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고문관

1부. 회사를 떠났지만, 몸은 아직 기억한다

by 윤휘

문을 열고 들어오던 사람들이 멈칫했다. 사무실 한 구석에 괴이한 형체가 있기 때문이다. 흡사 미라였다. 털이 가득한 담요를 머리부터 뒤집어쓰고 퀭한 두 눈만 빼꼼히 내놓고 있었다. 입과 코는 마스크로 가리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과 미지근한 공기가 한 데 섞여 다가오는 여름을 미리 경고하던 때였다. 그에 대항하듯 몸에 남은 한 톨의 온기도 빠져나갈 수 없게 담요 동여매고 있었다. 손가락만 겨우 내놓은 채 멍한 시선으로 모니터에 글자들을 채워 넣고 있었다.


점심을 포기하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간호사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묻고 대기석에 앉으라고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체온계를 가져와 귀에 꽂아 넣었다. "열도 있네요."라는 간호사의 말에 "열이 있어요?"라고 반문했다. 내 몸은 독한 몸살이 나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39도에 가까운 고열이 나는 것을, 간호사의 입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그제야 둔하디 둔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저 깊이 숨어있던 뜨거움이 꿈틀거렸다. 곧 오장육부와 머리 그리고 손 끝, 발 끝까지 마구 휘저었다. 처방된 건 주사 한 대와 삼일 치 약. 그리고 사무실. 활개 치던 뜨거움이 약으로 잠시 수그러들자 나는 또다시 미라가 되었다. 모니터에서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글자들을 하얀 배경 속으로 욱여넣었다.


간호사의 말은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흩어졌다. 몸이 힘든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히려 받아들이지 않기로 선택했다. 대화조차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마주친 듯이 '나'가 속삭일 때마다 한 걸음, 두 걸음 멀찍이 떨어졌다. 감기몸살 따위는 금방 또 지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목소리는 다정했다. 한 달에 두 번씩 그 꼴을 하면서도 이번만 버티면 되겠지,라고 되뇌었다. 매번 그런 식으로 '나'를 안심시켰다.




계절을 비웃는 털실내화를 걸친 발이 움직일 때마다 책상 밑에서 슥슥, 스치는 소리가 났다. 한 포에 이천 원짜리 쌍화탕 한 박스였다. 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콧물을 훌쩍이거나 목이 따가워져 올 때면 쌍화탕을 컵에 따라 전자레인지 안에 넣었다. 전자레인지 속 불빛을 보며 오늘도 아픈 나를 잠재워달라고 마음속으로 얘기했다. 막 꺼낸 뜨뜻한 검은 액체는 개운한 향을 풍기며 혀를 달달하게 감쌌다. 잠들어가는 회사원의 작은 불씨를 기어코 되살려냈다. 병원에서는 수액으로, 사무실에서는 쌍화탕으로 연명해 갔다. 내 몸을 위한 것이라고 어쭙잖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책임감 있는 직원이라는 그 위대한 이름표를 떨쳐내지 않기 위해.


자주 아픈 나를 마주할 때마다 사람들은 괜찮냐며 따뜻하지만 형식적인 말을 건넸다. 매번 같은 질문에 나도 기계적으로 답했다. "괜찮아요. 이러다 말겠죠." 뻔한 질문과 뻔한 답변. 그 짧은 답변 속에는 정말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과 아픈데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직원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한 데 섞여있었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말들이 내 몸의 소리와 나를 점점 멀어지게 했다. 사람들의 기계적인 안부 속에서 나의 존재를 찾으며 나의 몸은 텅 빈 껍데기로 남게 되었다.




그 몹쓸 책임감. 그 죽일 놈의 미안함. 이것들은 나를 사무실에 붙들어 놓았다. 다른 사람들이 아픈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위안은 곧 합리화로 변했다. 내 업무에는 부담당자가 없기 때문에 오롯이 내가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내게 주입시켰다. 아프지만 아플 수 없었으며, 쉬어야 하지만 쉴 수 없었다. 다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겠거니, 하며 타인의 시선을 내 생각으로 채웠다. 그러나 상상의 시선들은 따갑고 쓰라렸다. 자주 아픈 나를 보며 사람들은 "또 아파?"라는 말과 함께 실소를 던졌다. 그 실소에 난 입꼬리라도 올려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챘다. 난 '당연히 아픈 사람'이었다.


의지가 약해서 감기 몸살을 극복해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약한 의지쯤은 한 포의 약으로 극복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정도는 누구나 견디는 거라고, 회사원으로서의 불씨를 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타일렀다. 다정한 말 뒤에는 약간의 섬뜩한(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말이 따라다녔다. 불씨를 꺼뜨리는 순간 난 감당하기 힘든 벌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절대 멈추면 안 된다고. 그렇게 나는 다디단 말로 나를 고문하고 있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