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부터 꼬여버렸다.
이때부터 조짐이 보였다.
만원 버스는 내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기사 아저씨가 정류장에서 멈추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나 좀 내릴게! 소심하게 소리 질러도 기사아저씨는 들은 척 만 척이다.
옆에 있던 아저씨가 어디서 내려야 했냐 물어봐서 벌써 1km 지나쳤다고 하니
되려 깜짝 놀라 버스기사에게 세우라고 소리친다.
나는 버려.. 아니 내려졌다.
65일 치 내 전재산인 무겁디 무거운 배낭을 멘 채.
터덜 터덜 산 옆 도로를 걷는다.
흙먼지를 날리며 차들은 지나간다.
차들은 세워주질 않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소리를 질렀다.
절규는 울음으로 바뀌었다.
으어어어어... 으엉 엉엉 (짜증 나...)
새해를 맞이하기 좋은 곳은 어디일까.
12월 31일을 어디서 보내야 할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도시가 바로 바릴로체다.
아름다운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어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곳 바릴로체.
새해를 맞이하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근데 문제는.. 아르헨티나 고딩들이 연말 파티하러 모이는 곳이란다.
그래서 밤이 새도록 둠칫 둠칫. 술판 춤판이 벌어진다.
숙소는 잠을 자지 않는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숙소에 도착했다.
6인 혼성 도미토리의 창문 전망은 마당과 이어진 끝없는 호수와 그 끝에 얼굴 내민 설산으로 죽여줬지만
오전이 되어서야 끝난 춤판 술판을 정리하는 소리에 잠이 깨게 될 운명일지 그땐 몰랐다.
숙소에 짐을 풀고 동네를 구경하러 나왔다.
배가 고파 가고 싶었던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응? 하지만 브레이크 타임.
그럼 여기를 가볼까? 음.. 폐업.
엄마가 말하길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아주 잘 노는 편한 아이 었다고 한다.
단 조건이 하나 있었으니.
"쟤는 먹을 거만 주면 혼자 잘 놀아~"
먹을 거.. 먹을 거!!
아무거나 먹고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숙소에 돌아왔다.
아.. 기분 안 좋아..
짐 정리나하고 일찍 자야겠다.
짐 정리를 시작했다.
음... 그런데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다.
음... 내가 먹고 싶은걸 못 먹어서 지금 머리가 안 돌아가나?
음... 왜... 돈이 이것밖에 없지?
여행 전문가다 자만한 나는 ATM기에서 돈을 뽑아 쓰지 않고 65일 치 생활비를 모두 현금으로 가져왔다.
그중 나머지 생활비 반이 보이질 않는다.
두둠칫.. 두둠칫.. 둠칫 둠칫 둠칫칫둠칫칫둠칫칫둠칫칫
이건 뭐.. 심장이 고장 났네.
심장의 둠칫은 온몸으로 퍼져나가고 머리에서는 쥐가 나기 시작...
한 10번은 샅샅이 뒤진 것 같다.
내 돈. 자그마치 1050달러가 증발했다.
그 돈은 적어도 동남아 여행은 한번 더 갈 수 있는 돈인데에... 에!!!!
아무리 찾아도 없다.
비행기로 가야 할 동남아를 전력 질주해서 다녀온 사람처럼 온몸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가방을 몇 번이나 뒤졌는지 모른다.
뒤진다고 없던 돈이 나올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나를 믿을 수 없었다.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싸워서 헤어진. 같은 도시 다른 숙소에 머물고 있는 '그 녀석'에게 연락했다.
"야 너 돈 얼마 남았어? 나는 반밖에 안 남았는데 우리 돈 이렇게 많이 쓴 거 아니지? 원래 2000달러는 남아있어야 하지 않아??"
"나 2000달러 넘게 있는데. 왜?"
"1050달러가 안 보여..."
"일단 일루 와"
"하.. 주소 불러봐. 지금 갈게."
2005년 대학교 3학년 휴학 중인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그 녀석'과 둘이서 45일 동안 터키, 이집트 배낭여행을 했다.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한 첫날 우리는 며칠 동안의 생활비를 환전했다.
그날 저녁 관광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지갑을 소매치기당했다.
고작 8만 원이 전부인 지갑이었지만 그날 환전을 덜 했으면 덜 잃어버렸을 텐데 하는 후회감과 자책감으로 나는 경찰서에 가서 눈물 콧물 쏟으면서 울었다.
경찰서에 가기 전 텅 빈 보조가방을 보고 좌절하고 있던 나에게 13살짜리 '그 녀석'은 이렇게 말했었다.
"에휴.. 잃어버린걸 이제 와서 어떻게 해. 그냥 이 일은 잊어버려"
그렇게 죽일 듯이 싸울 땐 언제고.
10년 전 그날처럼 '그 녀석'은 그냥 내 옆에서 가만히 같이 있어주었다.
만약 내가 아니라 '그 녀석'이 잃어버렸었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내가 속상한 마음에 위로는 못해줄 망정 분명히 뭐라 '한소리' 했을까?
'그 녀석'은 절대 한소리 비슷한 말이라도 하지 않았다. 그게 고마웠다.
그냥 잃어버린 것.
현금이라서 여행자보험으로 보상도 못 받을걸 알면서도 언제나처럼 마음의 안정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그냥 잊어버려야 하는 것을..
하..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잖아.
1050달러로 할 수 있는 것 오만가지를 생각하며 집착한 후에도 1050달러 도난사건은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트라우마로 남았다.
아직도 내 여행 다이어리에는 경찰서에서 받은 1050달러 도난사건 증명 페이퍼가 곱게 붙어있다.
하.. 2016년 액땜 지독하게 하네.
해피뉴이어~... N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