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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느 Aug 25. 2020

상인의 딸과 샐러리맨의 아들

이질적인 만남 그 이후

예전 어르신들 말씀이 그랬다.

"결혼이라는 건 집안 풍습이 맞아야 돼."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살아야 편해."


그 말의 무게를 느끼게 된 것은 결혼하고 나서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아파트 안에 과일행상 아저씨가 왔기에 가서 단감 한 줄을 사 왔다. 원래 과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취향인데 그중 내 돈 주고 사 먹는 유일한 과일이 단감과 복숭아다. 결혼하고 나서야 남편이 과일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임을 알았다. 모를 수가 없다. 그는 줄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깎으려고 보니 단감이 좀 상했던 모양이다. 이걸 어디서 샀느냐고 남편이 물었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중간에 끼워진 감들은 상태가 누르스름하니 안 좋아 보이는 곳이 보였다. 나는 아차 싶었고 남편은 다짜고짜 어디서 사 왔느냐고 물은 듯하다.

"글쎄. 또 올까? 아파트 안 과일 행상하는 분에게 샀는데."

내 말을 듣자 남편은  "이건 아니지."

바로 단감을 들고 집을 뛰쳐나갔고 과일장수에게서 단감을 바꾸어 왔다.


그 실행력이라니...  사실 나는 그냥 몇 군데 칼로 오려내고 그냥 먹을까 했다. 귀찮기도 하고 그런 분을 다시 만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감 한 줄을 들고 가서 교환해달라고 실랑이를 벌이고 싶은 마음도 애초 없었다. 그분이 일부러 끼워 팔기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운이 나빴던 거지. 장사하는 분도 매일 봉지를 열어 과일을 검수할 수는 없지 않나?


재래시장에 가면 조그만 나물 그릇을 몇 개 놓고 앉아 있는 할머니들이 있다. 비슷한 채소가 있다면 나는 제일 연로해 보이는 할머니에게 가서 나물을 산다. 물론 절대로 깍지 않는다. 이 거 팔려고 하루 종일 쪼그리고 땡볕에 앉아있는 할머니가 안쓰러워서이다. 이것저것 다 사도 고작 몇 천원도 안 된다. 그런데 남편은 잘 안 깎는 나에게 알고 보면 좌판이 쏠쏠하다고 얘기한다. 가겟세도 내지 않고 알고 보면 가게보다 더 비싸다고...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몇 번은 바가지 쓰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연로한 분에게 깎아달라고 하는 말 하기가 나는 쉽지가 않다. 그저 조용히 물어보고 비싸면 다른 곳으로 가서 산다.


나는 왜 이렇게 깎는 게 서툴까? 굳이 깍지 않아도 먹고살 만큼 넉넉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그 에누리 잘 안 하는 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누구보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바로 내가 상인의 딸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내가 성장하는 동안 읍에서 잡화점을 하시다가 나중에는 지물포 가게를 하셨다. 그 시절엔 다들 문종이, 장판이나 벽지를 줄로 재어와서 사서 직접 가져가곤 했다. 시장이 멀지 않은 가게여서 물건을 사러 온 손님들은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처럼 흥정을 하려고 하는 분들이 많았다. 가끔 부모님은 턱없이 깎자고 하는 분들과 실랑이를 하셨다.

 "그렇게 깎으면 못 팔아요." "그럼 우린 뭐가 남아요."

"장사하는 사람들 안 남는다는 거 다 거짓말이지. 그러지 말고 그 가격에 주라니까."

"아 ~~ 그 가격엔 안 판다니까요."

"아이고! 참 나!!"

정말 우리 집 물건 가격이 비쌌는지 지금의 나로선 알 도리가 없다. 오래전 일이라 비교해 본 적 없지만 그 근처에 그런 종류의 가게는 우리 집뿐이었으니 그분들도 비교해보고 하는 말은 아니었으리라. 이렇게 부모님이 손님과 목소리가 높아지면 가게에 붙은 방에서 숙제를 하거나 TV를 보던 나는 공연히 점점 마음이 불안해졌다. 필경 그 손님이 가고 나면 아버지나 어머니가 화를 누그러뜨리려고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내 머릿속에 물건 가격을 깎아달라고 하는 사람은 졸지에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린 듯하다. 가끔 우리 부모님은 어린 나를 가게에 앉혀 놓고 계모임을 가곤 했다. 산수라면 오빠가 나보다 더 잘했는데 왜 번번이 나에게 가게 보길 시켰는지 지금도 좀 울컥하지만 나는 가끔  그 일이 싫었다. 내가 가게를 보고 있을 때에도 그 깎아달라는 말은 변함없이 들어야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 건 "만원"인데요. 자신 없이 가격을 얘기하면 그쪽에선 8000원에 2개 주라든가 하는 요구를 의례히 해 왔다. 그러면 조용히 내 신발 위를 내려다보면서 "안돼요."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부탁을 하는 손님들도 있었다.

 "그러지 말고 학생! 좀 잘해 줘 봐. 다들 그렇게 팔아."

그 가격에 물건을 팔게 되면 부모님께 혼이 날 수도 있었다. 나름 정찰제를 고수하는 분들이었고, 가격이 다르면 나중에 욕을 먹게 된다고 하셨다. 결국 나는 깎아달라는 사람이 제풀에 지쳐 가 주기만을 기다려야 했는데 그 시간이 나는 무지 싫었다. 이다음에 절대로 나는 누구에게도 물건을 파는 일은 하지 말자고 나는 가끔 다부지게 마음을 먹으며 책을 펼치곤 했다.


내가 사업가가 될 소질이 있었다면 그때 내 나름대로 화려한 언변을 구사하면서 어떻게든 물건을 팔았든지 아니면 적당히 에누리해주고 더 많이 팔았을 텐데 그런 재목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때의 그 울컥함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았다. 친구나 직장동료가 물건을 흥정할 때는 가만히 지켜본다. 그러고 나서 정말 물건을 잘 깎아서 산다고 칭찬도 해 준다. 그런데 내 마음 깊은 곳에선 나는 물건을 파는 사람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남편 역시 이렇게 경제관념이 투철한 데에는 다년간 가정교육의 힘이 컸을 것이다. 정해진 월급으로 4남매를 가르쳐야 했던 시어머님은 깎는데 도가 턴 분이다. 맞벌이하는 며느리를 대신하여 어린 손주를 돌봐 주신다고 몇 년간 함께 사셨는데 언젠가 정육점에 족발을 함께 사러 간 적이 있다. 그 정육점 주인아저씨는 뭐랄까 원래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분이셨다. 점잖고 말이 많지 않았지만 가끔 요일마다 에누리를 해 주었고 고기도 좋아서 자주 들르는 곳이었다.


그 날 곰탕을 끓일 3만 원 정도 되는 족발을 하나 사고 나오려는데 시어머님이  "잡뼈"를 얹어달라고 주인에게 요구를 하시는 거다. 나는 전혀 예상 밖의 일이라 당황했다. 다들 족발 살 때 잡뼈는 달라고 하면 그냥 준다고 하신다. 처음에는 어르신 대접을 한다고 부드러운 어조로 안된다고 하던 주인아저씨는 나중에 얼굴이 상기되어 벌컥 화를 내셨다. "안된다니까요." 같이 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런 말을 들었으니 시어머님이 이제는 불만을 쏟으며 돌아설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착각이었다. 그 기세에도 굴하지 않고 평소 노인정에서 팔 걷어붙이고 심부름도 잘하시는 선량한 분이 계속 우기시는 거다. 가게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보는데 주인은 갑자기 안으로 쑥 들어가더니 잡뼈가 든 비닐봉지를 우리 쪽으로 던졌다.


"이거 가지고 가세요" 그렇게 말했던가. 나는 그 곰탕을 맛있게 다 먹지 못했다.

하여튼 시어머님은 평소와 다름없는 안색으로 그것 보라는 듯 의기양양 집으로 돌아오셨지만 나는 그 후로 한 번도 시어머니와 장을 보러 간 적이 없다.


이렇게 다른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가 티격태격 가끔 부딪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비싸면 안 사면 된다는 생각' 남편은 '부르는 대로 사면 바보'라는 생각. 누가 맞는지 중요치 않다. 남편도 이런 내가 답답했으리리라. 하지만 안 사면 그만이지. 나와 맞는 가격을 제시하는 데서 사면 그만 아닌가? 이유 없이 비싼 가게는 자유시장 질서에 의해서 경쟁에서 도태되겠지.


그런데 그런 남편과 26년을 살고 보니 나도 조금씩 달라졌다. 지금은 과일을 사면 그 중간에 있는 과일의 상태가 궁금하여 이리저리 살펴본다. " 저 쪽에선 좀 더 싸던데... 내가 잘못 봤나?" 이러면서 슬쩍 가게 주인의 안색을 살핀다. 그럼 "아 그 집 물건은 중국 제고 우리 꺼는 국산이에요" "아유 참, 그럼 500원 깎아드릴게" 하는 내가 바라는 적절한 흥정이 이루어진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남편에게 한 마디 한다. 미리 비싸게 샀다고 핀잔을 들을까 하여 선수를 치는 거다. "들었지? 그 집 껀 국산이래." 정가를 주고 살 만큼의 물건이었음을 확인하는 제스처다. 때로는 남편이 나에게 "당신 덕에 깎아서 샀네" 하면서 좋아할 때도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소비생활을 존중하는 선에서 적당히 중도노선을 걸으며 살고 있다. 나는 합리적인 경제생활이 나쁠 거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은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 가격을 깎는 것을 싫어하는 나의 기분을 알고 있기에 비싸다고 생각하면 조용히 내 팔을 잡아 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른 집에 가서 사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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