 영어 구사력에 경험도 없는 나를 채용해 준 사실에 감읍하여 속으로 충성을 맹세하며 일을 배우고 있었다. 아 참, 시급은 시간당 13불이었다.

나름 동네 명물(?)이었던 카페였다. 주말엔 미어터질 정도.


#전개
나는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는 많이 했지만 그 흔한 카페나 서빙 알바를 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2년이 넘게 일했던 회사는 전국에 1,200개 이상의 매장을 갖고 있었던 외식 프랜차이즈 회사였고, 덕분에 어깨너머로나마 매장 운영에 대해 어느 정도는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당시에 가장 나를 어렵게 만들었던 것 중 하나는 모두가 다른 매뉴얼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밀크셰이크 주문이 들어왔을 때 누군가는 아이스크림이 두 덩어리가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만들고 있으면 또 누군가가 와서 한 덩어리면 된다고 한다거나, 샌드위치를 1분 데우고 있으면 누군가는 30초면 충분하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45초는 데워야지, 라고 하는 식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그까이꺼 대애충, 이라고 하며 했으면 될 일이지만 당시에는 체계화된 매뉴얼이 없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일한다는 것이 나름 스트레스였다.


그리고 서툰 영어와 낯선 카페 문화 또한 내 발목을 잡았다. 그래도 영어는 몇 개월 후에는 나름 요령이 생겨 일하면서도 어찌어찌 의사소통이 되긴 했지만, 당시에는 정말 온 신경을 곤두세워도 손님의 주문을 알아들을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커피를 사랑하는 호주 사람들답게 많은 주문들이 한국에 비해 까다롭고 복잡했다. 커피의 종류도 생소한데(플랫 화이트라는 커피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설탕의 종류와 양도 조절하고(이퀄이 뭐야..? 그걸 1 1/2만 넣어달라고...?), 우유의 종류도 다양한 데다(덕분에 한동안 아몬드 우유에 중독되었다), 각종 부가 사항(ex. 샷 추가, 더 뜨겁게/덜 뜨겁게, 컵의 2/3만 채워줘) 등 각종 요구사항을 열거하면 끝도한도 없다. 그러다 보니 손님의 요구사항은 점점 길어지고, 나는 종종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캔 아이 겟 에이 어... 라지 사이즈 디캡 소이 캡 엑스트라 샷 앤 엑스트라 핫 플리즈. 암 고나 해브인 히어 벗 캔 아이 겟 애즈 어 테이크 어웨이 컵?"


이런 주문을 받으면 속으로 나는 '뭐라카노...' 라고 읊조리고 '쏘리?'라고 되묻는 수준이었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고, TAFE에서도 배웠던 내용이지만 현실은 이보다 가혹하고 복잡했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가 도와줬으면 참 좋았을 텐데 도와주기는커녕 가장 스텝들을 신경 써야 할 매니저가 나를 무시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너는 왜 모르면 질문을 안 하느냐', '왜 손님이 없으면 가만히 있느냐, 찾아서 청소라도 해야지', '왜 주문받을 때 다른 것을 권유하면서 업셀링을 하지 않느냐', '너 TAFE에서 Hospitality 배우고 있는 거 맞아?(당시 나는 K-Move 사업의 일환으로 지원을 받아 17주간 TAFE라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등등. 이런 이야기들을 다른 스태프들의 모두 있을 때 하는 경우가 많아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었다. '이게 호주(또는 대만, 또는 중국)의 방식인가?' 싶다가도 이건 아닌데, 싶은 생각이 참 많이 들었었다. 영어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바보는 아니었던지라 다음에도 또 그러면 때려치울지언정 되도 않는 영어로라도 치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다. 이 시점이 이 카페에서 일한지 한 달가량 됐을 때였다. 시급은 1불 올라서 14달러.


#위기
호주는 월급이 아닌 주급으로 페이를 받는다. 근무 스케줄 또한 대부분 1주일 단위로 받기 때문에 매주 로스터를 전달해주는 날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로스터는 사람이 짜는지라 때로는 문제가 생겨 늦어질 때가 있고, 그 주 역시 그런 날인 줄 알았다.


어느 토요일, 출근해서 스태프들에게 물어보니 이미 다들 로스터를 받았다고 했다. 다른 스태프의 핸드폰을 빌려서 확인해보니 나는 다음 주에 아예 스케줄이 없었고, 그 카페의 유이한 다른 한국인 스텝은 평소 주당 40시간이 넘게 일하다가 4시간만 받는 기염을 토했다. 워홀러로서 일하는 만큼 버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렇게 일하면 당연히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내 짧은 영어로는 도저히 전화로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문자로 매니저와 이야기를 했다.


"E, 나 왜 다음 주 시프트가 없어?"
"별 이유 없어. 그냥 카페가 바쁘지 않아. 다음 주에 카페 사정이 나아지면 너도 일할 수 있을 거야^^(정말로 이런 이모티콘을 썼다)"
"이해가 안 가는데. 어떻게 '나를 제외한' 다른 스텝들은 일할 수 있어? 로스터를 봤는데, 어떻게 다른 스텝들은 '바쁘지 않은' 카페에서 주당 30~40시간을 일할 수 있는 거야?"
"걔네는 계약된 스텝들이어서 길게 일해야 돼"
"그럼 나랑 Elena(다른 한국인 스태프)만 그 카페에서 계약하지 않은 스태프야? 누가 도대체 '계약된 스태프'인데? 너 이거 지금 충분한 설명이라고 생각해? 나랑 Elena는 병신(idiot)이 아니야"
"Elean는 이런저런 이유(명확히 말하지 않았었다)로 그런 거고... 우리 카페가 요즘 매출이 안 좋아. 그걸 관리하는 게 나의 책임이고.. 네가 매주 일정 시간 이상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오산이야."
"그래, 너 설명 잘했다. 네가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했으면 나도 받아들였을 거야. 그런데 너는 내게 그런 말 할 용기도 없었잖아. 아무 말도 없었고, 메시지나 메일도 없었고, 내 앞에서 말할 용기도 없네, 겁쟁아(coward)."
"내가 너 해고했어?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일 안 하는 게 낫겠네. 나 충격받았어."
"해고했다고 말한 건 아니지만 다름없잖아. 스케줄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었고, 그 결과는 시프트가 없는 거네."
"예산 관리는 어느 사업에선 중요한 거야. 그리고 솔직히 나는 이에 관해 누군가에게 설명할 의무는 없어. 너 내일 근무 나올 필요 없고, 네 앞날에 행운이 함께하길 빌어."


나는 이 새끼에게 엿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 절정
2016년 당시 호주의 최저 시급은 시간당 17.7달러였다. 하지만 이건 굉장히 포괄적인 개념의 최저 시급이다. 호주의 임금 체계는 이보다 더 복잡해서, 노동자가 일하는 분야나 경력에 따라 최저 시급이 천차만별이다. 내가 일했던 외식업 분야의 경우 특별한 능력이 없는 노동자가 파트타임으로 근무할 경우 받아야 하는 '최저 시급'은 시간당 23달러가 조금 넘는다. 이른 새벽, 늦은 밤, 주말, 공휴일에 일할 경우 시간 외 수당이 적용되어 시급은 더 높아진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계산했을 때, 고작 한 달가량 일했던 내가 추가로 더 받아야 하는 임금은 1,000불 정도였다. 한화로 환산했을 경우 약 85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Fair Work Ombudsmen이라는 기관이 있다. 호주 노동자와 사업자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된 옴부즈맨 기관으로, 정부 기관은 아니지만 노동자와 사업자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중재 단체다.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한국의 고용노동부와 비슷한 기관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기관 특성상 특히 언더 페이에 관한 중재가 많이 이루어지는데 '중재 기관'인지라 노동자의 편에만 서서 업무를 처리해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고는 신고자의 서류에 기반해서 진행된다고 한다. 다행히 나는 모든 근무 기록과 주급 명세서를 갖고 있어서 수월하게 레포트를 제출할 수 있었다.


https://www.fairwork.gov.au/


다만 FWO는 정부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체불 임금 지급을 강제할 권한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신고가 들어갈 경우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사업주와의 대화 권유 -> 중재를 위한 3자 대면 -> 약식 기소 시 조언 및 도움


만약 노동자의 신고가 타당하다고 여겨지면 FWO에서 사업주에게도 체불 임금을 지급할 것을 '권유'하는데, 이후 임금 지급을 하지 않아 노동자가 기소 후 승소할 경우 체불 임금보다 더 큰 손해(체불임금 지급+벌금 및 영업정지)를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1년짜리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거주 중이었기 때문에 설사 사업주가 체불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소까지 갈 시간적, 심리적 여유는 없었다. 그저 상대가 나의 행동에 지레 겁을 먹기를 바랄 뿐이었다. 사실 신고를 통해서 내가 잃을 것도 없고, 단지 메일 몇 통만 쓰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큰 노력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영어로 된 서류와 메일을 해석하고 그에 맞게 메일을 쓰는 것이 버거웠을 뿐... 이 과정에 한 달이 소요되었다.


#결말
결말은 아래와 같다. 중재를 위한 3자 대면도 가기 전에 세금 250불가량을 제한 체불임금이 카페로부터 2달 후에 입금되었다. 공교롭게도 10월 24일은 내 생일이어서, 덕분에 내 인생 가장 큰 금액의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한동안 일을 못하다가 저 즈음부터 다시 일을 하게 돼서.. 참 안타까운 수준의 balance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 통용되고 참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 나고 자랐고, 나 역시도 그것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첫 회사를 그만두었던 이유는, 쏟아지는 업무와 부당했던 대우를 묵묵히 참아내다가 결국은 한계점을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회사는 그만두었지만 그 점이 못내 아쉬워서 호주에 오기 전부터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다시는 부당함을 견디고만 있지는 않겠다고. 그리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꼭 주장해서 얻어내겠다고.


당시에 주변 얘기(심지어 TAFE의 교수님들조차!)를 들어보면 선진국으로 여겨지는 호주라 할지라도, hospitality 업계에서 최저임금 이하로 임금을 받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인 듯했다. 사실 나는 이 카페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다른 곳에서 잘 적응하면서 일을 했다. 그래서 비록 적은 임금을 받았을지라도 매니저가 나에게 조금 더 착하게 굴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종종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내게 mean 하게 굴었고, 나는 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대로 당하지만은 않겠다'라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덕분에 파란만장한 인생 첫 '실습'을 했고 내가 원하던 것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는 내가 호주에서 이뤄낸 작은 첫걸음이자 큰 성취 중 하나였고, 내 인생의 큰 터닝포인트 중 하나였다. 더 이상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배운 날이었기 때문이다.



ps. 몇 개월 후에 같이 일하던 스태프에게 전해 들었는데, 매니저는 금고에 손을 대서 잘렸다고 했다. 경찰 신고는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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