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다 우울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돈 백만 원 생각에.
아프다 머리가.
백만 원으로 할 수 있는 방콕 10일 여행을 생각하면.
머리에 쥐가 난다 쥐가 나.
은행에서 돈 뽑을 때 드는 거대 수수료 계산에.
화가 난다 화가 나.
어떤 새끼야!!! 내 돈 가져간 새끼!
도난 사건을 알아차리기 전에 고민 고민하다 구매한 스카프.
도난 사건을 알아차리기 전에 예약한 꼭 하고 싶었던 아름다운 호수에서의 카약 투어.
이럴 줄 알았으면 고민하다가 내려둔 옆의 스커트도 사고
카약 투어 말고 승마투어도 예약하고
이런 잠 안 자는 파티 호스텔 말고 하루에 20만 원짜리 호텔 예약할 걸.
2016년 365일 중 첫 번째 날, 1일 일정은 카약 투어였다.
어디서 돈이 없어졌나 추리하느라 잠 못 잔 내 몸뚱이가 그보다 더 무거운 두통을 업은 머리를 달고는 흐느적흐느적 모임 장소로 이동했다.
나를 태운 벤은 나의 백만 원에 무관심한 바릴로체 시내를 빠져나가 카약이 떠있는 호수로 달리기 시작했다.
바릴로체는 남미의 스위스로 불린다.
호수에 점점 가까워져 가는 바릴로체는 파란 하늘과 드넓은 호수를 둘러싼 푸르른 산이 있던 스위스 알프스산 마을과 점점 가까워진다.
"자 도착했습니다. Everybody, 내려서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자갈밭에 발을 디뎠다.
자갈자갈 자갈자갈.. 호숫가로 가는 발걸음이 조금씩 경쾌해질 때쯤 같은 차에서 내린 커플이 말을 걸어온다.
Happy new year!
사실 나는 Unhappy new year이라고 말했다.
사실 어제 말이야,,, 내가 말이야,,, 여행을 65일 동안 하고 있는데 말이야,, 말이야 말이야,,
어느 작가가 그랬다더라.
오늘 하루 그지 같았는데 새로운 에피소드를 하나 건졌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나아지더라고.
나는 말만 꺼내면 모든 여행자들이 관심을 갖고 나를 동정해줄 에피소드를 하나 건졌다.
이야기가 진행될 때 이 커플의 스펙터클한 표정 변화를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쏟아내고 조금 기분이 나아진 내 눈앞에 나타난 건 새 파란색으로 가득한 호수와 하늘이었다.
눈을 감았다.
빙하를 머금은 바람과 그 바람을 타고 오는 호수 냄새와 그 바람을 타고 흐르는 물과 나무소리를 듣기 위해서.
인스트럭터인 소피아가 내가 앉은 노란 카약을 호수로 밀어 넣었다.
나는 파란 세상으로 쑤욱 들어갔다.
파랗지 않은 건 내 얼굴에 느껴지는 따스한 햇살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치유됐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는 뭘까.
다른 사람에게 나는 뭘까.
이 세상에서 나에게 관심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의 존재조차 모를 텐데.
내가 사는 의미는 뭘까.
거대한 자연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지구는 나의 존재를 기억이라도 할까.
억만년을 살아온 지구에게 나의 하루 아니 나의 10년, 나의 100년은 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일 텐데.
지구에게 나는 먼지만도 못한 존재일 텐데.
내 인생이 이러한데 내가 잃어버린 고작 돈백만원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갑자기 세상의 전부였던 백만 원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 중 하나가 돼버렸다.
카약 인스트럭터인 소피아는 내 원래 이름을 두고 멋대로 나를 '안나'라고 불렀다.
마치 과거는 잊고 새로 태어나라는 듯이.
아무것도 아니다.
그깟 백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