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 이주 4개월 차의 의견으로,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어느덧 말레이시아로 넘어온 지 4개월 정도 흘렀다. 모든 일이 순조롭지만은 않았지만, 어쨌든 정착 초기의 어려움(?)을 견뎌내고 나니 조금씩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겨 그동안 말레이시아 생활을 통해 느꼈던 장/단점을 한 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런 류의 후기가 그렇듯이, 개인적인 경험과 관점을 바탕으로 작성될 예정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바라는 바이다.
1. Work and life balance
따져보니 나는 한국에서 총 3년가량 일을 했다. 특히 2년을 다녔던 첫 회사는 너무나도 일이 많아서, 제시간에 퇴근은커녕 내 여가시간을 갖기조차 힘들었다. 종종 회사에 오래 붙어있어도 잘 견디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나는 전혀 그런 부류가 아님을 이내 깨달았고, 그 후로 일과 생활의 밸런스를 지켜내는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되었다.
지금 일하는 곳은 야근을 강제하지 않는다. 물론 업무가 넘치고 처리가 안 되는 경우에는 야근을 하는 팀원들도 있고, 가끔씩은 나도 퇴근시간을 넘겨서 일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내가 처리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업무가 진행되고 있어 야근에 대한 부담은 없는 편이다. 사실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새롭게 일할 곳의 업무가 내게 잘 맞을지 남몰래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왜냐면 나와 보람이는 이 곳으로 이민을 온 것이 아니고 워킹비자를 통해 거주 중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신분으로 비자를 해결하려면 워킹비자를 얻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데, 비자뿐 아니라 여러 가지 계약사항이 회사를 통해 걸려있는지라 만약 일이 안 맞고 힘들 경우 쉽게 그만둘 수도 없어 상당히 골치 아픈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실제 업무를 진행해보니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일할 때보다 괜찮다.
요즘은 보통 퇴근을 하면 주중에는 요가를 가거나 넷플릭스를 본다. 게다가 업무 절차상 주말에는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주말에는 일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충분히 휴식을 취하거나 보람이랑 시간을 보낸다. 당연히 누렸어야 했던 생활 패턴인데 이제야 비로소 말레이시아까지 넘어와서 경험하게 되니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2. 결혼 생활
이전 글(우리가 결혼하는 데 걸린 시간, 단 14일)을 통해 읽어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나와 보람이는 내가 말레이시아로 취업이 결정된 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후다닥 혼인신고만 올린 채 말레이시아로 넘어오게 되었다. 가족들을 포함하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식도 올리지 않고 외국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 걱정했지만, 결혼 3개월 차가 지난 지금 나와 보람이는 종종 말한다.
결혼식 안 하고 오길 잘했어
물론 우리도 종종 다투는 평범한 커플이고, 특히 같이 산지 얼마 안 됐을 때는 갈등도 있었지만 외국에 나와서 살다 보니 가장 좋은 점은 남의 눈치 안 보고 신경 안 써도 된다는 것이다. 나와 보람이 둘 다 한국에서 30여 년간 살면서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살았는데, 머나먼 이역만리로 넘어와 서로를 바라보면서 산다는 것 자체로 우리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 그러다 보니 더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고, 관계도 이전보다 더욱 돈독해지는 느낌이다. 아직 신혼이라서 그렇다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나갈지는 두고 보면 알 일이다 :)
https://www.youtube.com/watch?v=hqSHmhJb4Qo&t=0s
3. 동남아 여행
아직 새로운 나라, 새로운 직장에 적응 중이라 여행은 가까운 페낭 한 번 갔다 왔을 뿐이라 나의 경험담은 아니지만, 말레이시아에 산다는 것은 동남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축복 같은 일이다. 지리적 이점 덕분에 가격도 저렴할뿐더러 한국에서 직항으로 가기 힘든 곳도 얼마든지 다녀올 수 있다. 들어보니 동료들은 한국에서 밤도깨비 여행으로 일본에 가듯이 주말마다 방콕을 들락거리고, 심지어 오늘 저녁이나 한 번 먹자고 연락했던 내 동생은 지금 싱가포르에 있다고 한다.
나와 보람이는 내년 2월 태국 치앙마이로 여행을 계획 중이다. 사실 요즘 치앙마이 한 달 살기가 유행이라고 하는데, 다른 유명한 동남아 여행지(ex. 방콕 or 호치민) 가듯이 한국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치앙마이를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왜냐고? 아래 사진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비행기 가격으로 치앙마이를 갈 수 있다. 동남아 여행을 좋아하는 나와 보람이도 내년부터는 이 장점을 최대한 많이 활용하려고 한다.
4. 여전히 모험을 찾아 떠나 있다는 느낌
비록 결혼을 하고 직장을 잡아 말레이시아에 거주 중이지만, 나와 보람이는 긴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말레이시아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보람이는 집 근처 공유 오피스에 등록하여 출근도장 찍듯이 방문하며, 여전히 블로그와 유튜브를 운영하면서 한국어 과외를 하며 세상 재미있는 일들을 찾아내려고 노력 중이다. 나 역시 그런 보람이를 도우면서 뭔가 신기하고 흥미로운 일이 없나 항상 더듬이를 곤두세우고 있다(이 글을 쓰던 중에 홍콩 친구로부터 한국 뷰티 제품 사업을 하고 싶은데 같이 이야기해보자는 전화를 받았다!). 아직 구체적인 성과를 낸 것은 없지만,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더 나아가 이런 소소한 노력들이 우리의 삶을 더 재미있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오늘도 카페에 나와 글을 쓰고 보람이는 영상편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 사는 곳에 좋은 일만 있으랴. 곧 말레이시아 생활의 단점 편도 써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