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꿈을 싣고
TV를 샀다. 화면 사이즈는 손바닥 크기를 조금 넘는 아주 귀여운 아이다. 미국에서 약 40여 년 전에 출시된 거라고 하는데, 나보다 오래 산 물건이 갑자기 생겼다는 사실에 기분이 좀 묘하다. 이 TV로 당연히 방송을 볼 수는 없고, 일종의 모니터로서만 기능하는 제품이다. 흑백 또는 약간은 바랜 컬러로 화면이 송출되며, 뛰어난 품질의 사운드는 덤으로 갖췄다.
중학교 때였나 처음으로 PD를 꿈꾸던 때에는 TV에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나오는 상상을 했다. 15년 정도 지난 지금 나는 아직 그 꿈을 이루지 못했는데, TV의 위상이 자꾸 떨어져서 상상하던 모습 그대로 꿈을 이루기는 글러먹은 것 같다. 두 가지 착오가 있는데, 1.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화할 줄 몰랐고 2. 성공하는 데에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줄 몰랐다.
점점 더 영상은 흔해지는데 이야기는 희소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최초의 영화가 상영되던 당시에는 화면 속 열차가 진짜로 달려드는 줄 알고 무서워서 도망가는 사람들도 있었다던데. 이제 사람들은 그 어떤 화면으로도 쉽게 놀라지 않는다. 영화는 현실을 뛰어 넘으려 하고, 현실은 영화를 뛰어 넘으려 하는 세상 속에서 대중들은 점점 더 원초적인 이야기꾼들을 원한다.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꾼들이 등장하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끊임 없이 새로운 천재가 탄생한다는 게 제일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그들이 점점 더 내 또래라는 사실에 쫄리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한편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리그를 쫓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저기에 도달하면 내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그곳 마저도 오늘 산 TV처럼 지나간 한 때의 무언가가 되어버릴 수 있으니 모든 게 불확실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지나가버린 무언가에 만족하기에 나는 지나치게 욕심이 많고, 앞으로 마주할 변화에 한 발 앞서기에는 턱없이 무지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보려고 한다. 뭔가를 쫓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것을 잘해볼 것. 주어진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만 집중하다 보면 -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아주 오래 서있을 수 있다면 막연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분명해지고 빛이 들 거라고 믿기로 했다. 물론 근거는 없지만, 적어도 뭘 해야할지 모르는 상태는 아니기에 그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하다. 그렇게 애정이 차오르는 일상을 살다 보면 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다 보면 이 40년째 멀쩡한 TV처럼 나도 뭔가는 되어 어딘가에 쓰임이 있지 않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