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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호 그리고 보람 Oct 29. 2019

[보] 우리가 결혼하는 데 걸린 시간, 단 14일

결혼, 이렇게도 할 수 있나요?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2019년 6월 24일, 우리는 결혼을 하기로 했고 실제로 부부가 되기까지(혼인신고까지)는 그날로부터 단 2주가 걸렸다. 지금부터는 그 14일간의 급박하고도 험난했던 여정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때의 급박했던 14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우리의 상황에 대해 조금의 설명을 덧붙인다면, 우리는 내년(2020년) 4월쯤 결혼 계획을 세우고 있는 상태였고, 결혼 후 가능하다면 외국(어딘지는 모름) 생활을 한번 해보자는 이야기를 나눈 상태였다. 각자 서로의 부모님과는 딱 한 번씩 뵙고 인사드렸다.


'내년에 결혼하자!'는 이야기만 러프하게 던져두고 만남을 이어가던 중, 6월 초 윤호가 다니던 회사의 계약 종료로 이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었다. 이 참에 윤호의 새로운 취업처를 알아볼 때 해외 취업까지 조금 더 범위를 넓혀보기로 했다.


그리고 2019년 6월 24일, 윤호가 말레이시아의 한 회사로부터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6월 24일 D-14] - 결혼 결정

이 날 윤호가 말레이시아 회사로부터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윤호야 취업이 되었으니 워킹 비자를 받아 말레이시아에 가게 되겠지만, 우리가 함께 나가기 위해서는 내 비자가 고민되는 상황. 어학연수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서 학생 비자를 받는 방법도 있었지만, 어차피 내년에 결혼하기로 했기에 그 시기를 조금 앞당겨서 배우자 비자(디펜던트 비자)로 함께 말레이시아에 가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한 달 안에 결혼식을 올릴 수는 없으니, 가족들끼리만 모여 상견례 겸 결혼식을 하기로 윤호와 이야기했다.



[6월 25일 D-13] - 각자 가족에게 허락받기

앞서 이야기했지만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과 내년 4월쯤 결혼할까 한다'는 언질만 각각의 가족에게 주었을 뿐,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나 계획이 오간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윤호가 말레이시아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치르는 기간이 일주일 남짓이었는데, 2차 면접 직전 엄마에게 '윤호가 해외 취업을 준비 중인데 어쩌면 합격할지도 모르겠다. 합격하면 나도 같이 나가려고 한다.' 정도의 정보를 공유(통보) 한 상태였다. 그리고 윤호가 합격 통보를 받은 다음 날 '윤호가 합격했고 결혼 후 나도 함께 말레이시아로 갈 거다'라고 말씀(통보) 드렸다.


올해 설 즈음 엄마에게 처음 윤호와의 결혼을 이야기(통보)했을 땐, '그래. 더 늦기 전에 빨리 시집가라'며 결혼을 부추겼고, 최종 합격 며칠 전 '윤호가 해외 취업을 준비 중인데 합격하면 결혼해서 함께 가겠다'라고 했을 땐 '그래, 결혼식이 뭐 중요하냐 가서 잘 살아라' 했던 엄마였는데 막상 '윤호가 합격했고, 한 달 후부터 출근이다'라고 말하자 엄마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평생을 제멋대로 살더니 결혼도 네 마음대로구나"


우는 엄마를 달래며, 나는 물었다.


"엄마, 그래서 상견례(겸 결혼식)는 언제가 괜찮으실...? 빠르면 빠를수록 좋..."



[6월 29일(토) D-9] - 커플링 수령

타임라인을 보면 대충 감 잡았을 듯싶지만, 이 커플링은 결혼을 위한 건 아니었다. 6월 30일이 우리가 만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라 기념일을 위해 보름쯤 전에 맞춰둔 것이었는데, 이렇게 된 김에 이 커플링을 웨딩링 겸 끼면 되겠다 싶었다. 결혼반지도 못 끼고 나가는 줄 알았는데, 우주의 기운이란 이런 것일까...? 개이득.


[7월 6일(토) D-2] - 상견례 겸 결혼식

그 사이 윤호는 우리 오빠를, 나는 윤호 어머니를 한 번씩 더 보았고 7월 6일 송파에 위치한 일식집에서 양쪽 가족이 모두 모였다. 당사자들뿐 아니라, 각자의 집에서 우리 둘 모두가 개혼인 탓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전부 상견례도 처음이고 결혼식도 처음인 상황. 아마도 모두가 전날 밤잠 설치며 긴장하고 걱정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양쪽 어머님께서 분위기를 하드캐리 해주신 탓에 누구 하나 크게 불편해지는 것 없이 상견례 겸 결혼식이 잘 마무리되었다. 이날 이 자리에서는 우리의 결혼 선언과 함께 이날 한 끼 식사 자리를 제외한 모든 것(예물, 예단, 혼수 등)은 생략하기로 합의했다.



[7월 8일(월) D-day] - 혼인신고

누구는 결혼식을 올리고도 1~2년씩 후에 혼인신고를 하기도 한다는데, 우리는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서라면 하루라도 빨리 법적 혼인 관계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상견례 겸 결혼식을 마침과 동시에 혼인 신고를 하러 갔다. 나는 왕십리, 윤호는 경기도 성남에 살아서 송파구에 둘 중 누구도 연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데이트하며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낸 곳이 잠실 인근이었기 때문에, 데이트를 겸해서 혼인신고는 송파구청에서 했다.



[7월 13일(토) D+6] - 드레스 제작 완료

결혼식은 하지 않으면서 갑자기 무슨 드레스냐? 싶겠지만... 엄마는 젊어서부터 옷을 만드셨고, 지금도 옷을 만드는 일을 하고 계신다. 원래 윤호와 내가 내년 4월쯤 결혼식을 하자고 이야기했을 때 나는 엄마가 만들어 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윤호와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 엄마에게 내년쯤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달라고 가볍게 이야기를 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고 바로 드레스 옷감을 떠 둔 상태였고, 웨딩드레스도 어느 정도 밑 작업을 해 놓은 상태였다고 한다. 혼인신고 후 엄마는 드레스 제작에 박차를 가하셨고 곧 드레스를 완성시키셨다. 우리는 결혼식은 하지 않게 되었지만, 덕분에 나는 엄마가 만들어 준 웨딩드레스를 가지고 말레이시아에 갈 수 있었다.

47년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웨딩드레스



[7월 15일(월) D+8] - 신혼여행

사실 결혼이 결정된 6월 24일 이후로 우리는 엄청나게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각자 가족들과 함께 최대한 시간을 많이 보내야 했고, 주변 친구 및 지인들에게도 이 상황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윤호는 출국 및 입사 준비를, 나는 현재 하고 있는 프리랜서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그래서 사실 신혼여행까지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윤호가 그래도 아쉽지 않겠냐며 시간을 내 부산 여행이라도 잠시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부산은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윤호에게 프로포즈를 받은 곳이자 우리가 서울 이외에 가장 좋아하는 도시이기도 하니 우리에게 뜻깊은 장소겠다 싶었다.


부산으로 신혼여행 가서 무얼 했냐고?


프로포즈를 받기 직전에 갔던 곱창집과 프로포즈 직후 자축을 위해 갔던 바에 들려 우리의 결혼 소식을 알렸고, 나머지 시간은 '지난 여행에서 못 먹어서 아쉬웠던 것', '지난 여행에서 먹었지만, 또 먹고 싶은 것'들의 리스트를 알차게 추려 열심히 먹고 또 먹고 왔다.

명색이 신혼여행인데 우리 둘이 나온 사진은 없고...


[7월 17일 D+10] - 결혼 알림(통보) 엽서 제작

결혼식을 하지 않으니 따로 청첩장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우리의 결혼을 알리고 기념도 할 겸 엽서를 제작했다. 이것도 마치 우주의 기운인 듯 바로 얼마 전 포토샵 드로잉 수업을 들었던 덕에 내가 직접 간단하게 기념엽서를 제작할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로 떠나기 전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직접 전달했고, 시간이 부족하거나 여러 상황 때문에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우편으로 발송했다.


[7월 22일 D+15] - 윤호 출국

아직 비자 승인이 나지 않은 나는 한국에 남아 가족 및 친구들과 시간을 더 보내기로 하고 윤호는 입사 일정에 맞춰 먼저 말레이시아로 떠났다.


[8월 15일 D+39] - 말레이시아에 도착

8월 초중순쯤 비자가 승인이 나서 급하게 쿠알라룸푸르로 떠나는 비행기표를 끊었고, 8월 15일에 드디어 나까지 말레이시아에 도착했다. 이 날부터 비로소 우리는 서류상으로만 부부가 아닌 진짜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이때 우리 정말 대단했구나(미쳤었구나) 싶다. 또 넓은 마음으로 이 모든 걸 이해해주신 양쪽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 또한 크다. 사실 부모님을 포함해서 이 과정을 지켜본 몇몇은 걱정하는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기도 했다. 지금이야 너네 둘이 좋으니까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겠지만, 막상 살다 보면 아쉬워질 날 올 거라고. 그 '살다 보면'이 언젠가 올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우린 아주 매우 괜찮다.


개인적으로 '결혼할 사람은 따로 있다'는 말이나 '결혼은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연애든 결혼이든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게 무엇이든 나와 잘 맞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데 집중해야 하며, 결혼은 그 누구도 아닌 온전히 두 사람만의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나는 나와 잘 맞는 사람과 오롯이 우리 둘만의 상황과 입장을 고려한 결혼식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말도 안 되고 이상한 결혼식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내게는 가장 잘 맞는!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얘네는 결혼을 좀 이상하게 했네?' 라거나, '와 14일 만에 결혼이라니 진짜 쩐다!' 같은 감상 대신 '오, 이런 식으로 결혼식을 하는 경우도 있군!'과 같이 결혼에 대한 또 다른 한 가지 선택지, 혹은 예시를 더 갖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모두가 이상할 때 우리 모두 이상해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래야 우리 모두 결혼 때문에 지치지 않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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