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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느 Oct 22. 2020

국제도서릴레이 정말 유의미한가요?

이 모든게 다 부메랑이 된다!

          

지금으로부터 아주 먼 옛날 70년대~80년대 이야기이다. 필자가 십 대였을 무렵 ‘행운의 편지’라는 것이 있었는데 행운을 준다는 편지 내용에 섬뜩한 협박성 문구가 있어서 특히 시험 기간에 행운의 편지를 받은 학생은 마치 폭탄을 받은 기분이었다. 이 편지는 시작부터가 무시무시하다. 유명인사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이 편지를 쓰지 않은 ~는 죽임을 당하였고”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 편지를 받은 너는 똑같은 행운의 편지를 수십 장 베껴 써서 다른 친구에게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벼락치기 공부로 밤새 할 공부가 태산인데 그런 편지를 받았으니 어쩌랴? 요즘처럼 복사하거나 프린트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므로 기가 막힌다는 것이 그 당시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시험 기간에 이런 편지를 손편지로 수십 통 쓰게 한 이 친구가 나의 맞수가 아니면 그 누구인지 몹시 궁금해지고 불쾌하고 억울해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내가 그 편지를 어떻게 했느냐고? 그 건 뒤에 공개하기로 한다.    



 

현실세계로 돌아와서, SNS라고는 블로그를 개설하고 달랑 풍경 사진 1장 올린 게 고작이었던 나는 작년 우연한 기회로 오래전에 개설해 둔 블로그를 제대로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1일 1글을 포스팅하고 이웃마실(?)을 다니면서 50대에 늦바람이 들었다. 바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 글의 피드백을 확인하고 이웃님들의 새 글 알림을 받으면서 신기한 온택트 세상에 흠뻑 젖어서 글로벌 시민이 아니라 온라인 시민으로 거듭난 기분이었다.

     

그렇게 이웃들의 블로그 탐방에서 다른 블로그 이웃을 소개한 글을 처음 보았는데 ‘국제도서 릴레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는 듯했다. 처음에는 그 릴레이에서 무척 좋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나 역시 거기에 소개된 블로그로 가서 서로 이웃 추가를 신청하곤 했으며,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멋지게 소개해준다면 참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처음에 ’국제도서 릴레이’를 요청받았을 때는 기다렸다는 듯이 흔쾌히 내가 그동안 가깝게 왕래했다고 생각했던 3분을 엄선하여 국제도서 릴레이의 다음 주자로 요청을 드렸다. 현재 읽고 있는 책의 구절을 책 소개 없이 소개하는 일도 포함되었는데 1일 1책을 읽다시피 열공독서를 시작했던 즈음이라 그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분들의 소개를 멋지게 해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댓글을 통해 요청했을 때 다소 불편해한 분들도 있었던 것 같다. 한 마디로 친분 때문에 마지못해 받아준 분도 있었다.

     

그 후 코로나 이후 언택트시대에 자기계발을 한답시고 의욕적으로 참가한 여러 개의 단톡방 프로젝트 미션과 온라인 커뮤니티의 강의 과제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던 어느 날, 하루 만에 이 도서 릴레이가 연달아 3개가 접수되었는데 난처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분들에겐 각자 내가 처음이었겠지만, 이렇게 동시에 똑같은 편지를 받게 되리라곤 생각 못 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분들은 모두 그 당시 같은 강의를 통해서 알게 된 분들이었다. 그래서 블로그에 나를 지명하는 글을 발행했다는 첫 번째 분의 카톡 요청은 받아들였으나, 두 번째 분은 카톡 요청은 정중하게 거절하게 되었고, 세 번째 분은 이미 발행을 한 후에 내가 운영하는 카페의 댓글에 일방적으로 밑도 끝도 없이 알림을 주고 가 버려서 거절 의사를 밝힐 틈도 없었다. 졸지에 누구 요청은 받고 누구는 거절하게 된 셈이었다.   

   

정말 이대로 있다가는 그날 밤 나는 ‘국제도서 릴레이’에 깔려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미 첫 번째 분의 제안을 받을 때 인맥이 두텁지 않은 나는 더는 부탁드릴 이웃이 없었다. 그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미 본인이 블로그에 요청 글을 끝낸 후에 통보해 온 경우였다. 나 역시 그런 실수를 한 적이 있으니 누구를 원망하랴!! 발행한 쪽에서는 ‘뭐 안 해 주심 할 수 없고….’ 이런 마음일 수도 있으나 이것도 인간관계인지라 마음이 무거웠다. 최소한 이런 요청을 하기 전에 요청할 분의 블로그로 가서 최근에 이 릴레이를 한 적이 없는지, 이런 글을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는 분인지, 어느 정도 인맥이 있는 블로거인지 알아보고 발행하는 것이 예의라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고, 발행한 후에 요청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 상대를 몹시 불편하게 할 수 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내 경우에는 블로그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었으나 이제 요청할 3명의 가용인원(?)이 없었다. 나에게 도서 릴레이를 요청한 그 세 분도 같은 강의에서 만난 강사와 수강생들이었으니 내가 그 소모임의 누군가에게 요청을 또 한다면 이 건 국제도서 릴레이의 개미지옥(?)이 될 듯했다. 온라인의 만남이라는 것이 얼굴 본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 글을 읽고 댓글을 달면서 남의 마음도 읽고 공감도 했는데 거절을 한다는 것이 참 어려웠다.

      

그날 밤늦게까지 고민을 거듭했다. 책을 읽고 한 구절 쓰는 건 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일을 3명에게 전달하라니! 블로그 글쓰기가 쉽지 않은 사람도 있고 아직 서로 닉네임만 아는 사이에 그 3명을 도저히 선택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인스타그램에서도 처음 팔로워 신청을 한 분에게서 이런 요청을 받고 당혹스러웠던 경험이 두어 번 있었다. 나로 말미암아 처음엔 3명이 이 난국에 빠지고 그다음엔 9명이 또 그다음엔 27명이 이런 곤란한 지경이 된다는 것 아닌가?

      

더구나 나처럼 이웃을 홍보해 줄 기회가 왔는가 해서 신나게 발행을 누르고 난 후에 당사자에게 통보하는 무례함을 저지를 블로그 초보인 분도 그 중엔 있을 것이다. 황망한 일을 연달아 겪고 보니 오프라인에서 모르는 그 이웃이 얼마나 바쁘고 힘든 분인지 알지도 못하고 무례한 일을 했던 과거의 나 자신이 몹시 부끄러워졌다. 게다가 이 모든 게 다 부메랑이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나에게 릴레이를 지명하고 글을 발행하는 버튼을 누르고 있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났다.   


   



그날 밤늦게 나는 <국제도서 릴레이를 정중하게 사양합니다>란 공지글을 블로그 문패에 걸었다. 누구라도 내 블로그에 오면 볼 수 있도록…. 그리고 한동안 이 글을 내리지 않았다. 그 공지글엔 발행일로부터 비밀 댓글로 꽤 많은 지지 댓글이 달렸다. 나의 이웃은 아니지만, 우연히 검색으로 들어온 분도 용기 내어 나도 거절에 참여하겠다고 했고, 얼결에 받았으나 이런 불편함의 고리를 계속 잇고 싶지 않다고 한 분도 있고, 충분히 이유 있는 거절임을 지지해주셨다.

https://blog.naver.com/yooni23/221971487227

     

물론 그날 나에게 거절한 분들은 마음이 상하여 그 뒤로 자주 오고 가지 않게 된 분도 분명히 있다. 그분들로서는 ‘한 번 요청한 것인데 뭐 그렇게까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날 누군가에게 다소 편협한 사람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로 인해서 불편한 사람을 계속 만들지 않아도 되어서 후련한 기분이다. 진정한 이웃이라면 내 의향을 충분히 이해할 것으로 믿었고 뜻이 다르다고 해서 방문하지 않을 이웃이라면 구태여 나 역시 연연할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출판문화를 장려하는 자발적인 애독가들의 문화에서 시작되었는지 고도의 마케팅 전략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빼빼로데이나 밸런타인데이처럼 마케팅의 도구로 쓰일 수도 있다는 촉이 왔을 뿐이다. 내가 마케팅의 도구로 쓰일지라도 그 마케팅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달하는 기회로 사용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 릴레이에 동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무언의 압박감은 없어야 한다. 릴레이라는 말에는 알게 모르게 학창시절 반별대항으로 함께 이어달리기하던 친구들과의 추억이 소환되어서인지 ‘우리’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빨리 동참하기를 자극하는 ‘밀기’가 작용하는 것 같다. 단지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오랫동안 으레 관행처럼 해 왔더라도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면 한 번쯤 돌아봐야 한다는 것! 불합리한 일이라고 마음속에 빨간 불이 켜졌을 때, 최대한 빨리 실행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내 오랜 경험의 산물이다. 거기엔 민폐를 몹시 싫어하는 내 기질 탓도 있겠다.



     

여러 사람이 눈치를 보고 있다면 내가 거절하는 최초의 1인이 되어서 나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십 대 시절 시험 전날 받은 행운의 편지 결과를 말해 보자면 그 으스스한 요청을 자르고 나는 그날의 벼락치기 시험공부에 낭비되는 시간 없이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잘 되었느냐고? 최소한 시험 전날 받은 ‘행운의 편지’와 그 발송인에게 내 시험결과의 유감을 지우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저 벼락치기 공부의 한계를 느꼈을 뿐이다.

          

필요에 의한 인간관계는 언젠가 깨지기 마련이다. 행운의 편지처럼 공식적인 협박은 없었으나 그동안 응원 댓글로 서로를 방문해왔던 온라인의 이웃 관계가 이 일을 계기로 느슨해질 수 있다는 결과를 예상 못 할 만큼 적은 나이도 아니지 않은가? 상대를 진심으로 배려하는 관계만 오래갈 수 있는 법이다.    

SNS에서 핫한 릴레이!! 정말 유의미한가? 저울 위에 한 번 올려볼 필요가 있다.      


이미 요청을 받아들여 어쩔 수 없다면 릴레이대상자를 선정하기 전에 다음 사항을 점검해 보는 건 어떨까?

1. 그분의 블로그에 들어가서 최근 릴레이에 참여하지 않았는지 전후를 살펴본다.

2. 블로그 글 발행이 어렵지 않은가 근황을 살핀다.

3. 발행 전에 먼저 정중하게 요청한다.      


위 기본사항이라도 지킨다면 당신은 최소한 민폐 캐릭터로 누군가의 절친이웃 목록 속에서 삭제되는 일만은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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