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이런 곳이 수도인 것인가.
해발 3,800미터, 게다가 우리가 묵고있는 방은 건물 4층.
3,400미터 쿠스코에서는 도착 후 하루 후에 적응할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하룻밤을 자고 일어 났는데도 깨질듯한 머리통증이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대형 체인이면서 파티호스텔로 유명한 로키호텔에 묵고 있다.
체크인 할 때 맨 꼭데기 층 바에서 울려퍼지는 쿵쾅 거리는 음악 소리를 들었다.
다행히 방에 들어가니 음악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호스텔 문은 철문이고 호스텔 건물 입구 안과 밖에는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다.
1층엔 여행사를 겸하고 있고, 모든게 시스템화 되어있어 편리하다.
안전하다는 느낌이다.
아침식사가 제공되지 않지만 커피와 차는 무료다.
깨질듯한 머리에 코카차가 도움될까싶어
자고 있는 '그녀석'을 놔두고 바 겸 레스토랑이 있는 7층으로 올라갔다.
햇살이 들어오는 넓은 7층 바엔 여행자들이 있었고
나는 뜨거운 물에 코카 잎을 넣어 빈자리에 앉았다.
이 코카차는 4층에서 7층까지 올라온 높이만큼 고산증세를 완화시켜줄 수 있을까.
아무래도 7층에서 코카차를 마시는 것보다
1층에서 코카차를 마시지 않는게 머리가 덜 아플 것 같았다.
넓고 밝은 레스토랑을 뒤로하고 1층으로 내려왔더니
중정 같은 곳에 코카차와 커피가 비치된 휴식공간이 있다.
그 후 7층을 올라간적은 없다.
항상 7층에서 들려오는 우퍼소리가 밤마다 내 심장을 불살랐지만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힘든 7층에서 뭘 할 수 있을지.
뭘 먹을수나 있을지.
이야기나 할 수 있을지.
춤이나 출 수 있을지.
내 몸 하나 가눌 힘조차 없을 것 같아 포기.
몸이 아프면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을.
밖을 나섰다.
지금까지 봐온 페루와는 또 다르다.
하늘은 파랗지만 건물들은 낡고 어둡다.
사람들 옷도 어둡다.
차들도 모두 어두운 색이다.
공간 없이 빽빽하게 온갖 것들이 붙어있다보니 더 어두워 보인다.
차들과 사람들은 서로 붙어 있는채로 빠르게 움직인다.
정신없고 복잡하다.
고산증세로 깨질듯한 머리가 더 깨질 것 같다.
숙소 근처를 둘러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오늘은 한식을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한식 식당을 검색해 구글맵에 표시해 두고
어둑해질 무렵 '그녀석'과 택시를 타고 출발했다.
라파즈 교통 체증은 지금까지 겪어본 체증 중 최악이었다.
온갖 언덕들 위에 세워진 도시 위
울퉁불퉁한 도로 위
차선은 무작위
퇴근시간 러쉬...(아워)
1시간 걸려 막히는 도로를 겨우 빠져나갔다 싶었는데
택시기사는 무작정 우리보고 내리란다.
갑자기 무슨소리냐 물었지만 택시기사는 영어를 전혀 못한다.
우리가 못 알아들으니 점점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구글맵 위치를 보니 우리가 가려는 레스토랑은 택시를 타고 한참 가야 하는 거린데, 내리란다.
미쳤니. 대중교통 안에서도 칼 들이밀고 범죄 저지르는 라파즈 라는데 이 어둑한 거리에 내리라니.
내가 이러려고 택시탔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화가나..)
당황한 내가 물어보려 하면 내 말을 가로막고 소리를 지른다. 내리라고.
나도 소리를 질렀다.
택시기사는 식당을 찾아 다시 달리다 서다 소리지르다를 반복했다.
몇번 고성이 오가다 눈 앞에 꽤 비싸보이는 호텔이 보였다.
나는 '그녀석'에게 '저새끼 돈 주지말고 나 따라와' 라는 말을 남기고
택시에서 내려 냅다 그 호텔로 뛰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호텔에서 말하길, 내가 찾는 레스토랑은 바로 호텔 길 건너라고 했다.
'아..? 아~ 네~ 감사합니다'
갑자기 안도가 되면서 조금 민망했지만 화가 가라앉지는 않았다.
호텔을 나와 길을 건너니 레스토랑이 보였다.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려는데 뒤를 보니 그 택시기사가 '그녀석'에게 택시비를 건네받고 있다.
페루 쿠스코에서 호스텔 실제위치와 구글맵 표시가 달라 헤맸는데,
라파즈는 그 오차가 더 심했던 거였다.
레스토랑에서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시켰다.
김치찌개는 그렇저럭 김치맛이 났지만 된장찌개는 된장맛이 나지 않았다.
이런 된장.
여행 다니면서 '그녀석'과 줄기차게 싸웠는데 나중에 싸울 때 '그녀석'이 나에게 이런 소리를 했다.
'그 때 택시기사한테 그렇게 소리지르고 미안하다 소리도 안하고
내가 나중에 그 택시기사한테 돈주면서 달래는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나의 반응은,,
'어이가 없다. 너같으면 어두컴컴한 우범지대에서 택시기사가 내리라고 소리지르면 내릴꺼냐?'
결과적으로 택시기사가 맞았고 내가 틀렸다고 고성과 무례함이 용서된다는건가.
그리고 무슨 일이라도 당했다면?
택시기사와 나의 분쟁(?)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지 기분 좀 상했다고 뭔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건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선 니가 그런 역할을 해줘야 하는거야.
이런게 팀플레이란다.. 쯧쯧..
그런 상황에서 내가 먼저 미안하다는 사과를 해야하냐?
그게 그렇게 힘들었냐?
그래서 짜증났냐?
그 짜증이 우리가 당할 수 있었던 최악의 상황보다 더 가치있냐?
넌 가족인 나보다 소리 고래고래 지르던 쌩판 모르는 택시기사가 더 소중하냐?
그 무례한 택시기사는 나한테 사과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나는 택시기사한테 사과받으면 안되는 사람이냐?
누가 먼저 소리지르고 누가 먼저 약속을 어겼나?
'그녀석'에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서운한 감정이 앞섰다.
그래서 또 이성적으로 대하지 못했다.
가족과의 언쟁이 그렇듯 감정이 앞서 이런 나의 생각을 모두 차분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또 가족과의 대부분 언쟁들처럼 이 일에 대한 더 이상의 언급 없이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알아서 소화되는 소소한 문제들은 더 이상의 대화가 없어도 가족 사이엔 그럭저럭 덮어진다.
그래도 나는 아직 '그녀석'의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이 아쉽다.
이러면서 우리는 여행 기간 내내 싸웠다.
그러면서 10년전 내가 '그녀석'에게 보이기도 했다.
10년전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본다.
10년전 나는 나보다 택시기사 입장을 더 생각했을 것이다.
다짜고짜 내리라는 말에 허둥지둥 당황했을 것이다.
같이 소리지를 배짱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같이 소리지르는 일행을 보고 '그녀석'처럼 생각했을 수도 있다.
지구 반대편 3800미터의 고도로 몽롱하던 그날 라파즈에서
'그녀석'을 통해 까맣게 잊고 있던 나의 과거를 다시 만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석'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그리고 10년전 나와 다른 입장에 있던 누군가를 이해한것만 같았다.
그리곤 이제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날의 여행은..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었다.
과거의 나를 만나는 시간여행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