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알람이 울리는 순간 나는 이불에서 한 손을 뻗어 벨 해제를 누른다. 그것도 아주 신속하게. 벌떡 일어났으면 좋겠지만 다시 이불을 뒤집어쓴다. 이윽고 6시 반! 다시 알람이 울리고 그것도 금방 꺼 버린다. 세 번째 벨인 7시 알람이 울리면 그제야 주섬주섬 잠옷바람으로 일어난다. 일어나지도 못할 알람을 계속 지정해 두는 이유는 미러클 모닝 독서를 즐기다가 주말에 오는 남편 덕분에 부엉이 커플로 다시 데뷔를 하긴 했지만, 아직도 새벽 독서의 맛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그 날 아침의 내 기분을 살핀다. 내키지 않으면 그대로 이불속에 벌렁 드러누워도 된다고 게으름 피울 자유를 전면 허용했다. 그동안 수십 년을 일찍 강제 기상을 했으니 이제는 이불속 뭉기적거림의 게으름 정도는 나 자신에게 누리게 하고 싶은 것이다. 매일 아침 자동차 운전에만 50분 이상 걸리고 8시 20분까지는 도착해야 하는 지난 5년 동안, 최소한 오전 6시에 기상하지 않으면 등교하는 아들의 아침밥 준비며 머리 감고 출근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 나는 매일을 주말처럼 살고 있다! 아직도 일하는 남편이 나를 가장 부러워하는 점이기도 하다.
일어나면 맨 먼저 하는 일은 어젯밤 배송을 요청한 쿠팡의 새벽 배송 물품과 조간신문을 들여오는 일이다. 쿠팡 리워드를 위해 남편에게 쿠팡에서 주문할 물건의 링크를 보냈었다. 예외 없이 택배기사는 배송물품을 내려놓은 우리 집 현관 쪽 사진을 캡처해서 나에게 문자로 보냈다. 새벽 배송은 코로나 이전부터 거의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지라 식품의 신선도라든가 전달의 문제가 있어서인지 꼭 사진을 증거로 남기는 듯하다.
도착한 물건은 여성 영양제 1병이다. 어떤 영양제를 사야 할까 어제 꽤 검색에 열을 올리다가 너무 싸지도 비싸지도 않으면서 한 알만 먹어도 되는 갱년기 여성 영양제를 선택했다. 물론 구입한 고객의 리뷰는 몇 백 명은 넘어야 한다. 그리고 리뷰수보다 중요한 건 부정적인 후기가 있느냐이다. 내가 그 불만족 고객의 1명일 수도 있기 때문에... 스마트 스토어 관련 강의에서도 늘 놓치지 않고 하는 얘기가 그 얘기다. 환불을 할지언정 고객의 부정적인 민원이 생기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신문을 가져온 다음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한다. 유튜브에서 잠깐 본 적 있는 어느 치과의사의 말이 아침에 구강 내 세균이 심각하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에는 구취가 심해지는지도 모른다. 일단 양치질을 하고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 1잔을 받아온 다음 여성 유산균 1포를 톡 털어 입안에 넣고 삼킨다.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을 몇 달째 복용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확실히 소화활동과 면역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여성 유산균이 부인과 질병을 예방해 준다고 해서 이 쪽으로 바꾸어 복용하고 있는 것.
다시 잠옷바람으로 침대에 올라가서 등쿠션을 베개 뒤에 받쳐 목쪽을 높다랗게 쌓아 올린 뒤에, 어젯밤부터 읽고 있던 수필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를 펴 들었다. 글쓰기선생님이 소개해 준 책 표지에 있는 그대로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을 담은 수필집이다. 혼자 사는 일본 할머니의 씩씩한 일상을 보여 준다. 나의 미래가 될지도 모르기에 관심을 가지고 그녀는 어떻게 살다가 갔는지 집중하고 있다.
작은 일에 불평하고 투덜거리는 그녀의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도 함께 다루고 있는데, 노인정에 다녀오는 게 낙인 내 주변의 할머니들과는 많이 다른 분이다. 뭔가 생동감이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 도덕적인 생각을 강요하지도 않고 그렇게 살려고 안간힘을 쓰지도 않는다. 그렇게 일상을 자기 식대로 누리다가 <죽는 게 뭐라고>라는 책을 남기고 암으로 가셨다. 노화와 죽음에 좀 담대해질까 하는 생각에 그녀의 글을 읽고 있다.
8시가 지나고 생각하니 오늘이 병원에 가는 날이라 서둘러 머리를 감고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쳤다. 어제 남겨 둔 된장국을 한 번 흘낏 보았으나 그다지 시장기도 없다. 그러나 필경 3시간은 걸릴지 모르는 병원행에 위장을 마냥 비워 둘 수는 없어 현미시리얼을 먹어 두었다. 시리얼을 먹으면서 조간신문을 펼쳐 본다. 종이신문을 안 본 지 오래되었다가 큰 마음먹고 올해 1년만 구독해 보기로 했다. 직장에서 나오고 보니 다소 고립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신문을 통해서 똑똑한 친구들이 아침 일찍 새로운 소식만 모아서 세상 변하는 일을 놀랍다고 아침마다 들려주는 기분이다.
알고리즘인지 권력인지 그런 것들이 온라인 뉴스에 더 발휘되어 누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는 게 아닌가 해서 인터넷 뉴스는 잘 보지 않게 된다. 게다가 나도 모르게 어떤 뉴스로 빠지면 어느새 유튜브 속을 헤엄치고 있고, 유튜브 알고리즘 속에 계속되는 비슷한 주제속에 갇혀 있다. 신문을 2개 이상은 봐야 한다지만 경제적 여건상 그렇게는 못하고 보수적인 나이의 내가 균형감을 상실하지 않도록 진보적인 성향의 일반인을 위한 신문으로 선정했다. 신문은 내가 읽고 싶은 것만 보고 내려놓을 수 있어서 좋다. 줄곧 수십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느라 아침이 무척 바빴던 터라 아침에 신문을 펼쳐 들 수 있는 그 여유가 참 나는 부러웠다.
올 1월부터 약 10개월 동안 코로나가 나에게 남긴 것은 꽤 많았지만 그중에서 어깨 통증은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동안 SNS 글쓰기며 1일 손그림이며 외국어 공부, 온라인 마케팅 공부에 빠져 있다가 손목 저림에서 팔 통증으로 연결된 리듬이 어느새 오른쪽 어깨로 올라간 듯 팔을 뒤로 뻗을 때 찌르는 듯한 통증이 왔다. '또 오십견이 왔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 실수였나 보다. 코로나로 외부 출입을 자제했더니 병원에 출입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고 결국 밤에 돌아누울 때 욱신거림을 참을 수 없어 정형외과에 갔었다. 의사는 무거운 것을 들었냐고 물어보는데 1주일에 1번 보는 장에 무거운 장바구니도 남편이 도맡아 들어주는 판에 어쩌다가 분리수거 상자 좀 들고 내려갔다고 핑계를 댈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생각지도 않게 어깨 통증 치료로 주 1회 주변에서 후기가 좋은 정형외과를 방문하게 되었다. 버스 세 정거장 되는 거리, 도보로 30분 내외인지라 걷기 운동 겸 걸어서 다니는 중이다. 우리 아파트 앞 횡단보도를 건너서 잠시 걷다가 커브를 틀면 주변 공원 옆으로 연결되고, 오래된 아파트 뒷 담으로 늘어선 가로수 나무그늘이 드리워진 보도에 떨어진 낙엽을 밞고 걷노라면 영화 앵글 속 가을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길에 인접해 있는 주민스포츠센터는 휴업이지만 그 옆 운동장에서 가끔 조기축구회를 하는 남자들의 힘 있는 목소리가 담장을 넘는 걸 보니 실외 스포츠는 코로나 위기를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노년의 커플이 애틋하게 작별을 하고 있더라고 동네 친구가 전해 준 뒤부터는 인적이 많지 않은 이 오붓한 길이 왠지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낙엽이 제법 쌓인 거리를 걷다가 몇 컷 찍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꼭 찍으려고 하면 누군가 앞에서 나타난다. 아무래도 구도 좋은 사진 찍기는 틀려 먹었다!
내가 방문하는 정형외과는 아침 일찍부터 늘 붐빈다. 거의 90% 이상 자리에 앉아 계시는 분들이 60대 중반 이상으로 보이는 지라 여기는 왠지 나에게는 다가올 실버타운 같은 느낌이다. 말없이 거리 지키기를 하면서 병원 의자에 띄엄띄엄 앉아 무표정하게 TV를 바라보는 그분들 옆에서 무심코 앉아 있노라면 나도 이 대열에 함께 한 듯한 쓸쓸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병원에 아침부터 와 있는 분들이 멀쩡할 리 없으니 뭐 유쾌하다고 표정이 좋을까? 하면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임산부 부부에게 시선이 멈추었다. 조용한 얼굴이지만 심각한 얼굴은 아니다. 큰 부상으로 온 분들은 아닌 듯. 그런데 어르신들은 표정으로는 알 수가 없다. 걱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걱정해 봤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이런 저런 시름에 달관하신 건 아닌지~
내 병명은 석회로 인한 어깨 통증이라고 한다. 어깨가 굳어졌다는 것이다. 무거운 것 들지 말고 팔을 귀 옆으로 붙이는 운동을 자꾸 해 주라고 한다. 의사를 만날 때마다 앞으로 나란히! 위로 나란히! 뒤로 열중쉬어! 이 자세가 얼마나 편안해졌는지 보여주고 어깨 근육을 강화시켜주는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하고 집으로 온다. 뼈에 주사를 준다는 이 시술이 있을 때마다 이를 앙 다물고 고통을 잠시 견뎌야 한다. 예외 없이 피멍이 드는 데 그러고 나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간다. 핫팩을 어깨에 붙이고 있을 때가 그나마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참 주인 잘못 만나 어깨가 고생을 하고 있다.
"침대도 덥혀 드릴까요?" 하는 물리치료사의 사려깊은 친절한 말 한 마디에 얼른 "예"하고 대답을 했다. 환절기 탓인지 어깨를 내놓고 핫팩을 두르고 있으면 나머지 벗은 한쪽 어깨는 차가운 실내 공기에 노출되어서인지 시리다. 오늘은 어디서 들어온 모기 한 마리가 있었는지, 기어이 찜질 도구에 감싸고 있지 않은 한쪽 어깨 주위를 맴돌다가 왼쪽 손과 팔에 흔적을 남겼다. 치료하는 팔이 마음대로 쭉 뻗지 못하는 상황이니 '왱 왱' 하고 눈 앞에 날아다니는 모기 한 마리를 잡지도 못하고 속을 태웠다. 시원하게 손등을 긁고 싶은데 오른쪽 어깨 치료로 마음대로 돌아 눕지도 못하겠고 벌떡 일어나서 모기를 잡아 버리고 싶은 충동에 은근히 화가 났다.
그때 마침 핫팩이 뜨거워 벨을 눌렀더니 물리치료사가 다시 나타나서 모기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도 했다. "나 잡아봐라!"며 그 순간 모기는 다시 비행을 시작했고 그녀가 손바닥으로 모기와 사투를 벌이다가 얼결에 손안에 모기를 잡는 듯했으나 죽이지는 못했나 보다. '이대로 가 버리는가 보다' 하고 다소 실망한 내 앞에 그녀는 파리채를 들고 나타나더니 그 모기를 잡아서 죽이는 쾌거를 거두었다. 환자를 위한 그녀의 책임감에 고개를 숙이면서 남은 전기치료는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치료를 마치고 처방전을 들고 옆 약국으로 갔다. 여기도 어르신 두 분이 약국에서 일하신다. 한 번은 약국에 아무도 안 보이시기에 둘러보니 옆 칸막이 틈으로 연세가 있는 약사분이 나왔다. 식사를 하고 계셨던 모양. 자연스럽게 칸막이로 보이는 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던 분에게 시선이 갔는데 비슷한 연배였다. 아마 친구가 놀러 오셨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두 분이 동업자이신가 보다. 친구가 아니고... 아니 뭐 친구일수도 있다. 두 분이 다 하얀 가운을 착용하고 계신 것을 보니.
이 병원이 잘 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다소 외딴곳에 있는 약국이라 약사가 2명 일리는 없다고 생각했나 보다. 아니면 두 분의 어르신이 약사 일리 없다고 생각했든지... 참 나는 무슨 편견인가? 방금 나온 병원 의사도 그분들보다 그렇게 많이 젊은 분이 아니지 않나? 경험도 많고 잘 치료하는 분이라고 소개도 받았지만 거기선 전문성으로 보이던 경력을 여기선 왜 다르게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사회 전반이 다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데 말이다.
병원을 총총히 나와 걸음을 재촉하며 동네 마트에 들렀다. 눈에 들어온 롯데리아에 들러 딸과 나를 위한 점심 메뉴로 햄버거 2개를 샀다. 그동안 못 봤던 무인판매대가 서 있기에 당연히 이제 주문은 거기서 해야 되나 보다 하고 터치해가며 주문하고 카드를 넣어 계산했다. '직원을 불러 물어보는 일은 말아야지'하고 내심 긴장해가면서 주문에 성공했는데 알고 보니 그중 가성비가 좋다고 생각한 버거 하나는 베지테리언을 위한 메뉴란다. '미러클 버거'라는 이름을 폭풍 검색한 후에 후기가 별로여서 실망했다. 아마 이건 내가 먹어야 할 터. 고기 패티가 아니어서 젊은 블로거들이 그랬거니 나에겐 저칼로리 콩버거가 나쁘지 않을 거라고 위로해가며 롯데리아를 나섰다.
길을 건너면 다시 먹자골목 상가와 자주 가는 마트가 있다. 채소와 고기, 생선을 두루 갖추고 있으면서 요즘 세일 광고 전단지가 날아오는 곳이다. 쇠고기 국거리, 돼지고기 목살, 장조림용 돼지고기 등 입맛 없어 하는 딸의 밥상에 올릴 만한 것들을 주섬주섬 챙겨서 장바구니에 넣고 나니 2,3천 원만 더 구입하면 6만원 구입시 증정하는 달걀 한 판을 덤으로 가져갈 수 있다고 주인아주머니가 홍보를 한다. 집에 달걀 사 둔지 며칠 안 되었는데 공짜 욕심에 단감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5600원! 이러면 초과인데.. 마케팅의 승리인지 나의 쇼핑전략의 승리인지는 모르겠다.
주말에 오는 남편이 단감을 맛있게 먹어주면 됐지 뭐. 그런 생각으로 고기를 제외한 나머지 장본 품목은 박스에 넣어 배달을 부탁했다. 3만 원 이상이면 무료배달까지 해 주는 고마운 마트이다. 집 주소를 물어보더니 배달을 해 주겠다고 한다. 그 순간 왼쪽 손으로 오늘 장 본 걸 다 들고 갈 걱정에 조금 시무룩해져 있던 나는 기분이 한껏 좋아져서 신선도가 걱정되는 고기만 따로 챙겨 친환경 방수천 바구니에 넣고 가게를 나섰다.
"그래! 역시 장보기는 오프라인이지!"
덤도 주고 눈요기거리도 있을 뿐 아니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산 것만큼 개운한 장보기가 없다. 가게를 나오자마자 분식점 아주머니가 도마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를 썰고 있다. 딸아이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간은 제외하고 1인분만 싸 달라고 해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먹을거리가 많아지니 점점 즐거워졌다. "일부 제한된 강좌가 시작될 예정입니다"라고 맞은편 건물에 플래카드가 보인다. 뭔가 상가에 활기가 생기는 느낌이다. 문이 열린 가게 앞에는 "배달앱으로 배달이 가능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보이고 문 열린 분식점에는 1인용 좌석 앞에 여러 명의 손님들이 각자 점심을 즐기고 있다.
이렇게 오늘 한 끼는 잘 때울 수 있겠다는 마음에 발걸음도 가볍게 집에 도착했다. "햄버거 사 왔어." 닫힌 딸 방에 노크를 했다. 잠시 후에 식탁 앞으로 온 아이는 토핑이 쏟아지려는 햄버거를 참 잘도 깨끗하게 비운다. 저녁에는 새로 산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갈빗살 스테이크를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의 미션이 대충 이렇게 마무리가 된 듯하여 이제 내가 좋아하는 독서와 글을 쓰다가 해가 질 때쯤 여유 있게 커피 한 잔쯤 마셔도 되겠다. 오래전 영문학 시간에 본 구절 하나가 떠오른다. "Such is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