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욕을 마치고 타고 온 미니밴에서 풍덩 빠졌던 90년대 힙합 음악의 여운을 느끼며
우리는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은은한 노란색 불빛이 비추는 조그마한 음식점에서 우리는 저녁 식사를 했다.
다들 머리칼은 촉촉하게 젖어 있고 볼은 상기돼 있었다.
식사는 맛있었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너무나 따뜻한 시간이었다.
그 저녁식사를 사진으로 남겨두지 않은 게 후회스럽지만
그런 따뜻한 느낌은 마음에만 담아두는 게 왠지 더 어울린다.
그래야 더 그리워할 수 있으니까.
식사를 마치는 동안 어느새 밖에는 시원한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3박 4일 동안 본인이 가져온 모든 짐들을 들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의 짐싸기 모토는 무조건 적게였다.
그 덕에 내가 3박 4일 동안 필요한 모든 짐은 허리에 매는 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트래킹화는 신고, 스포츠 샌들은 카라비너로 가방에 걸고.
'그녀석' 의 짐은 쌕 하나 그리고 접으면 주먹 안에 쥘 수 있는 장바구니 재질 등에 매는 비닐가방;;;
사실 3박 4일 동안의 내 짐이 쌕 하나에 다 들어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녀석' 이 매는 비닐가방 안의 반은 내 옷이었다.
아무 고민 없이 '이건 네가 매라' 고 명령할 수 있는 건
내 카리스마 때문 아니고, 반박할 수 없는 9년이나 더 늙은 몸 때문에.
어쨌든 내 짐은 여분의 속옷 한벌, 트래킹 후 갈아입을 편한 옷 한 벌, 기능성 긴 팔옷, 여분의 양말 하나,
한주먹 초경량 바람막이와 어떤 폭풍우에도 견딜 수 있는 아웃도어 재킷, 스포츠 샌들,
비키니, 선글라스, 디지털카메라, 필름 카메라, 필름 몇 개, 핸드폰 (+충전기),
딱! 4일 치만 가져온 화장품과 세면도구 샘플, 스포츠 타월 그리고 입고 있는 옷과 트래킹화.
그 반면 CH는 몇 킬로였지...
10킬로 넘는 가방을 짊어지고 하루 종일 그 험한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래. 넌 제대한 지 얼마 안 되었고 젊으니까 괜찮아.
최대한 줄인 짐으로 우리는 매일 세탁을 맡겼다.
그날도 우리는 소나기를 뚫고 세탁을 맡기러 갔다.
SW오빠가 아이스크림을 쐈다.
오랜만에 한국말로 실컷 수다를 떨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