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이지 못한 이름

2부. 부를 수 없는 감정들

by 윤휘
이 감정의 이름은 역겨움이야.
옆에 있는 무언가가 정말로 싫은 마음이지.

…(중략)…

더럽고 냄새나는 건 우리 몸에 해로울 수도 있어.
역겨운 감정이 찾아오는 건 그런 것이
네 몸에 닿거나 들어가지 않게 하려는 거란다.

- <감정에 이름을 붙여 봐> p.63 -



역겹다.


왜 하필 이 단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걸까. 이 페이지를 읽기 전까지 책장 오른쪽 하단을 쓸어 넘기던 손가락은 왜 지금은 가만히 있는 걸까. 예고도 없이 이렇게 젖어드는 것은, 상하게도 익숙해서일까. 기억을 헤집어 보았다. 그러나 기억이 존재하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아이와 함께 종종 중고서점에 간다. 시간이 지나도 가치를 잃지 않는 활자들 속에 둘러싸여 있으면 쿵쿵대던 심장도 잠시 낮잠을 잔다. 서점 안으로 들어서면 '오늘은 또 어떤 보물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으로 매장의 노래와 사람들의 대화 소리는 펼쳐지지 않은 수많은 책들 사이로 사라져 버린다.


아동도서 칸. 아이가 이 책 저 책 꺼내며 읽어달라고 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같이 책을 고르기 위해 쪼그려 앉았다. 아이는 맘에 드는 책등을 골라 책 두께보다 얇은 손가락으로 거친 듯 부드럽게 꺼냈다. 그리고 그림책을 내 양손 사이로 끼워 넣으며 책을 마주하고 내 무릎에 털썩 앉았다. 휘청. 가끔 엉덩방아를 찧기도 한다. 15kg의 무게는 고스란히 전달되어 책을 세 권 읽어갈 때쯤이면 저릿한 통증이 척추와 팔을 타고 머리까지 전해졌다.


아이가 다 읽은 책을 제자리에 꽂아놓는 사이, 맨 아랫칸에 있는 개나리 같은 샛노란 책기둥에 눈길을 두었다. 책 제목 중에 있는 '이름' 배경에는 견출지가 바탕으로 그려져 있었다. 내 오른손은 이미 자연스레 책등 위를 한 번 쓸어내리고는 가장 윗부분을 검지손가락으로 낚아채어 꺼냈다. 노란 책을 아이에게 들이밀며 물었다. "이 책 읽어줄까?" 아이는 답했다. "아니." 하지만 나는 펼쳤다. 어쩌면 아이가 읽고 싶어 하지 않을 걸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 책을 사러 그곳에 서 있는 듯했다. 마침 내가 쭈그려 앉았고, 마침 그 책이 거기에 있었으며, 마침 내가 그 책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느끼지 못했다"라고 말했던 것들이 사실은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못해 그저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재미'라는 느낌이 내게 존재했던 것인지,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앞으로는 존재할 것인지 의문이 쳐들었다. 이런 의문은 왜 드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없을 것만 같다. 과거의 나는 "재밌을 것 같아!" 혹은 "재밌어"라는 말을 뱉은 적이 있었다. 수증기가 잔뜩 서린 화장실의 거울처럼 희뿌옇지만, 그게 내가 만들어낸 기억일지도 모르지만, 그랬던 적이 있는 것 같다.


재 미: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
즐겁다: 마음에 거슬림 없이 흐뭇하고 기쁘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어떤 느낌이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일까. 간접적으로라도 느껴보려고 표준국어대사전 사이트에 접속했다. 네모나고 하얀 창에 글자를 적었다. '재미'. 엔터 키를 누르자 내가 적은 단어에 대한 정의가 나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뜻풀이에 알지 못하는 단어가 있었다. '즐거움'. 즐거움의 뜻은 무엇일까. 이번엔 검색 대상이 바뀌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느낄 수 없는 것이 떡하니 있었다. '흐뭇하다'. 사전은 모두가 아는 단어를 가장 쉽게 설명해 놓은 책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왜 그 당연한 단어들 앞에서 갈피를 못 잡는 것일까.


줄곧 재미란 즐거움을 뜻하며, 즐거움에는 항상 '웃음'이 필연적으로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데 아니었다. 재미, 즐겁다 두 단어의 뜻 어느 곳에서도 '웃음'이라는 단어는 찾을 수 없었다. '마음', '기분', '느낌'으로만 설명되었을 뿐이었다.


어렸을 적, 좋아하는 가수의 CD를 틀어놓고 종이 위에 무언가 그리기를 즐겼다. 특히 기억에 남는 만화책의 한 장면을 따라 그리길 좋아했다. 하얀 종이 위로 새겨지는 얇고 굵은 선들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CD 트랙은 1번으로 다시 넘어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당시에는 그 시간을 즐긴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즐긴 시간 속에서의 어린 나의 얼굴에는 미소나 웃음은 없었다. 그저 손과 연필이 지나간 자리에 새겨지는 점과 선,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어떠한 형태들에 흡족했을 뿐이다. 하얀 치아를 드러내놓는 벌어진 입 대신에 굳게 다물어 입술이 앞으로 삐쭉 튀어나오곤 했을 뿐이다.


그간 생각해 왔던 '재미=웃음=즐거움' 공식이 내 오래된 경험에 의해 깨졌다. 이미 경험했으면서도 왜 경험하지 못한 척했던 걸까. 사전 풀이를 정리해 보면 재미는 '아기자기하게 마음에 거슬림 없이 흡족한 기분이나 느낌'이다. 웃으면서도 느낄 수 있지만, '웃지 않고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저 마음에 요동 없이 시간을 온전히 보내고 있다면 그 시간은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서점에서 집어온 책은 거실에 있는 아이 책꽂이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이의 손보다는 내 손이 더 많이 간다. 재미의 의미를 혼자 마음대로 정의해 버린 채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해온 것은 아닌가 되돌아본다. 어쩌면 내 병명을 방패 삼아 나 자신을 재미조차 느낄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는 사이에 감정들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회사에서 느꼈던 그 미세한 감정을, 찰나였을 뿐이라며 그저 지나가도 될 뿐인 순간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의 마음과 머리가 받아주지 못하는 그 사이를, 몸은 피로와 무기력으로 표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해로운 것에 닿지 않으려는 것에서 비롯된 '역겨움'. 나는 그때 무엇을 그토록 피하려고 했던 걸까. 회사였을까, 사람들이었을까, 아니면 나 자신이었을까.


어쩌면 이름을 붙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붙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