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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느 Aug 31. 2020

아직 늦지 않았어.

하마터면 놓칠뻔한 나의 잠재력



아직 늦지 않았어. 내 인생의 편집자는 나야.



심리상담전문가 로리 고틀립이 테드 강연에서 한 말이다. 늦지 않았다고 하는 말이 따뜻하게 들려온다. 이제 내 나이가 결혼 직전 친정엄마의 나이와 비슷해져 가고 있으니 나이 들었음을 인정하면서도 거울 속의 내 모습이나 사진 속의 내 얼굴과 화해하는 데는 더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매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예전에 입었던 원피스와 스커트가 더 이상 몸에 맞지 않음을 확인하면서 버릴 생각을 못 하고 있다.


이 '나이 듦'은 때에 따라선 아주 편안해질 때가 있다. 직장에서 새로운 직무연수를 할 때 "아~~ 이젠 나이 들어서 잘 못 알아듣겠어. 아무래도 총기 있는 자기가 잘 듣고 정리해줘!" 하고 젊은 동료들에게 미룰 때 괜찮은 핑계가 되어주기도 한다. 나이를 빙자하며 적당히 강의를 들었다가 끝난 후에 꼭 다짐받듯이 다시 뒷북을 치는 질문을 해도 동료들이 정상참작을 해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끔 새 노트북, 새 가전제품,  새 휴대폰을 사면 익혀야 하는 소책자 가이드북은 피할 수 없는 암초이다. 그럴 땐 급한 불 끄듯 꼭 필요한 것만 익히고 나머지는 미루어 둔다. 어차피 알아봤자 쓰지도 않을 기능이라고 적당히 미루어보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자기 계발서보다는 에세이가 외국 드라마보다는 한국 드라마가 더 좋아지고 머리 쓰는 일이 그다지 당기지 않는다. 퇴근하고 나면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뒤이어 퇴근한 남편과 저녁을 함께 먹고 설거지 후 커피 한 잔,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TV를 함께 보고 내일의 출근에 맞추어 총총히 잠자리에 든다.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고 독립까지 시키고 난 후 평범한 중년부부의 일상을 그렇게 이어갔다.


그 일이 없었다면 아직도 그런 일상을 이어나갔으리라. 나의 잠재력을 일깨워 준 '1시간짜리 재능 나눔 연수'는 그렇게 우연히 나에게 찾아왔다. 작년 늦가을 한 직장동료가 재능 나눔으로 재활용 공예를 배울 사람을 모집한다는 메모를 메신저로 보내왔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홈패션이며 뜨개질로 옷을 지어 입히는 데 열중했던 나는 원래 손으로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다. 퇴근시간까지 다 못할 업무를 집에 번번이 가져오게 되고 업무와 관련된 서적을 손에서 놓지 못했기 때문에 어느새 그런 취미생활은 부러운 사치로 돌려버린 지 오래였다. 어쩌다 시간이 나면 요가나 헬스를 다녀야지하는 바람만 키워두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퇴근시간 내에 직원 연수시간에 할 거라는 말을 듣고는 귀가 솔깃해졌다. 수공예 1시간으로 작품을 만들고 맛있는 카페 음료까지 지원하는데 재료비 한 푼 낼 필요 없다 하니 이런 좋은 기회가 없었다. 그저 테이크아웃 플라스틱 컵 하나만 챙겨 오면 된다고. 여직원들은 거의 그 모임에 휩쓸려 갔는데 거기서 처음 양말목 재료를 보게 되었다. 맨 처음 우리에게 제공된 것은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알록달록한 양말목 고리였다. 양말의 목부분을 잘라서 고리 모양으로 만든 일종의 산업쓰레기인데 세탁해서 판매한다고 했다.



알록달록한 양말목 고리의 무더기에서 각자 원하는 만큼 재료를 골라서 가지고 가라고 하는데 어떤 색 고리를 가지고 가야 어울릴까 고민하면서 나 역시 보라색, 핑크, 파란색 등의 고리를 잔뜩 안고 왔다. 이 색으로 그러데이션 효과를 주려고 한 것이었다. 각자 완성품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마음에 드는 양말목 고리를 한 아름 골랐다.


동료의 지시대로 가위로 플라스틱 컵을 자르고 그 사이에 준비한 양말목 고리를 교차해서 끼워 주었더니 한 시간쯤 지나자 멋진 재활용 컵이 탄생했다. 고리가 밑바닥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끼우는 형태라 위아래 색깔을 그러데이션 한 분들은 썩 훌륭한 작품을 완성했다. 양말목 고리를 교대로 넣다가 집중력을 잃은 나는 다시 풀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고 색 배합까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서 겨우 필통 하나를 완성할 수 있었다.



사실 그 날의 클래스에서 필통보다도 더 내 눈을 끌었던 것은  동료가 연수하는 동안 제작했다는 다양한 색깔의 멋진 손가방이었다. 그 가방을 보는 순간 이미 필통은 뒷전이고 내 마음은 핸드메이드 가방을 메고 다니는 상상 속을 헤매고 있었다. 정작 현실은 가방은 커녕 입문 단계에서 쩔쩔 매고 말았으니 내 상상은 거기서 끝나는 게 당연했다. 알고 보니 그 동료는 거액을 주고 공방 강사에게 강사 자격증을 땄고 그 기술이 강사들에게만 공유되는 지라 그분을 붙들고 가르쳐 달라고 조르기는 어려운 노릇이었다.


처음으로 잊고 지냈던 '오기'가 생겼다. "그래 그까짓 것. 어려우면 얼마나 어렵겠어. 저런 가방 내 손으로 하나 만들고 말 거야." 만일 그 가방을 동네 근처 공방에서 팔았다면 나는 그냥 하나 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공방은 우리 집에선 한참 먼 곳이어서 일을 마치고 다녀올 만한 거리도 아니었다. 그래서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치며 내게 가방 만들기를 가르쳐 줄 영상과 핸드메이트 키트를 찾았고 아쉽게도 동영상은 못 구했지만 양말목 가방 키트를 2개 구입할 수 있었다.



그 날부터 나의 핸드메이드 가방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DIY 가방세트가 도착한 후부터 열심히 가방 제작에 착수했다. 기초 뜨기는 유튜브 강의를 찾아서 배웠고 도면을 보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어린 시절 대바늘 뜨기를 즐겨하던 엄마의 영향으로 웬만한 카디건은 도안을 보면 뜰 수 있을 정도였던지라 대바늘과 코바늘 뜨기의 부호 및 기본 뜨기를 응용한 듯 보이는 그 도안이 영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배운 지 며칠 후에 가방 하나를 완성하여 한쪽 팔에 끼고 출근했더니 모두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들은 그 날 이후로 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수공예를 그때 헤매던 사람이 떡하니 가방을 만들어 왔으니 말이다.



그 완성된 가방을 당시 내가 처음으로 온라인에서 소통했던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의 자유게시판에 올렸다. 이웃들의 금손 찬양 댓글에 나는 잔뜩 고무되었다. 나의 첫 번째 양말목 가방 작품은 당시 나와 절친인 이웃님에게 전에 받은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보석 단추와 지퍼까지 달아서 택배로 보내드렸다. 그분 역시 무척 기뻐하면서 카페의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해서 그 가방을 든 인증사진을 찍어서 나에게 보내주었다. 돈으로 계산하자면 불과 단 돈 1만 원 내외의 재료비였지만 오고 가는 따뜻한 선물과 칭찬 속에 한동안 유쾌했다.


그 여세를 몰아 다음 키트 작품에 착수했는데 그때 샘플의 사진처럼 가방을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지난번 가방은 용케 색깔이 비슷하게 왔지만 이 재료의 특성상 물감이나 뜨개실과 달라서 똑같은 색상의 재료를 일정 수만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색상이 샘플과 다를 수 있으니 감안하고 구입하라는 내용이 판매하는 웹페이지 제품 설명에도 기재되어 있었다. 동일한 색으로 한 줄도 맞출 수 없는 상황이고 죄다 어두운 색이라 실망이 컸지만 며칠 동안 그 색의 조합을 찾아서 풀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했다. 남편이 "퇴근하면 힘들다고 푸념하면서 왜 그런 건 들고 앉아서 고생이야?" 하고 핀잔을 주었다. 돈 줄 테니 마음에 드는 것 하나 사서 가지라고 하면서. 그 나이에 이런 얼룩덜룩한 핸드메이드 가방 없어 보이지 않냐고 했다.


그런데 '그 없어 보이는 뜨개 가방'이란 말이 내 오기를 다시 자극하고 말았다. '그럼 튼튼하고 있어 보이는 세련된 가방을 만들면 될 거 아냐?' 몇 번을 다시 풀었는지 모른다. 아예 실만 몽땅 분류해다가 줄줄이 바닥에 깔아보고 개수만큼 세어서 색을 맞추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두 번째 출퇴근용 스퀘어 가방을 완성했다. 핸드메이드 가방의 가장 큰 문제가 부실한 끈이기 때문에 가죽끈을 부착하고 오래된 바느질함에서 찾은 지퍼도 달아 주었다. 어딘가에서 얻은 커다란 자동차 키고리가 생각나서 지퍼를 좀 더 쉽게 열 수 있게 지퍼 고리에 매달어 주었다.



이렇게 가방 키트를 2개 완성하고 나니 이제는 내가 직접 가방을 디자인하고 싶어 졌다. 처음에는 양말목가방 만드는 방법이 검색으로 찾을 수 없어 낙담하였지만 코바늘 작품을 살펴보고 응용하기 시작했다. 코바늘처럼 정확하게 정교한 무늬는 넣을 수 없지만 서로 어울렸을 때 오는 색의 조화와 튼튼한 조직이 매력적인 소재였다. 그랬더니 다른 디자인의 가방을 만드는 구상이 떠올랐다. 한 번 시작했다 하면 밤잠 자지 않고 완성할 때까지 계속 작품 연구(?)에 들어갔던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작은 모티브를 떠서 색의 배합을 미리 보는 방식으로 좀 더 쉽게 어울리는 색깔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완성된 나의 세 번째 작품은 바로 이 가방이다. 한 줄 가죽 어깨끈에 지퍼 대신 에지 있는 꽈배기 고리를 달고 작년 가을 내내 책 2권에 지갑, 파우치까지 넣고 애용하는 나의 출근 가방이 되었다. 보는 사람마다 탐을 내는 에코백으로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 이후에도 나의 핸드메이드 가방 제작은 계속되었고 내가 가지고 싶었던 모든 종류의 가방을 직접 만들어서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숄더백, 토트백, 텀블러 가방, 단색 가방, 배색 가방... 가방에 대한 한을 풀었는지 더는 명품가방에 대한 탐욕도 생기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과 크기로 만든 다양한 가방은 나의 무너진 자존감을 한껏 올려주었다.




마지막 작품은 카페 이웃님이 보내 준 단풍 사진 1장에 영감을 얻었다. 단풍잎이 불타는 빛깔의 핸드메이드 가방을 완성시키고 나의 대장정은 막을 내렸다. 우리 집에 내 작품을 전시할 갤러리는 없지만 온라인 세상에 눈을 뜨니 어디에 보관할지 보였다. 보관료 한 푼 안 내고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곳. 나는 인스타그램에 취미 계정을 새로 만들고 자칭 나만의 갤러리에 그 작품을 촬영해서 빠짐없이 전시해 두었다. 드디어 남편이 "당신 손이 금손"이라고 내 손을 들어주고 내 디자인에 가끔 의견을 보태 주기도 했다. 정말 내 솜씨를 알아준 건지 아니면 앞으로는 돈 주고 가방을 안 사겠다는 말이 더 좋았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양말목공예를 처음 배우던 날부터 나의 모든 기록이 담긴 이 가방 제작 팁은 내 블로그에 아낌없이 풀었다. 지금도 양말목가방 디자인을 검색하는 누군가는 검색을 통하여 내 작품 중 한 개를 보고 도움을 받으리라. 내가 어느 공방에서도 배운 바 없고 순수 창작품이어서 저작권의 시비에 걸릴 일도 없다. 나와 같이 원데이 1시간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은 내가 들고 다니던 가방이 바뀔 때마다 감탄하더니 공방에 가는 대신 무료로 나에게 기술을 배웠다. 곧 직장을 그만 둘 계획이었던 내가 강사가 있을 때 배우는 게 좋을 거라고 협박을 했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공방의 가방보다 훨씬 더 실용적이고 고급스럽다고 넘치는 칭찬을 해 주었다.



내가 알게 된 양말목 공예의 장점을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재료가 저렴하다. 1만 원어치만 사도 가방을 만들 수 있다.

2.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가방이다. 같은 도안이라도 재료의 색깔이 다 다르다.

3. 완성 시간이 짧다. 코가 커서 한두 시간에 작은 작품 하나를 완성한다.

4. 실용적이다. 코바늘이나 대바늘보다 양말에 쓰이는 실이라서 튼튼한 편이다.

5. 재활용이라 환경친화적이다. 대량 산업쓰레기를 재활용하여 실용적인 생활용품 제작이 가능하다.

6. 누구나 만들 수 있다. 특별히 기법이 복잡하지 않다.

7.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내 손으로 만든 작품이 집안 곳곳에 놓이고 유용하게 사용되면 행복감이 상승한다.



그 날 내가 혼자 필통을 만들다가 '나는 똥 손이야'라고 그만두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나는 그 이후에 내가 시작한 배움의 문을 하나도 열지 못했을 것이다. 하마터면 놓칠뻔한 내 잠재력을 열어주었던 그 양말목 수공예는 자존감 보약을 먹은 것처럼 한동안 내 안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불붙여 주었다. 원했던 만큼 양말목 가방 제작이 모두 끝나고 이제는 더 둘 곳도 마땅치 않아졌을 때, 다시 나는 남은 한 달 동안 열심히 과제를 완수하여 11월에 MK유튜브 대학의 열정 장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감히 배울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SNS를 온라인에서 하나씩 배우며 블로그, 인스타그램, 스마트 스토어, 네이버 카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성장시키면서 마지막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 날 이후 내게 늦어서 못 배우는 것은 없어졌다. 메이크 타임을 다시 조절하고 나에게 좀 더 시간을 주면 된다. 내 인생의 이야기가 바뀌고 난 뒤 내 삶도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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