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 생각해 보니 결혼한 이후 우리의 여행은 늘 중심에 아이들이 있었다. 어린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안전한 놀이공간인지를 알아보았고 청소년기에는 현장학습에 적절한 박물관과 유적지인지를 탐구했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성인이 되자, 한 번은 가족이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싶은 부모의 로망을 실현해 주더니 그다음에는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자유로운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 한다.
아니, 어느새 슬금슬금 다 큰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이 서로가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운전기사인 남편과 내가 앞좌석에 타고 졸음을 핑계 삼아 우리가 좋아하는 오래된 노래를 틀고 있노라면, 예전에는 아이들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뒤에서 따라 부르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 각자 자기 폰에 서로의 최애 곡을 담아서 이어폰을 꽂고 있다. 우리 음악이 그 아이들에게 시끄러워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맛집을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어디 가냐고 물어온다. 메뉴가 마음에 안 들면 마땅찮은 얼굴이라서 우리 부부가 즐기는 속 편하고 건강에 좋은 채식 밥상이나 생선구이정식은 뒤로 미루고 숯불고기나 양식 메뉴를 선택해야 했다.
그래서 이제는 여행은 각자 편한 사람끼리 가야 한다는 것이 요즘 내가 느끼는 진리! 여행지에서 가고 싶은 곳 다르고 즐기는 음식이 다르다면 참 그 여행은 피곤해진다. 젊음의 특권은 자유로운 의사표현인가? 나이 들어가는 부모는 배려받고 싶은 나이가 되었는데 말이다. 언제쯤이면 자식 들으로부터 배려를 받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볼 것도 없다. '아~~ 이래서 어른들과 가는 여행이 일이었지!' 하면서 지난날이 데자뷔가 되는 것이다. 기억해 보면 그 건 '의무'지 '즐거운 여행'은 아니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나 역시 가족여행을 가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 다가올 무렵이면 누구와 어디에 갈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에 빠졌다. 누굴 탓할까 싶다.
요즘 우리 부부는 둘이서 떠나는 여행을 즐긴다. 간혹 아들이나 딸과 함께 여행을 즐기는 내 또래 엄마들도 있지만 우리 집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 역시 소신이 뚜렷한 데다가 서로 불편한 여행은 가족이라 한들 별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이라는 것이 집 떠나면 고생인데 즐길거리가 다르다면 갈등과 충돌을 피할 수가 없다.
반면 내가 함께 떠나고 싶은 여행동무는 '자식들'이나 '친구'가 아니라 이제는 '남편'이 되었다. 서로 할 이야깃거리가 있고 함께 한 추억이 많으며 무엇보다 내가 멈추고 싶을 때 함께 멈추고 공감해 주는 사람은 뜻밖에 흔치 않다. 달라도 참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고 투덜거리는 내가 남편보다 더 나은 여행동무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니! 그렇게 희노애락을 나누며 동거동락한 동지애인지 오래된 연인의 속 깊은 정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이 들면 '부부'보다 좋은 벗은 없는 듯하다. 일터는 달랐지만 30년 넘은 조직생활의 애환도 함께 나누며 우리 부부의 유대는 쌓여 갔다. 그 고단함을 우리는 서로 너무 잘 안다.
지난주에 집에 온 남편은 가을 단풍이 떨어지기 전에 경주에 한 번 다녀오자고 했다. 마침 남편이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경주의 특급 호텔 숙박권이 한 장 있었다. 얼마 전에 리 모델한 이 호텔은 H회사에 다니는 남편을 둔 내 직장 동료들이 종종 이용했던 후기로 보면 내부시설과 서비스가 훌륭하다고 들었던 곳이다. 당시 울산에 거주하던 나는 굳이 가까운 곳에 살면서 고가의 호텔에 투숙할 이유가 없어서 내 돈 내고 가 본 적은 없는 곳이다.
직장을 나오고 나니 역시 '가성비'나 '무료'라는 데 급 끌리는 건 사실이다. 매일 내 손으로 세 끼 밥상을 차리는 데 이골이 났던 나는 당연 경비절감 호캉스에 눈이 번쩍 떠져서 오케이를 하고 남편을 따라나섰다. 남편은 목요일부터 휴가를 냈고 1박 2일로 금요일 밤의 숙박을 예약해 두었다. 동해안으로 간 김에 그동안 지인들부터 받은 커피 쿠폰을 사용하고 싶어서 거리두기로 미뤄둔 '스타벅스'로 행했다. 식당에서 쓰던 명부 대신에 여기선 인증을 한다고 한다. 인증이 처음이라 휴대폰을 들고 나만 혼자 부산을 떨다가 2층 전망 좋은 곳으로 갔다. 예전 같으면 실내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겠지만 코로나 덕분에 요즘은 실외를 선호하게 되었다.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달달한 크림 카스텔라와 아메리카노를 즐겼다. 올봄에 블로그에서 재능 나눔 이벤트를 하고 나서 스터디에 참여했던 이웃님이 선물한 커피 쿠폰이다. 끝나고 나서 감사하게도 이렇게 커피 쿠폰으로 마음을 전해 준 분들이 계셨다. 주고받는 마음속에 스타벅스 커피가 있었다. 봄에 받은 감사 쿠폰을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기왕이면 정자에 있는 커피숍에서 분위기를 만끽하기로 했다. 역시 오랜만에 보는 바다는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달달한 후식이 커피와 짝꿍이라는 게 실감 나는 시간이다.
커피 한 잔으로 늦가을 바다를 맘껏 보고 나서 남편의 냉장고를 채우고 우리 여행 간식이 될 먹을거리를 사러 CU편의점에 들렀다. SNS 지인으로부터 최근 교보문고의 소셜앱을 소개받았다. <보라> 앱에서 '첫 글만 남겨도'의 이벤트에 신규 보라 지엥 #소통상으로 편의점 상품권 3만 원에 당첨되어서 이 여행에 그 쿠폰을 쓰고 싶어졌다. 내 돈 주고 사기에는 뭣한 그런데 한 번쯤 먹어보고 싶은 간식과 음료를 잔뜩 샀다. 내 돈 내지 않으면 '편의점 털기'도 터는 재미가 쏠쏠했다. 뭔가 살 때마다 브레이크를 잘 거는 남편도 부담없이 자기가 원하는 간식을 덥석 집어 왔다. 캔 맥주 서너개가 포함된 건 당연하다. 몇 년째 금연을 실천한 남편에게 알콜이라도 있어야겠지.
다음 날인 목요일은 예전 나의 단골이던 미장원에 들러 뿌리 염색을 했다. 이대로는 얼굴만 나오게 될지 모르는 인증사진에서 최적의 사진을 건질 수가 없을 듯해서였다. 남편은 그동안 부근 마트에서 주차를 하고 부근을 어슬렁거리다가 나와 시간을 맞추어 주기로 했다. 귀찮아하지 않고 눈치도 안 주면서 이럴 때 늘 잘 기다려주는 남편이 고맙다. 마트 앞에는 마침 브랜드 의류 세일이 있어서 살림꾼 남편은 그동안 알뜰 쇼핑을 즐기고 있을 거다.
기대했던 대로 미용실 사장님은 여행을 가는 나를 위해서 염색 후에 드라이 서비스까지 해 주셨다. 염색을 미뤄온 보람이 있었다. 이걸로 모처럼의 여행을 위한 미모도 업그레이드! 마트 앞 세일에서 남편의 냉정한 평가로 골랐던 옷들을 내려 놓고 최소구매로 만족하기로 하고 우리는 수암시장에 들렀다. 여긴 울산 사는 동료들에게 반찬가게의 반찬이 다 먹을만하고 시장 안에 저렴하고 질좋은 정육식당이 많아서 한우구이로 유명하다고 소개받았던 곳이다. 그 근처에 살면서 꽤 자주 이용했었다. 시장 안쪽에 들어가면 들깨칼국수를 잘하는 식당이 있다. 가격과 맛, 퀄리티에 만족해서 자주 먹으러 가곤 했던 식당인데 이 근처에 와서 그냥 놓치기는 아까운 집! 남편은 들깨를 워낙 좋아해서 원샷으로 다 비웠고 염분이 미칠 영향을 고려하는 나는 국물을 적당히 먹고 식당을 나왔다.
점심을 먹었지만 수암시장은 그냥 나가기엔 아쉬운 간식코너가 한 군데 더 있다. 바로 '찹쌀 꽈배기'와 '팥 도너스'를 파는 곳이다. 좌판처럼 자그마한 부스를 운영하는 곳인데 맛은 웬만한 유명 제과점도 견줄 게 못된다. 무엇보다 밀가루 반죽과 찹쌀 반죽의 차이겠지만 그 쫀득쫀득한 반죽의 맛부터가 남다르다. 먹고 나면 뒤탈이 없다. 더부룩하지도 않고 속이 편하다. 모든 앙코 빵에서 우리 부부가 같이 선호하는 건 팥이기 때문에 알찬 팥의 조화도 끝내준다. 칼로리와 당 섭취가 걱정되어 딱 3,000원어치만 샀다.
팥 도넛 각각 1개, 꽈배기 1개, 깨찰빵 1개. 그런데 이 공동 1개가 가끔 문제가 된다. 역시 각각 1개씩 샀어야 했나? 깨찰빵은 차로 이동 중에 나누어 먹었는데, 남은 꽈배기를 호텔 숙소에서 남편이 혼자 다 먹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나는 조금 서운했었다. 그래도 뭐 어쩌랴? 웬만하면 뭐든 혼자 다 먹는 법이 없는 남편이 그랬을 때는 너무 맛있어서 참을 수 없었다는 거다. 종일 운전했는데 그 정도는 남겨 주는게 마땅했다. 그날 밤 잠 들 무렵 나는 먹어보지 못한 꽈배기에 미련이 생겨서 한 만 원어치 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경주 라한셀렉트
경주 라한셀렉트에 도착하고 보니 4시쯤. 집콕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국내여행에 몰린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대기줄이 긴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사람들이 해외로 못 가고 국내 여행지로 몰린다더니 사실인 듯~~ 체크인은 남편에게 맡기고 폰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남편이 와서 혹시나 하고 호수전망의 객실을 신청했더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다고 했다. "와우! 보문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객실이라니! 이게 웬 횡재야!" 잊어버리지 않고 호수전망을 기억한 남편을 칭찬해 주고 싶어 졌다.
그리고 올라간 객실에서 커튼을 젖힌 순간 온통 물색으로 가득한 세상이 펼쳐졌다. 호수 전망이 이 정도였나?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문을 열고 뛰쳐나가다시피 했다. 나지막한 언덕 같은 산이 여러 개 이어지고 그 너머로 연붉은 색채가 멀리서 나타나더니 일몰이 시작되었다.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이 서서히 수면 위로 비치는 풍경이란! 둘 다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카메라에 일몰을 담았다. 어설프지만 짧은 동영상도 찍어 두었다. 객실에서 이 걸 본 것만으로도 이 호텔은 값을 다 했다.
1박 2일이라 단출한 여행가방을 안착시키고 호텔의 객실을 여기저기 구경한 다음 실내에 비치된 목욕가운 2개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깔끔하게 세팅된 침대 머리 위 미용도구, 찻잔과 티백이며 샤워부스와 세면대가 독립된 객실이 마음에 쏙 들었다. 냉장고에는 생수가 4병이나 들어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편은 주섬주섬 우리 외투를 챙겨서 옷걸이에 걸어 두고 짐 정리도 끝냈다.
경주는 한우식당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 부근에 꽤 유명한 정육식당이 있다고 직원들에게 소개받았다면서 남편이 앞장선 한우 정육식당에서 등심구이로 배부르게 저녁을 먹었다. '한 번 가져 간 고기는 실온에서 품질을 보장할 수 없어 환불이 안 된다'는 친절한 안내 멘트가 있었지만 역시 한우구이를 언제 먹어볼까나 하면서 나는 '하나 더'를 주장했다. "두 분이 드시기에는 많습니다"는 직원의 만류로 그만두었는데 참 현명한 분이셨다. 된장찌개로 배를 채우고 나니 금방 고기사랑의 열정이 식었다. 열심히 구워주는 남편이 고마웠지만 역시 고기를 마음 내키는 대로 먹고 소화도 잘 시킬 나이는 아니다. 뭐든 절제가 필요한 나이! 과욕을 부르면 중년에는 꼭 급체할 일이 생긴다.
식당을 나와서 야경이 유명하다는 '안압지'에 들렀다. 조금씩 한기가 느껴지는 밤공기에도 차는 밀리고 사람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경주에는 수려한 고목들이 많다는 게 여기 오면 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그 고목들의 세밀한 잔 가지가 서로 얽히고설켜서 수면에 투영되는데 규모와 스케일이 압도적이다. 물이 너무 맑으면 이렇게 투영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건 '자연'이라기보다 '과학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입장료를 안 받을 수 없을 듯한 곳곳에 장치된 수많은 화려한 조명이 열일을 하는 것이다. 낮에 보는 안압지는 안 가 보는 게 나을 듯하다. 밤에 눈부시게 빛나는 신비한 모습이 꼭 눈부신 화장을 지우고 난 여자의 맨얼굴처럼 되는 게 아닐까 살짝 걱정이 된다.
사진 강의에서 배운 알량한 지식을 남편과 나누면서 사진을 마구 찍었다. 배터리가 소모되어 더 이상 찍을 수 없었지만 나보다 남편이 사진 촬영에 열을 올려서 생각보다 오래 머무르게 되었다. 어느 쪽이냐 하면 나는 인공보다는 자연에 더 마음에 쏠리는 사람이라... 조명의 힘을 안 순간부터는 다 비슷비슷해 보이더라는 것. 어쨋거나 야경 하나는 굿이다. 이 안압지 야경을 보러 경주에 들른다는 직장 동료들의 이야기도 들었지만 막상 주변에 살 때는 교통 체증을 우려해서 못 가 보던 곳이었는데 야간 데이트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할 만하다. 사진 촬영하는 사람들을 피해서 이따금 걸음을 멈추어야 하는 불편이 있을 만큼 사진 촬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촬영에 열을 올리던 남편이 나에게 인증사진을 찍어준답시고 잠깐 마스크를 벗고 나무 앞 조명 뒤로 가 보라고 했다. 본인이 봤을 때는 좋은 앵글이었던 모양이다. 한사코 이건 아니라고 했건만. 노란 조명 바로 뒤에 사람 얼굴이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것도 야간에! <구미 호전>을 찍을 게 아니라면 말이다. 굳이 서 보라고 하더니 "헉! 이건 아니다!"면서 팔을 휘두르고 얼른 가자고 했다. 참 나! 그 걸 해 봐야 알다니! 한 컷도 안 남긴 거 보니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음 날 아침 객실에서 일어나 다시 호수전망과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역시나 봐도 봐도 안 질리는 이 호수는 아침 모습은 또 저녁과 다른 감동이 있었다. 해 뜨는 방향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침 상쾌한 공기를 가르고 저 멀리 보이는 빌딩과 회색빛 구름 사이로 어렴풋한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우리 객실이 있던 10층 아래로 보이는 단풍과 산 언저리의 가을 풍경까지 한눈에 들어와서 마음은 벌써 산책길로 향하고 있었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서둘러 이 호텔이 자랑하는 산책코스를 걸었는데, 호수를 끼고 산책로가 잘 닦여져 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호반의 풍경에 빠졌다. 조경에 꽤 신경을 쓴 듯 넉넉한 부지에 가을 갬성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감성 사진 촬영에 열중하느라고 시간이 금방 지난 듯하다.
노랗고 붉은색 단풍잎과 단풍잎이 하나둘씩 떨어져 내리는 것 하며, 호수 옆으로 가지가 앙상한 오래된 나무들이 가을 하늘과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말할 수 없이 멋들어졌다. 산책길 양옆으로 단풍나무가 늘어서 있었는데 우리가 사진을 찍겠다고 그 풍경 안에 들어서면 그림을 훼손할 것 같아 인증사진은 그만 두었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렇게 고운 가을을 본 적이 얼마나 되었는지? 예쁜 단풍잎을 주워서 아이 손에 집어 주고, 아이들의 귀여운 재롱을 담느라고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눌러대었던 그 시절, 정작 깊어가는 가을은 어떤 모습인지 우리는 제대로 쳐다볼 틈도 없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가을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나가고 있었나 보다. 이제야 천천히 떨어지는 단풍잎에 매료되어 체크아웃 시간도 잊어버리고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다니!
여행이란 '누구'와 '어디'를 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거기에 '시간'이라는 것이 보는 사람의 초점을 달라지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보는 것이 달라진다. 시간의 흐름은 깊이를 더해준다. 먹고살 만하면 마음에 여유가 저절로 생기는 줄 알고 바쁘게 살았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뭐든 다 잘 될 것 같았다. 하얀 벽의 공간과 자동차 안에 갇혀서 계절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 내 시계만 빨리 지나갔구나 싶어 삶이 슬퍼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모든 건 제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나의 눈길이 향하고 있는 곳이 달랐을 뿐!
'여행'은 '쉼'을 통해 나에게 질문을 하는 시간을 주어서 좋다. 함께 해서 여행이 즐거운 사람이 옆에 있다면 아직은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오래 된 결혼은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하면서 가끔 충전해 주어야 한다. 어려운 시간만을 오랫동안 공유하는 동안 우리는 배터리가 진작 다 닳아 버렸는지도 모르고 서로가 변했다고 원망만 하면서 살고 있다. 휴대폰 배터리 충전은 기를 쓰고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