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째 아침은 성욱오빠의 스트레칭 대신 짚라인으로 시작됐다.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며 짚라인에 몸을 맡기고 스피드를 즐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쌩하고 날아갈 때는 지퍼 소리가 난다.
헬멧에 짚라인이 닿을 때는 헬멧 갈리는 소리가 나니 헬멧은 꼭 착용하도록 한다.
그리고 다리는 꼭 오므리도록.
짧은 반바지 입은 잭에게 우리는 계속 '다리 닫아!' 라고 소리쳐야 했다.
짚라인을 신나게 경험한 후.
갑자기 반쯤 끊어진 밧줄(?) 다리를 건넌다는 것이다.
어. 나는 짚라인만 신청했는데.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마추픽추를 가려면 이 다리를 건너야...
밧줄에 묶여 있는 나무판자를 밟으면 다리 전체가 오른쪽으로 휙- 기울어진다.
기울어지는 다리 균형을 맞추기 위해 왼쪽을 밟으면 다리는 왼쪽으로 휙- 기울어진다.
그놈의 밧줄 다리는... 나를 밑으로 떨어뜨리고 싶어 안달 난 것 같았다.
이런 것일수록 빨리 끝내야 하는 것을.
내 앞의 멜리나는 엉덩이를 뒤로 빼고 주저앉다 못해 기어갈 태세..
나는 '아래 보지 말고! 엉덩이 넣고! 허리 펴고! 넌 할 수 있다!' 라고 소리쳐야 했다.
오늘의 종착지는 '아구아 칼리엔떼'다.
스페인어로 '아구아'는 '물' '칼리엔떼'는 '따뜻한' 이라는 뜻이다.
아구아 칼리엔떼에는 아구아 칼리엔떼가 있다.
따뜻한 물. 온천이 있다는 뜻이다.
짚라인 외 끊어진 밧줄 다리로 죽을 고비를 넘긴 후 기찻길을 따라 그곳까지 걸어갔다.
투어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마추픽추까지 가는 개별 여행자들은
쿠스코에서 아구아 칼리엔테까지 기차를 타고 가거나
좀 더 저렴하게 가려면 쿠스코에서 오얀따이땀보까지 차를 타고, 오얀따이땀보에서 아구아 칼리엔테까지 기차로 이동한다.
우리는 쿠스코로 돌아오는 길에 기차를 탈 예정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기찻길을 따라 걸으면 마추픽추를 가기 위한 거점,
아구아 깔리엔떼에 도착한다.
드디어.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 쪼르륵 앉아 숙소 체크인을 기다리며 마을을 둘러봤다.
마을은 조그맣고 아기자기하다.
트래킹을 마치고 입구로 들어오는 여행자들의 얼굴이 반짝였다.
입구에 앉아있다 보니 트래킹 도중 스쳐 지나갔던 친구들도 만나게 된다.
몇 번 인사하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눴던 것뿐인데
다시 만나기라도 하면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를 만난 것처럼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체크인을 하고 샤워까지 했지만 아직 저녁식사 시간 전까지 여유가 있었다.
며칠 동안의 강행군을 위한 보상으로 우리는 프링글스를 선택했다.
마을에 도착했을 때처럼 마을 입구에 앉아 프링글스를 까먹으며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감상한다.
그러다가 아는 이라도 나타나면 그 귀한 프링글스를 함께 나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하루 중 나는 이 시간이 가장 좋다.
어둠이 깔리기 전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하는 시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러 가는 도중이었다.
전날처럼 은은한 노란색 불빛이 비치는 조그마한 음식점이었고,
전날처럼 식사는 맛있었고 도란 도란 이야기 나누는 너무나 따뜻한 시간이었다.
살다 보면 누군가의 말에 감동받는 순간이 있다.
사실 살면서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직접 나에게 한 말이 감동적이었던 경험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 귀한 감동이 그날 레스토랑에서 나를 찾아왔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을까.
어떤 얘기를 하다가 내가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아. 난 28살 때가 제일 예뻤는데"
갑자기 바로 옆도 아니고 저-쪽에 앉은 CH가 말했다.
"지금도 예쁘세요 누나"
내 입은 귀에 걸렸던 것 같다.
CH이의 그 말은 가끔가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나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명언 노트에 기록되었다.
그래. 나는 지금도 예쁘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마추픽추를 맞이할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추픽추를 맞이할 준비.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