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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호 그리고 보람 Nov 24. 2019

[윤] 말레이시아 생활 4개월 후기-단점 편

쿠알라룸푸르 이주 4개월 차의 의견으로,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며칠 전에 말레이시아 생활의 장점 편을 썼었는데,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장점만 보면서 살려고 해도 어찌 좋은 점만 있으랴. 오늘은 짧은 4개월간의 말레이시아 생활에서 느꼈던 단점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종잡을 수 없는 일처리] 

사실 나라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데, '동남아시아'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서 말레이시아의 문화를 설명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ex. 태국, 베트남 등)에서 사는 사람들이 느릿하고 정확하지 않은 일처리로 고생했던 후기를 읽다 보면 어쩌면 지정학적 위치에서 비롯된 이들 특유의 문화가 있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사실 처음에는 몰랐다. 입사 초기에는 회사에서 비자 문제나 은행 계좌 개설 등 행정적인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고, 회사의 일처리 자체도 생각보다 굉장히 빠른 편이어서 불편함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이미 말레이시아에서 3년 가까이 살고 있었던 동생을 통해 말레이시아의 일처리에 대해 악평을 여러 번 들었건만, '생각보다 살만한데?' 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살아가게 되면서 슬슬 말레이시아인들의 일처리에 대해 경험을 하다 보니, 이내 내 생각이 오만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사 초기에 필요한 물건이나 가구들이 많아 온라인으로 주문을 할 때가 많았는데, 택배가 오는 시간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예상 도착일은 3~7일 같이 언제쯤 물건을 받을 수 있을지 가늠조차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보통 구매해놓고 잊을만하면 상품을 받는다), 오후에 배송받아야 할 물건이 아침에 온다거나 그 반대일 경우도 허다했다. 한 번은 이사 초기에 냉장고에서 물이 새서 집주인에게 급하게 연락한 적이 있는데, 고장 난 냉장고를 확인하러 사람이 오는데 5일이 걸렸고, 수리를 할 수 없어 냉장고를 가져갔는데 집주인조차 업체로부터 고장 난 냉장고에 답변을 받지 못해 결국 새 냉장고(!)를 놔주기로 했다.   

이 물건은 하루 뒤 또는 6일 뒤에 올 수 있습니다 (좌) / 냉장고가 고장 나서 급박했던 건 나와 보람이 뿐이었나 보다. 메세지 날짜에 주목해 주시길...(중간/우)


또한 보람이의 은행 계좌를 열어주기 위해서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보람이가 디펜던트 비자로 거주하는 까닭에 나와 보람이의 공동명의로 계좌(Joint account)를 열 수밖에 없었다. 이 계좌를 열기 위해 2개 지점의 은행을 5번 방문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처음 갔던 지점에서는 기껏 서류를 다 작성하니 "서류 검토를 위해 1주일은 기다려줘야 하고, 1주일 후에 우리가 연락 주겠다"라고 답변을 주어서 집으로 되돌아왔다. 그다음에는 같은 은행의 다른 지점으로 갔는데, 서류를 다 작성하니 "접수는 완료되었고, 계좌 개설 및 카드 수령은 영업일 하루가 지나야 가능하다"라고 해서 알겠다고 하고 며칠 후에 방문하니 "시스템이 다운됐다. 지금은 업무가 어렵다"라며 시스템이 복구되면 연락을 준다며 내 전화번호를 받아갔다. 당연히,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다음 주에 은행을 가니 "시스템이 다운됐다. 내일 와라."라고 말했다. 언제쯤 복구가 되는지 언급도 없고, 심지어 이번에는 내 연락처를 받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이번에도 시스템이 어쩌고, 라고 하면 대판 싸울 각오와 함께) 그다음 주에 또 방문하니 그제야 계좌발급을 완료하고 카드를 수령할 수 있었다.


나도 안다. 한국이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정도로 행정처리 및 일처리가 빠르고, 이 속도를 다른 나라에서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하지만 호주와 캐나다에서 살았을 때는 일처리가 한국보다 느리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내가 문의(신청) 한 일이 잘 되고 있긴 한 걸까'라는 불안감은 없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살다 보니 일의 진행사항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ps. 참고로 1주일 후에 연락을 준다던 첫 번째 지점은 방문 후 한 달이 지난 후에야 내게 전화해서 "우리가 서류 잘 살펴봤는데 계좌 열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네 재직증명서의 실물이 필요한데, 나중에 우리 지점 방문할 때 가지고 올 수 있어?"라고 말했다. 전화를 받던 당시 회사 트레이닝이 있어 일단은 알겠다고 대충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생각해보니 재직증명서는 이미 은행 방문 시 서류를 작성할 때 같이 제출을 한 상태였다... 뭐지?


https://www.youtube.com/watch?v=xZ6rbxzgnM8&t=16s

계좌 개설을 위한 두 번째 지점 첫 방문의 빡침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입니다...


[말레이시아 음식 & 커피]

 나와 보람이는 늘 생각한다. 도대체 맛있는 말레이시아 음식은 어디서 먹을 수 있지? 정말 생각보다 의외로, 먹을만한 말레이시아 음식을 찾기 어렵다. 처음에는 내가 너무 입맛이 까다롭고 향신료가 강한 음식을 즐기지 못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태국 쳐돌이에 세상의 온갖 향신료를 섭렵한 보람이도 말레이시아 음식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동남아시아 음식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비슷한 동남아권 문화로 여겨지는 태국과 베트남의 음식이 얼마나 다른지 한 번 생각해주시길 바란다.


분명 내가 알기로는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중국계+인도계가 섞여 다채로운 식문화를 자랑한다고 들었는데, 내 입맛에 맛있는 음식을 찾기는 여전히 어렵다. 말레이 음식과 인도 음식은 대체로 간과 향신료가 세고, 더운 나라다 보니 쉽게 상하지 않는 튀김류 음식이 주류를 이룬다. 그나마 중식을 좋아해서 중식당은 종종 가는 편이지만 중식 특성상 지지고 볶는 기름진 음식이 많다. 아시다시피 튀김이나 기름진 음식은 처음에는 좋아도 먹다 보면 물리기 마련이라, 말레이시아 음식은 우리에게는 도무지 매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기에 보람이와 나는 요즘 강제로 요리실력을 업그레이드 중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4JBWUaK11eU


게다가 보람이는 정말로 커피를 사랑하는 커피 매니아인데, 마음 붙일만한 카페를 찾지 못해서 말레이시아 생활 초반에 엄청나게 우울해했다. 사실 연애를 하면서 보람이가 커피를 좋아하는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맛있는 커피를 못 먹고 하루하루 기분이 다운되는 보람이의 모습을 보면서 '이 정도로 커피를 좋아했나' 싶어 살짝 당혹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집 근처에는 걸어서 15분 거리의 스타벅스 외에는 갈 만한 카페가 없고(사실 있었는데 극악의 맛을 자랑했고, 그나마도 이사온지 한 달 만에 가게 문을 닫았다..), 어쩌다 주말에 보람이의 기분전환을 위해 일부러 찾아간 카페들도 영 성에 차지 않았다. 대체로 쿠알라룸푸르에서 유명하다 싶은 카페들은 산미가 강한 커피를 판매했는데, 보람이는 산미 있는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사실 커피 퀄리티도 높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9월에 보람이의 생일선물로 네스프레소 기계를 하나 장만해 주었다. 다행히 네스프레소 머신은 보람이가 매일 먹기에는 만족할만한 커피를 열심히 제공해주고 있는데, 가끔은 나조차도 '단골처럼 방문할 수 있는 카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보람이는 오죽할까 싶은 마음이다.



물론 세상에 완벽한 곳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고, 아직 4개월밖에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말레이시아의 모든 면을 안다고 하기에는 당연히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시아 아쉬운 점들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기에 잠깐이나마 푸념해 보았다. 아마도 지금 느끼는 단점들도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가 되면, 말레이시아에 적응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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