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 축구, 한없이 격렬한 스포츠
말레이시아에 생활의 소소한 재미 중 하나는 축구였다. '축구는 한국에서도 하지 않았어?'라고 물어볼 수 있을 텐데, 나는 사실 축구를 많이 하긴 했어도 실력이 좋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편이다. 좋아하는 운동을 잘 못하는 것은 때때로 스트레스까지 받는 슬픈 일이다. '어디 가서 기초부터 코칭이라도 받아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말레이시아로 넘어왔는데, 말레이시아에서 찾은 팀은 무려 프로까지 갔던 은퇴하신 선수 분들이 코칭 및 트레이닝을 해주시는 팀이었다.
트레이닝 덕분에 축구에 다시 재미를 붙이게 되었고, 틈틈이 집에서 개인 연습도 진행해서 컨디션과 실력 모두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2020년 9월의 이야기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스포츠에서 실력과 자신감이 애매하게 올라갔을 때 부상을 조심하라고 하는데, 내 상황이 딱 그랬다. 9월 30일에 추석을 앞두고 말레이시아 로컬 팀과 친선 경기가 있었고, 상대편의 실력은 솔직히 만만한 수준이었는데 그 경기에서 심하게 걷어차여서(라고 추정한다. 우리 팀의 누구도 정확한 상황을 보지 못했다)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사실 당일에는 이렇게 심하게 다친 줄도 몰랐다. 공교롭게도 우리 팀의 코치 3분 모두 현역 때 십자인대 수술을 경험하셨다고 하는데(그중에 한 분은 심지어 3번을 다친 후 은퇴하셨다고 한다...) 나 포함 누구도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코치들 모두 '며칠 얼음찜질하면 나아질 것이고, 정 안 좋으면 나중에 병원 한 번 가보라.'라고 말씀하셨고 어쨌든 나도 절뚝이긴 했지만 걸어서 집에 왔기 때문이다.
#전방 십자인대 파열 확정(2020년 10월)
다친 후 추석 연휴여서 랑카위로 여행을 갔다. 보람이가 여행을 가는 것이 맞는지 걱정하긴 했지만, 어쨌든 천천히만 걸으면 움직이기는 할 수 있어서 여행을 갔는데 3일 차 되는 날, 호텔 객실에서 전신 거울을 보니 다친 쪽 무릎이 굉장히 부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이걸 어떻게 다친 후 며칠이 지나서야 비로소 인식을 하게 됐는지 나조차도 이해가 가지 않는데, 아무튼 약간 심상치 않음을 인지하고 코치님께 물어보니 병원에 가보라는 권유와 함께 함께 한국 분이 운영하시는 재활센터를 한 곳 추천해 주셨다. 후기를 찾아보니 한국에서도 굉장히 유명하셨던 분이고 평도 좋아 여행에서 돌아온 날 곧바로 방문을 해 보았다.
재활센터 원장님께서는 내 다리를 구부리고, 펴보고, 몇 가지 동작을 시켜보시더니 "이건 전방 십자인대가 완전히 파열된 것 같은데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정말이지 그 말을 들었을 때 당황스러움과 절망감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이후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해주셨는데, 어쨌든 원장님 본인의 경험(나중에 들어보니 커리어를 시작하신 후 경험하셨던 십자인대 파열 케이스만 1,000건이 넘어가는 것 같다고 하셨다)과 검사했을 때 상태로 미루어보아 십자인대 파열은 확실하고, 십자인대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연골 등의 손상까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꼭 병원에서 MRI를 찍어보라고 권유해 주셨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십자인대 파열의 경우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르게 수술을 급하게 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다(성장기 때 다치면 성장판 손상 등의 문제로 인해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 수술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고 하여 우선 검사를 받은 후 다시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병원에서 MRI를 찍어보니, 역시나 전방 십자인대가 정말 파열되었으며 덤으로 반월판 연골 또한 손상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응급한 케이스는 아니라고 하여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이때가 2020년 10월 초였다.
# 1차 재활
수술을 받지 않으니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가 없는데, 걷기도 힘들 정도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다행히 재활센터에서는 수술을 하지 않더라도 재활을 통해 일상생활은 가능할 정도로 회복할 수 있다고 하여 재활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
재활 자체는 새로운 경험이어서 나름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길고 지난했다. 재활이라고는 평소에 매체로만 접했던 운동선수들의 경험 외에는 아는 바가 없었는데, 짧지만 2달 정도 재활센터를 다녀보니 왜 다들 그토록 힘들어하고 심지어 프로페셔널 선수들도 종종 재기에 실패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일단 굉장히 지겹고, 때로는 좌절스럽다. 부상을 입은 몸으로 수행할 수 있는 운동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는데, 나 같은 경우 처음에 재활운동을 시작했을 때 솔직히 '고작 이런 걸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친 이후 오랜 기간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에 퍼포먼스가 떨어져(근손실이라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그게 안된다. 나도 운동깨나 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전에는 무리 없이 수행했을 운동이 되지 않아 처음에는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이 외의 여러 가지 처치도 병행하며 재활을 진행했는데, 좋아지는 속도는 기대보다 느리고 그 과정은 지루하다. 그리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은 수준이어서(한국에 비교하면 저렴했지만, 그래도 적은 비용은 아니었다) 아마 다친 후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제대로 재활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재활을 진행하면서 움직임은 많이 편해졌다. 격렬한 운동은 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이 정도로 회복된 것이 어딘가 싶어 이 재활센터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여담이지만 만약 말레이시아에서 이 센터를 알지 못했다면 아마 다친 직후 귀국을 심각하게 고려했을 것 같다.
#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재활을 진행하면서 몸 상태는 어느 정도 좋아졌지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어서 늘 불안한 마음으로 생활을 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또는 코로나만 조금 잠잠해지면 한국에 가서 수술을 받고 와야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예측도 불가능한 시기에 살고 있어, 기약 없이 기다리며 내 정신은 피폐해져 갔다.
'다리만 다쳤고, 일상생활이 가능한데 우울할 일이 있나?'라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수술을 받고 그 이후에 최소 반년 정도의 재활을 받아야 이전과 같은 몸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나를 늘 짓누르고 있었다. 또한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가 내 몸에 남아있다는 사실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여러 가지 취미가 있지만 생각보다 운동에서 오는 즐거움에 대해 크게 기뻐하는 사람이었다. 제대로 된 운동을 하지 못하다 보니 스트레스는 해소되지 않은 채 쌓여만 갔고, 결국 이런 부분들이 내 생활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다친 이후 6개월 정도의 시간은 하릴없이 흘러만 갔고, 그 시간이 아까웠지만 애써 잡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하는데, 이런 일이 있음에도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깜냥은 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큰일이 닥쳐도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잠시 한국에 왔고,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을 잘 되었고 회복도 빠른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이제 다시 돌아가서 열심히 재활할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