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꽉 끼인 채로 미니밴을 타고 4300미터까지 올라왔다.
미니밴 위에는 자전거들이 꽉꽉 실려있었다.
구름은 머리 위에 있는 게 아니라 발아래에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하늘까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구름이 온몸을 감싸고 있으니 수증기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뜨거운 수증기 아니고 차가운 수증기.
마추픽추 정글투어의 시작은 4300미터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다운힐이다.
매주 주말마다 도심 속에서 요리조리 묘기 라이딩을 하는 나는
자전거를 체킹 하며 나의 요리조리 실력을 자랑했다.
아 꿈의 마추픽추를 이렇게 멋진 액티비티로 시작할 수 있다니.
다운힐 할 때의 풍경은 죽여줬다.
그리고 중간에 비가 와서 온 몸은 다 젖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오는 트럭에 식겁했다(흙길이 아니라 2차선 도로를 달린다)
그리고 트럭을 피하려다 도로 중간중간 흩뿌려져 있는 낙석을 밟고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리고 흐르는 빗줄기가 모여 만들어진 작은 폭포(?)를 지나느라 그나마 안전했던 엉덩이와 신발 속은 물바다가 됐다.
그리고 점점 미친 듯이 더워지는 날씨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그리고 얼굴에 묻은 흙탕물만큼 못생김도 덕지덕지 묻은 후에야 다운힐은 끝났다.
다운힐 후 먹는 점심은 꿀맛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래프팅을 예약한 사람들은 래프팅을 하러 가고 그 외 사람들은 자유시간.
그때 CH와 SW오빠를 만났다.
둘은 우리가 신혼부부다 혹은 남매다 를 놓고 언쟁을 벌였다고 한다.
CH는 내 동생 '그녀석'과 동갑,
SW오빠는 한국업체에서 브라질로 파견돼 브라질에서 생활하고 있다.
일주일 휴가 내고 이웃나라에서 페루 여행 온 특이한 케이스. 그만큼 캐릭터도 특이하다.
첫 번째 숙소는 지옥 그 자체.
위층에서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나무 천장
덥지만 선풍기는 없고
축축한 이불과 베개에서 나는 꼬질한 냄새는 바닥에서 비닐 깔고 자게 하는 충동을 일으키고
모기는 윙윙거리고
가장 최악인 것은 프랑스 아저씨의 천둥 같은 코 고는 소리.
중간에 깨우고 별 난리를 쳤지만 그의 영혼은 이미 마추픽추에 가 있는 듯했다.
두 번째 날은 새벽부터 일어나 밤까지 걷는다.
아침에 찌뿌둥하게 일어나니
영어 하나 못하는 SW오빠가 원, 투, 쓰리, 포, 라익 디스, 라익 댓 하나로 아침 스트레칭을 주도하고 있었다.
숙소 앞 골목길에서 약 15명의 우리는 그렇게 하나가 됐다.
걷는다 걷는다 또 걷는다. 무지하게 높은 습도와 무지하게 더운 날씨.
그리고 까만 점 만한 샌드 플라이가 끈덕지게 달라붙는다. 쫓아내면 1초 후에 다시 내 팔 위에 앉아있다.
한 달이 지나도 간지럽다.
한국 와서까지 한 4달 간지러웠나 보다.
그래서 내 팔은 망했다. 검은 모기 자국 때문에 정말 말이 아니었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겨우 없어졌다.
그래도 그날의 종착지 핫 스프링!!!!! 온천을 기대하며 힘을 낸다.
점프를 시도한다.
실패한다.
다시 시도한다.
성공한다.
거대한 놈을 만났다.
껴안으면 내 팔 안에 꽉 차게 들어오는 거대한 놈이다.
발톱은 어마 무시하다.
아름다운 풍경도 만났다.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내 셀카부터 찍는다.
아름다운 풍경은 안 나오고 간지 돋는 스티커들만 나온다.
계곡도 만났다.
SW오빠 배는 어마 무시하다.
다들 식겁했다.
다시 아름다운 풍경이다.
절벽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SW오빠는 저 절벽에서 점프샷을 찍었다.
나는 차마 보지 못했다.
여기저기 점프샷이 난무한다.
인생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점프샷은 시도하지 말자.
꺄!!! 드디어!!!!! 온천에 도착했다.
온천이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다들 신나 있었다.
탈의실에서 가방 안의 비키니로 갈아 입고 따뜻한 온천탕에 들어가기 전에 찬물로 샤워한다.
발을 동동 구르며 땀을 씻어낸 후 풍덩.
하..... 이런 게 사는 맛이지.
온천탕 안에서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때 나온 이슈는 나와 SW오빠의 나이였다.
항상 여행을 할 때면 여행자들은 물어본다.
(나와 내 남동생 '그녀석'을 보며) '누가 older 니?'
그러면 '그녀석'은 무지하게 어이없어하며 당연히 내가 younger 지!!! 하는데,
음.. 그래 9살 차이면 기분 나빠할 만하다.
보통 내 나이를 22살로 보는데(캬캬캬캬) 나는 항상 (함박웃음을 지으며)
way way more를 외쳐야 했다.
내 나이도 충격이었는데, SW오빠의 나이는 마추픽추 크루들에게 더 충격이었다.
Daddy, give me money와 같은 말도 안 되는 핵노잼 상황극을 하는 동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온천욕을 마친 우리 크루는 덜컹거리는 미니밴에 (또다시) 낑겨타고
90년대 힙합 노래를 들으며 비포장 도로 위 자갈 비트에 온몸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