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호 그리고 보람 Oct 20. 2019

[보] 나는 어쩌다 말레이시아에 오게 되었나

(1) 가벼운 마음 편

마음속 어딘가엔 타지로 떠나오게 된(떠나오고 싶은) 복잡한 이유 또한 분명 있었겠지만, 나를 움직이게 한 건 그런 것들보다는 오히려 가벼운 호기심과 약간의 용기, 거기에 우주의 기운(타이밍)이 더해진 상호작용의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나를 움직이게 한 가볍지만 강력했던 마음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가벼운 호기심]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나는 외국 생활에 대한 호기심이 거의 없었다. 대학 시절 주변 친구들은 교환학생이다 어학연수다 뭐다 해서 짧게 혹은 길게 외국 생활을 경험해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도 외국 생활이 내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해외 생활은 싫다' 같은 것이 아니라 아예 무관심에 가까웠다.


그러다 2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여행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조금 더 길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스멀스멀 함께 올라왔다. 그리고 일주일이 넘어가는 긴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여행지에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귈 기회도 종종 생겼다.


한 번은 방콕 시내의 대학 학생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다가 그 학교 학생들과 친해지게 된 적이 있었는데 외국 친구들을 사귀는 게 재밌고 신나면서도 짧은 영어 탓에 표면적이고 간단한 이야기만 나눌 수 있다는 게 여행 내내 너무나 아쉬웠다. 영어만 조금 더 할 줄 알면 내가 너네 진짜 웃겨 줄 수 있는데! 하면서. 자발적으로 영어 공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물론 생각을 가졌다고 행동했다는 건 아니다)


그렇게 야금야금 짧고 긴 여행을 하며 해외 생활과 영어 공부에 대한 관심을 느껴가던 중 윤호를 만났다. 윤호는 내가 해보지 못한 해외 생활 경험을 이미 가지고 있었고, 어려운 점이 많지만, 그것이 가진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해 주었다. 그곳에서라면, 평생 미뤄뒀던 영어 공부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 속에서 좀 더 재밌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또 요즘 남들 다 한다는 유튜브를 나도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외국에서라면 콘텐츠도 쭉쭉 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약간의 용기]

외국에 나가서 살아보자는 결정을 하고 가장 걱정됐던 건 돈과 커리어였다. 또래 친구들과 비교해 돈을 적게 버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돈 버는 재능보다 돈 쓰는 재능이 월등하게 뛰어난 탓에 통장에 든 돈은 언제나 미미했다, 또한 한국에서 내가 해온 일은 소위 말해 '입으로 먹고사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타국에서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돈도 없고 돈도 못 벌 텐데 앞으로 어떻게...? 가 남게 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1도 안 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런류(미래에 대한)의 고민이 될 때, 나는 치밀한 계획으로 미래에 대비하기보다는 주로 '될놈될', '야잘잘' 쪽에 한 표를 던지는 편이다.

보람아, 돈은 원래 잘 벌던 사람이 잘 벌어


한국에서 프리랜서로 만 5년간 일하면서 내가 얻게 된 결론은, '내가 열심히 한다고 그게 다가 아니고, 내가 잘한다고 그게 다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운에만 맡긴 채 방에서 정화수나 떠 놓고 빌겠다는 뜻은 아니고... 어느 정도 수준의 노력과 실력이 기반이 되면 그다음 결과는 어느 정도 운명에 닿아 있더라는 것이다.


일례로, 나는 프리랜서 0년 차에 가장 많은 돈을 벌었다. 내가 뭘 잘해서가 아니고 그냥 가만히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어도 막 일이 들어왔다. 프리랜서 강사 페이는 시대에 역행하는 탓에 그 당시에는 강사 페이도 지금에 비해 좋은 편이었다. 이 역시 노력이나 실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의 영역일 것이다. 반면 다음 해에 연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이 짓을 하루라도 빨리 그만둬야 하나 싶었는데 1~2년 개미같이 잘 보내고 4~5년 차쯤 되니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어 매년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0년 차의 7~80%의 수입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프리랜서 0년 차의 연봉은 그 이후 단 한 번도 뛰어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될놈될 계산법에 따르면 0년 차에 나는 실력도 '0'이었지만 운이 '90'이었던 해였기 때문에 도합 90 정도의 수입을 얻었던 것이고, 1년 차엔 실력이 '20'쯤으로 성장했을 테지만 운 역시 '20' 정도 되는 해라서 '40'의 수입밖에는 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4~5년 차에는 실력이 '50'쯤 성장했고 운이 '20~30' 정도 따라와서 7~80%를 유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게다가 실력에는 100이라는 한계치가 있지만, 운에는 리미트가 없는 것 같다). 이런 계산법이 실제로 있냐고? 그건 아니고 그냥 나의 프리랜서 생활을 돌이켜 봤을 때 그랬던 것 같다는 의미다. 실제로 프리랜서들 사이에서는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무튼, 내가 외국에 나가 있어도 무언가로 '될' 운명이라면 나는 결국 그렇게 될 것이고(물론 아무것도 안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내가 뭘 해도 안 될 놈이라면 한국에 있어도 크게 별 볼 일은 없었을 거라는 얘기다. 거기에 혼자 외국 생활을 시작했다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도전이 되었겠지만, 나보다는 경험이 더 있는 윤호가 함께 할 테니 오리알로 바위 치기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굳이 용기를 내지 않을 이유도 딱히 없었기 때문에, 지금 하고 싶은 것에 충실해 보기로 했다.



[우주의 기운](타이밍)

6월 2일.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에 86화 에피소드가 공개된 그 날, 나는 이시이 유카리 님(별자리 점성술가)을 영접하게 되었다. 내 생일은 9월 16일 처녀자리다. 이시이 유카리 님은 2019년 처녀자리의 운세를 다음과 같이 점쳤다.



아아 우주의 미물인 뿐인 내가 어찌 운명을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처음 별자리 운세에 대해 떠들어 대는 나를 보며 윤호는 '너는 심리학을 전공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유사과학을 믿냐!'며 나무라는 듯 말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회사 면접을 앞둔 주, 자신의 주간 운세를 확인하고는 절로 무릎을 '탁' 치며 우주의 미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윤호는 우주의 기운에 따라 면접에 합격했다. 나는 가벼운 호기심과 약간의 용기, 우주의 기운의 상호작용으로 이곳, 말레이시아에 오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윤] 해외 거주 도전기(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