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도 어른되면 그 약 먹을 거예요."
순진하지만 날카로운 말이 내 관자놀이를 뚫고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앞은 멍해지고 손은 가만히 공중에 떠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정수기가 정수 한 컵을 채우는 동안, '아침 식사 직후'라고 적힌 비닐봉지를 뜯는다. 그리고 비닐봉지를 엄지와 검지로 살살 비벼 봉지 입구가 넓어지도록 한다. 그렇게 벌어진 입구를 손바닥을 향해 기울이면 동그랗고 길쭉한 알약들이 손바닥 주름 사이사이에 기대어 얹힌다. 옆에 있던 은박 포장지로 싸인 하얀색 알약도 꺼내어 쌓는다. 손바닥을 오목하게 유지한 채 입으로 가져가 약을 털어 넣는다. 정수 한 컵을 들이켠다. 고개를 뒤로 젖혀 목을 길게 일자로 늘어뜨린다. 그리고 다시 한번 물을 삼킨다.
아직 내 허리까지도 닿지 못해 고개를 치켜들어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아이. 눈동자는 한없이 동그랗고 눈꺼풀은 감기지 않았다. 마치 중요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딸, 약은 아플 때만 먹는 거야. 엄마는 지금 아파."
유독 약을 잘 먹는 아이다. 한약도, 물약도, 가루약도. 어떤 때는 아픈 척을 하면서 약을 달라고 한다. 귀엽게만 보였던 그 행동들이 덜컥 무서운 기억으로 변해버렸다. 달콤한 첨가제 맛으로 약을 먹는 게 아니었다면, 만약 '엄마를 따라 하고 싶다'라는 마음에서 그런 거라면….
쿵 내려앉는다. 내 머리, 어깨, 발이. 약이 타고 내려갔던 목에서 가루로 풀어헤쳐진 약의 쓴맛이 올라왔다. 물로도 지워지지 않는 아릿한 맛.
이 생각이 틀리길 바라본다. 아이에게 아픈 엄마이고 싶지 않다. 무의식 속에서라도. 그저 평범하고 싶다. 다른 엄마들처럼 언제나 기댈 수 있는 엄마였으면 좋겠다.
아가야, 훗날 너의 첫 기억이 이 장면만은 아니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