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설을 믿느냐 성악설을 믿느냐.
성선설이기도 하고 성악설이기도 하다.
또는
성선설이 아니기도 하고 성악설이 아니기도 하다.
이 말은 어쨌거나 상관없다는 뜻이다. 질문이 이상하다는 거다.
나는 사람의 본성을 선하다 악하다 두 가지로 구분하는 발상 자체가 싫다.
마치 그것 같다.
집에 갈 기회만 노리고 있는 늦은 회식 자리에서 유일하게 집에 가기 싫어하는 김 부장이 고개를 비스듬히 치켜들며 말한다.
"사람은 두 가지 부류가 있어. 소주를 좋아하는 사람,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 소주랑 맥주. 뭐 더 시킬래?"
틀렸다. 나는 둘 다 싫은데? 나는 집에 가고 싶은데?
사람은 복합적인 동물이다.
그리고 고정적이지도 않다. 수시로 변한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게다가 그 변화도 어떨 때는 이렇게 변한다. 고 규정할 수 없다.
무수한 경우의 수에 따라 수만 가지 결과가 나온다.
만약 다른 말로 규정짓는다면 악하다는 말 대신 이기적이라는 말을 쓰겠다.
이기적인 감정은 관계가 시작될 때 생긴다.
아담이 이브를 만나고 죄를 지은 것처럼.
내가 다른 사람보다 먼저 이득을 취하고 싶어서 새치기한다.
내가 하기 싫어서 다른 부서에 일을 떠맡긴다.
내 아들이 군대 가서 고생하는 게 싫어서 뇌물을 주고 편한 곳으로 배치한다.
내 가족이 굶는 게 싫어서 빵을 훔친다.
의도가 선했다해서 결과까지 선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사람은 자기가 죽을라치면 눈에 뵈는 게 없는 거다.
나도 내가 죽을 지경이라면 나부터 살겠다.
그게 본능이다.
악惡 대신 이기利己라 부르겠다.
그리고 그것은 생존본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