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그곳에 있다

1부. 회사를 떠났지만, 내 몸은 아직 기억한다

by 윤휘

"잘 지내고 있어? 회사 생각하지 말고 푹 쉬고, 예전의 당찬 모습으로 다시 보자."



휴대폰 잠금화면 알림에 뜬 '팀장님'.


곧이어 내 머릿속에 '팀장님'이라는 단어가 나무 기둥이 되어 '회사'라는 가지를 치고, 곧 '사무실'이라는 잔가지까지 쳐 버린다. 카톡 알림 하나가 단숨에 나를 회사 사무실 모니터 앞에 끌어다 놓았다. 모니터 두 대가 거대한 두 눈이 되어 날 내려다본다. 팀원들의 무표정한 얼굴들이 파티션 위로 솟아나 나를 응시한다.


심장이 쿵쾅댄다. 심장이 뛰는 속도를 다른 기관들은 따라잡지 못한다. 귀는 먹먹해졌고, 눈앞은 흐려졌다. 심장은 멈추는 방법을 잊은 것 같았다. 그대로 있다가는 쿵쾅대는 박동이 온몸을 삼켜버릴 것 같았다. 조치를 하지 않으면 패닉에 빠질 것만 같았다. 지옥 같은 시간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늘어진 왼팔을 힘겹게 들어 가슴 위로 얹었다. 왼손 위로 울림이 그대로 느껴졌다. 혹여나 현관문 밖까지 내 심장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요란스러운 소란이 끝나길 바라며 꾹, 가슴을 내리눌렀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후─. 후─."



요동치는 폭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요동치는 박자는 요란스럽다. 손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고개를 떨군다. 흐려졌던 눈앞에 열 개의 발가락이 놓여있다. 발가락에 힘을 주었다. 군데군데 노래진 발가락들이 "나 여기 있어"라고 말해주었다. 먹먹함이 사라질 때쯤 내 귀는 흐릿한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제야 알았다. 기억은 단순히 머리로 하는 게 아니었다. 기억은 내 몸 안의 세포와 근육들에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는 것이다.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나에게 사치일까. 회복이라는 단어는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일까. 나는 나를 어지럽히는 사건을 겪었고, 그 경험은 내 몸 깊숙이 새겨졌다. 그리고 머리가 움직이기 전에 세포와 근육들이 언제나 한 발 앞서 움직였다. 나를 강제로 사무실에 세워 놓았다.




카톡 앱에는 빨간 배경에 하얀색 숫자 '2'가 떠 있었다.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히려 두 눈에 숫자 2를 가득 흩뿌려 놓을 뿐이었다. 장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답장을 하지 않으면 팀장님이 내가 무례하다고 생각하시겠지. 나는 온종일, 내일도, 모레도, 답장을 보지 않은 일을 계속 올리며 후회하겠지. 순간에 갇혀버리겠지. 어쩔 수 없다. 답장을 해야만 했다.


무얼 어떻게 답장을 써야 하는지 정답을 찾을 없었다. 멍하니 있는 동안 팀장님으로부터 새 메시지가 도착했다. 내 개인 물품이 아직 사무실에 있다는 이야기였다. 업무 얘기도, 복귀 얘기도 아니었다. 무겁게 굳어있던 목이 스르르 풀렸다. 심장이 아까보다는 작은 소리로 쿵쿵대고 있었다.


털썩. 힘이 풀린 다리 때문에 소파에 주저앉았다. 텅 빈 허공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벽지에서 정답을 찾으려는 듯 초점을 가두었다. 동공은 열어 둔 채.


휴대폰 위에 손가락을 얹는 것조차 버거웠다. 머뭇거리는 손가락 나를 더 지치게 했다. 불편한 순간, 그 기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더 이상 쓸 에너지가 남지 않아서 최대한 간단히 썼다.



"네. 감사합니다."



차가운 가죽 소파에 닿은 내 엉덩이가 척추, 어깨, 목, 머리를 하나씩 끌어내렸다. 난 소파에 앉은 채 누웠다. 그렇게 어딘가 이상한 자세로 한참을 있었다. 운 것도 아니고 앉은 것도 아닌 채로. 이상했다. 무엇하나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글자들이 나를 주저앉혔다. 평범한 글자들은 더 이상 본래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내 몸이 기억하는 경험이 평범한 글자들을 유별난 의미의 조합으로 만들어낸다. 더 이상 평범할 수 없다.




카톡 알림 하나가 내 반나절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단순한 알림 하나에 내가 이렇게까지 격정적으로 반응하는 게 의아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과잉 반응하는지 물어본 순간 깨달았다. 회사와 관련된 모든 것을 내 몸은 절실히 거부하고 있었다. 한때 나의 일부였던 회사를 이젠 내게서 떼어내고 싶다. 회사에서의 기억을 지우고 싶다. 그 기억에 대한 내 몸의 반응들을 지워버리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싶다.


내 업무가 다른 팀원들에게 나눠질 것을 알면서도, 미안함을 뒤로한 채 나를 위해 휴직계를 제출했다. 나에겐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팀원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쉼의 시간은 벌써 4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병원과 상담을 빠지지 않고 받았다. 하나 나에겐,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나 보다. 내 몸은 여전히 회사를 밀어내고 있다.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그 치료는 명분이 되어 버린다. 치료를 받으니 하루빨리 남들과 같은, 아프지 않은,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스스로를 재촉한다. 그 재촉은 나를 더 아프게 한다. 처방받은 약과 상관없이, 상담 시간에 쏟아내는 눈물과 상관없이. 제자리를 맴돌 뿐인 그저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혼란스럽다.


나는 그곳에 없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곳의 공기를 고 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