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찍은 됐고 당근만 받을게요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얼마 전, 어떤 분께서 나에게 얼굴이나 개인적인 정보를 공개하면서 유튜브를 하는 게 걱정되는 부분은 없는지, 어떤 마음 가짐으로 하고 있는지를 물으셨다. (실제로 나는 유튜브뿐만 아니라 네이버 블로그 그리고 브런치에서도 나의 얼굴은 물론 이름과 기본적인 정보 등을 공개한 채 글을 쓰고 있다.) 그 당시에도 답변을 하긴 했지만 그 후 '나는 진짜 무슨 용기 + 생각으로 이런 활동들을 하고 있나' 곱씹으며 생각하게 돼서 써보는 이야기. 꼭 얼굴 공개에 대한 내용이라기보다는 불특정 다수에게 나라는 사람을 내어 놓는 일에 대한 불편함이나 걱정 등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글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일단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고, 얼굴/정보 공개에 따른 위험과 불편함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블로그 초기 스토커를 경험하기도 했고(블로그에 올리는 정보 종합해서 우리 집 대략적인 위치 파악하고 자기도 근처에 산다면서 만나자고 함. 거절하니 내 전화번호 알아내서 반쪽짜리 자기 얼굴 사진 보냄.. ㅎ 차단 + 무시했지만 이후에도 몇 개월에 한 번씩 다른 아이디로 쪽지를 보냈었는데 다행히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특히나 유튜브를 시작하고부터는 랜선 아버지, 어머니, 선생님, 언니, 오빠 기타 등등.. 다양하고 예상치 못한 조언(?)을 듣는 일도 잦아졌다.
아무튼 내가 무슨 마음가짐으로 얼굴을 공개하고 유튜브(블로그와 브런치)를 시작하게 됐냐면,
1. 나를 안다고 해서 나에게 해코지할 확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여러 가지 나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 상에 노출하고 있다 보니 안전에 대한 부분은 당연히, 때때로 걱정이 된다. 이미 내 유튜브에 우리가 사는 콘도 이름이 뭔지 묻는 사람이 꽤 많은데 사실 다른 건 몰라도 현재 살고 있는 집 정보를 공개적으로 노출하는 건 이것저것 다 공개한 나여도 여전히 꺼려지는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죄송하지만 그런 물음에는 답변하지 않고 있다.) 단순히 안전에 대한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일방적으로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내 삶에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은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다.
다만,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들은 '나라는 사람'이 사는 집이 궁금하다기보다는 내가 사는 '괜찮아 보이는 집'을 궁금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러니 막상 같은 콘도에 산다고 해도 그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두진 않을 테고, 이런 맥락에서 100명 중 99명은 아니, 나에 대한 정보를 아는 사람의 99.9999999%는 나를 알고 내가 사는 곳을 안다고 나를 찾아와서 해코지하거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인류에 대한 믿음... 이라기보다는 그냥 그게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혼자 사는 것도 아니니 조금은 더 안전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물론 그래도 항상 조심은 하고 살아야겠지만 말이다.
2. 평가를 미친 듯이 받다 보니 어떤 깨달음을 얻음.
얼굴을 공개하며 유튜브/블로그를 하면서 걱정되는 것 중 또 다른 하나는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하는 평가가 오롯이 ‘나'를 향한다는 것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숨을 곳이 없음)
나는 한국에서 7년을 프리랜서 강사로 일했는데, 내가 하는 강의는 언제나 강의 후 평가가 동반되었다. 이건 직장인들이 받는 인사고과 같은 평가가 아니라 매 강의가 끝날 때마가 교육 대상자들을 상대로 '강의 평가서'라는 설문지를 받게 되는 종류의 것인데, 강의 평가서는 대부분 5점 척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항목은 대체로 이렇다.
- 오늘 강의가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었나요? (1~5점)
- 강의에 만족하나요? (1~5점)
- 강사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었나요? (1~5점)
- 강사는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했나요? (1~5점)
- 강사는 강의를 위한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었나요? (1~5점)
- 교육장 분위기는 괜찮았나요? (1~5점)
- 오늘 강의 중 좋았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주관식)
- 오늘 강의 중 아쉬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주관식)
교육마다 다른데 보통 강사가 교육 후 직접 강의 평가서를 나눠주고 그 자리에서 교육생들은 평가서를 작성한다. 그걸 다시 강사가 취합해 컨설팅사에 제출하고 컨설팅사는 그걸로 결과 보고서를 만들어 클라이언트사에 전달한다(물론 결과 보고서에 강의 평가서만 있는 건 아니고 그중 한 부분에 해당함). 어떤 컨설팅사는 내 평점을 직접 통계 내서 메일로 전달해 주고, 어떤 컨설팅사는 해당 강의에 들어간 강사들의 평점 순위를 나열해 줄을 세워 전달해 준다. (물론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는 경우가 다수이긴 함.)
이걸 분기에 한 번, 일 년에 한 번 하는 게 아니라 매 강의마다 한다. 일 년에 200번 강의하면 1년에 200개의 평가를 받게 되는 셈.
강사를 시작한 초기엔 진짜 저 평가가 너무너무너무 너무 너무너무너무너무 신경이 쓰였다. 유독 강의가 안 풀리는 날은 설문지를 돌리는 것 자체가 두렵기도 했고, 비판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는 마음으로 강의 후 평가지를 한 장 한 장 체크하다가도 1점으로 내리 동그라미가 쳐진 걸 보면 그대로 구겨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고 싶은 적도 많았다. 그리고 보통 강의 평가서는 익명으로 쓰는데 얄궂게도 그걸 내가 나눠주고 내가 걷으니... 이게 참 익명이라고 해도 마음만 먹으면 누가 나한테 좋은 점수를, 누가 나한테 박한 점수를 줬는지 다 알 수밖에 없는 잔혹한 시스템인 것이다.
암튼 강사 2~3년 차까지만 해도 저게 너무너무 신경이 쓰이고 간혹 강의 후 강사들끼리 모여서 정리를 하다가 옆에 있는 강사의 강의 평가서에 5점짜리 동그라미가 유독 많이 보일 때면 나는 저 사람에 비해 뭐가 부족한가. 전문성이 부족해 보였나? 교육생들에게 더 친절했어야 했나? 오늘 괜히 웃긴다고 실없는 소리를 했나?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데 정말이지 미친 듯한 평가를 받다 보니 어느 순간 그 결과에서 어떤 규칙(?) 같은 게 보였다. 그게 뭐였냐면, 내가 스타강사 뺨을 가뿐하게 치고 작두 탄 듯 강의를 한 날도 5점 만점은 잘 안 나온다는 것과, 어쩌다 강의 초반에 한 번 말린 것이 강의 내내 김밥 말리 듯 돌돌 말려 아무 말 대잔치로 끝난 것 같은 날에도 4.3 아래로는 잘 안 내려간다는 것.
그리고 이런 경우도 있었다. 강의 끝 무렵 쉬는 시간에 어떤 교육생이 나한테 와서 "오늘 교육이 너무 좋았다. 느낀 게 정말 많다. 제가 근래 들은 강의 중 가장 도움이 많이 되었다''라고 따로 인사를 전했는데 나중에 설문지를 걷으며 슬쩍 보니 그 교육생이 나한테 만점인 5점이 아닌 4점을 주었던 것. 혹은 반대로 수업 내내 심드렁한 자세로 앉아서 강의 내내 나의 온 신경을 집중하게 만든 교육생이 정작 설문지에는 빼곡히 5점으로 도배를 한 경우도 있었다.
사실 한때는 강의 평가를 잘 받으려고 강의 내용보다 교육생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더 노력한 적도 있었는데 그것도 뭐 드라마틱 한 점수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그러고 나니 어느 순간, 아 그냥 내가 조금 잘하고 조금 못해도 결국 누군가는 내가 한 것보다 더 크게 만족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내가 한 것보다 더 크게 실망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너무나 상대적이었다는 것. 또한 누군가는 아주 만족스러운 것에 대한 점수를 줄 때 '무려 4점'을 주지만 누군가는 썩 나쁘지 않은 것에 대한 점수를 줄 때 '대충 5점'을 준다는 것이다. (이후로 나는 썩 나쁘지 않은 것에 대해 '대충 5점'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이걸 깨닫고 나니 나는 더 이상 강의 평가 점수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간혹 4.9 이상이 나오면 조금 으쓱했고, 4.2점 이하가 나오면 그날 강의를 다시 한번 돌아봤다. 딱 그 정도. 4.3~4.8점 안에서 점수가 왔다 갔다 하면 딱히 으쓱대지도 그리 실망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은 강의를 했다고 생각한 날의 평가와 스스로 망했다고 생각한 날의 평가 점수가 꼭 비례하지도 않았다. 그날 '무려 4점'을 주는 교육생들이 많으면 분위기가 좋았어도 평점이 낮았고 그날 학습자들이 '대충 5점'을 주는 성향인 경우에는 망한 것 같아도 상대적으로 점수가 높을 때도 있었다.)
말이 되게 길었는데, 그러니까 어찌 보면 나에 대한 평가는 나를 평가하는 사람 그 자신에게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를 보며 누군가는 예쁘다고 생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못생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 뭐 가끔 인터넷보다 보면 '나는 김태희 솔직히 그렇게 예쁜지 모르겠다' 이런 글도 있는데 내가 뭐라고...) 누군가는 내 개그에 빵빵 터지겠지만 누군가는 '개드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누군가는 날더러 자기 생각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누군가는 그냥 재수 없는 인간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여전히 평가에 완벽하게 둔감해지진 않았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평가에 날이 설 때면 항상 이 생각을 머리에 떠올리려고 한다.
네 기준엔 내가 그쯤 있구나
3.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얼마 전에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오지은 님과 정소연 님, 이효민 님이 진행하는 EBS 오디오 천국 '오래 달리기'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상황이나 평가, 감정에 천착하게 되는데. 물론 상황이 정말 나쁜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좋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보다 부정적인 일이 덜 빈번하게 벌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오늘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 중 90%가 재미있었지만 돌아서고 나면 내가 했던 10% 헛소리만 기억에 남는다는 것. 밥이 맛있고, 오늘 본 유튜브가 재미있고, 귀염둥이 치타가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나를 반기며 10분 동안이나 배를 까준 일은 '와 씨 오늘 미쳤잖아? 좋아 죽겠네, 역대급 행복이다'라는 생각이 안 들고 그냥 그 순간 '좋다'라는 느낌과 함께 빠르게 휘발되어 버리는데, '오늘 교육생이 나한테 1점을 준 일', '사람들이랑 대화하다가 주제에 안 맞게 딴 얘기 한 일' 같은 건 부정적인 건 감정을 넘어 생각으로 전달돼서 하루 종일을, 일주일을 혹은 평생을 나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그러니 덜 빈번하게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긍정적인 감정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 실제로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유튜브나 블로그, 브런치에는 사실 긍정적인 피드백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부정적인 피드백은 가볍게 넘기고, 긍정적인 피드백 위주로 곱씹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4. 조언은 엄마한테만 받을게요.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조언 같은 걸 하는 사람은 그냥 별로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간혹 조언이랍시고 블로그나 댓글 혹은 실제 생활에서 나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거기에 대한 기본적인 내 생각은 이렇다.
진짜 진심 어린 조언이면 기분이 나쁠 리가 없다는 것.
예를 들어 누군가 내 유튜브 영상을 보고,
'보람님! 영상 재미있게 잘 보고 있어요. 그런데 자막으로 달아주시는 글씨가 너무 작아 놓치고 못 읽게 되는 게 많네요. 혹시 자막을 조금만 더 크게 써주실 순 없나요? '라고 하는 건 기분이 전혀 나쁘지도 않고 조언으로 받아들이겠지만,
'보람님. 전엔 영상 재밌게 봤는데 요즘은 초심을 잃으신 것 같네요. 초심 찾은 영상 부탁드립니다'라는 건 조언인 듯 아닌 듯 불쾌하니 결국 조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혼자 마음에 안 드는 걸 말한 게 조언일 리가 없다. 조언을 가장해서 그냥 나 기분 나쁘게 하는 거지 뭐.
영상이 재미있으면 재미있게 보고 재미없으면 조용히 구독을 끊으면 될 일이다. '거기에 네 영상이 재미없어서 내가 다 안타깝다'라는 얘기를 굳이 할 필요가 있냐는 말이다. 다른 재밌는 유튜브가 얼마나 많은데... 만약 이게 좀 애매하면 같은 얘길 엄마가 했다고 생각해 본다. 엄마가 해도 기분 나쁠 얘기는 조언이 아니다.
"보람아! 엄마가 예전 영상은 너무 재미있게 봤는데 요즘은 초심을 잃은 것 같네? 초심을 좀 찾아봐 딸!"
... 초심을 실제로 잃었어도 듣기 싫고, 안 잃었으면 더더욱 빡친다.
5. 관심받는 게 좋고 재미있다.
기본적으로 관심받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편에 가깝다. (관심받고 싶은 건 정도의 차이만 있다 뿐이지 모든 이들의 기본적인 본성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걸 비하/비난하기 위해 하는 '관종'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겠다.) 근데 사실 관심받는 걸 좋아하는 데 반해서 실생활에선(?) 생각보다 나대지는 않는 편인데(ㅋㅋ) 그건 관심과 함께 오는 몇몇 가지 것들이 두렵거나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너무나 과도한 관심으로 오히려 부담스러워진다든지, 순수한 관심이 아닌 어떠한 목적을 띤 것이라는 게 느껴지는 경우라든지, 관심은 관심인데 그 관심이 부정적인 경우라든지 하는 것들(악플도 관심이라 하니).
그런데 그 관심과 함께 오는 몇몇 가지 것들을 제외하고 누군가가 심플하게 나를 궁금해하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건 싫지가 않다. 또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나누고 누군가가 '저도 그거 좋아요' 하거나 '오 좋네요! 근데 이런 것도 있어요!' 하고 새로운 걸 얘기해 주면 그것도 재밌다.
6. 암튼 그래서 나는 그냥 얼굴도 까고 이름도 까고 유튜브를 한다.
걱정되는 부분이 '0'은 아니지만 내가 하고 싶으니까. 유튜브나 블로그 덕분에 알게 된 인연들도 있고, 얼굴도 본 적 없는 누군가로부터 응원을 받기도 하니까. 누구나 얼굴도 까고 이름도 깔 필요는 당연히 없지만 혹여나 어떤 마음으로 그게 가능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