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느 Nov 19. 2020

가사전담의 약속 그 이후

-가사분담의 전쟁


나는 20대의 막바지에 결혼을 했다. 결혼을 늦게 하게 된 이유는 마땅한 사람이 없기도 했지만 결혼이라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직장에 다니는 분들이 대단한 존재들인 것 같았다. 어떻게 저렇게 많은 일을 매일매일 해 낼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였다. 취업하고 나서 가까이에서 본 워킹맘들은 거의 가사와 업무에 지쳐서 늘 피곤하고 힘들어 보였다.


20대 말을 보냈던 일터에서는 여자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점심시간에는 도시락을 싸 와서 모두 둘러앉아 점심을 먹곤 했다. 다들 남편의 도시락은 신경을 쓰는 눈치였지만 본인 도시락은 대충 식탁에서 주섬주섬 싸 온 흔적이 역력했다. 유행이 훨씬 지난 옷을 대충 걸치고 꼬불거리는 파마머리를 다 말리지도 못한 채 질끈 머리끈으로 대충 묶어서 출근하는 것이 흔한 기혼여성들의 모습이었다. 먹는 것, 입는 것 모두 우선순위에서 ‘나’를 제일 뒤로 둔 그녀들의 삶이 고달파 보여서 더 결혼이라는 것이 엄두가 안 났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남편이 잘 ‘도와준다 ‘고 자랑(?)하는 분도 있고 김장할 때마다 무채는 본인이 썰어 준다면서 자랑하던 중년의 남자동료도 있었다. 모두들 ’잘 도와준다 ‘ 아니면 ’잘 안 도와준다 ‘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함께 맞일을 하기를 원하면서 왜 집안일은 ‘우리 일’이 아니고 ‘내 일은 아닌데 도와주는 일’이냐는 것이었다. 분명한 것은 이 집 저 집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결국 거의 요리와 육아는 여자가 하는 분위기였고 가끔 남편이 청소를 조금 도와주는 정도였던 듯하다. 대학을 다닐 무렵 남학생들과 동아리 활동을 함께 하며 서로 공감을 나누었던  여성운동이며 성평등 의식은 다 캠퍼스에서만 통하던 이야기였는지 막상 사회생활을 시작해 보니 여전히 남녀는 불평등한 존재였다.




열정적인 사랑으로 결혼을 이루는 행운이 없었던 나는 적령기를 앞두고 결혼상대를 찾을 무렵 당연히 '가사분담'이 결혼의 이슈가 되었다. 결혼을 전제로 소개로 만난 남자들에게 먼저 ‘가사분담’에 대한 이야기를 툭 던져 보았다. 처음부터 그런 의식이 없다면 진지하게 만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대학을 다녔을 그들은 대개 이런 대답을 했다. “결혼을 하면 일하는 아내와 가사분담은 어느 정도 생각하시나요?” 하고 물어보면 남자들은 “아 예~~ 뭐 서로 같이 해야지요.” 아니면 “굳이 뭐 나눌 필요 있나요? 알아서 하면 되지.” 이런 어정쩡한 대답을 하곤 했다. 사람을 처음 알게 될 때는 그래도 서로 호감을 주려고 애쓰기 마련인데 이런 대답에 기대어 시작하기에는 결혼은 너무 두려운 모험인 듯했다. 한 마디로 마음도 안 가는데 몸도 움직여지지 않는 고생길이 훤했다.


그러다가 남편을 소개받았다. 내가 여느 때처럼 ‘가사분담’에 대한 그의 의식을 체크해 보니 남편은 오래 생각하지도 않고 단숨에 “제가 전담하지요. 뭐”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힘 좀 쓸 것 같은 건장한 체격에 선량해 보이는 인상이라서 대뜸 나는 그를  ‘착한 남자’로 이해를 했다. 아니면 소위 그가 나에게 콩까지가 씌었거나. 내가 남편의 적극적인 대시에 결혼을 승낙하게 된 것도 그 ‘가사전담’의 유혹이 컸다. 그는 이슈에 대한 토론도 싫어했고 자기 의견을 내놓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다 해 줄게. 그까짓 거" 이렇게 말하곤 했는데 많이 배우고도 실행은 없는 가식적인 지식인보다는 남편의 담백한 진심이 더 마음에 들었다. 성평등이니 옳고 그르고 뭐 그런 걸 따지는 것보다 ‘네가 좋아서 다 해 준다’ 면 그것도 더 나쁠 것 없겠다 싶었던 것이다. 나아가 전담을 하겠다 했으니 좀 깍이더라도 반은 해 주겠거니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결혼 이후 그는 얼마나 공약을 이행했을까?

서로 과년한 나이인지라 남편을 오래 알아볼 만한 시간도 없이 양쪽 집에서 결혼을 서둘러서 우리는 데이트한 지 두어 달 만에 서로 호감만 가진 채 ‘알 수 없는 결혼이라는 모험’을 시작하게 되었다. 둘만의 신혼이 시작되었을 때에야 나는 남편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우리가 반응 속도에 현저히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가령 내가 집안을 매일 청소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남편은 더러울 때만 하면 되는 게 청소였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설거지를 하고 휴식을 해야 개운한 나와는 달리, 남편은 던져두었다가 충분히 쉬고 기운 날 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위생에 대한 기준도 달랐기에 성격 급한 나는 참지 못하고 종종거리며 청소와 빨래 등 가사를 도맡아 하게 되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안 하는 게 아니라 지금 할 필요를 못 느낀다는 것이다. '놀고 쉬고 그다음은 천천히 생각하자는 것' 대체 그 때는 언제냐고?


늦게 퇴근하는 남편은 당연 저녁을 지을 일이 없었고, 나도 조금씩 결혼생활의 실체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퇴근하고 나면 쉬러 집에 왔고, 나는 제2의 직장으로 출근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남편에게 집안일을 하라고 얘기를 꺼내면 “밥하고 빨래하는 게 싫어서 결혼했다” 는 둥 “잡아놓은 물고기에 왜 밥을 주냐?”는 말도 안 되는 말을 웃으며 내뱉었다. 남편은 나를 골려먹는 중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로선 분통 터지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남편의 ‘가사전담’ 얘기는 나 혼자만 들은 얘기고 어디에 공증을 해 놓은 것도 아니어서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는 것이 기막힐 노릇이었다. 그제야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어머니에게도 그 얘기를 일러바쳤지만 허허 웃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무를 수도 없고 이 덩치 큰 남자를 힘으로 몰아붙일 일도 아니고 이 일을 어떻게 얼굴 붉히지 않고 해결할 수 없을까? 하고 그때부터 나는 고심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의식을 변화시켜야 하나? 내가 양성평등에 관한 책을 함께 읽자고 한들 읽어줄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다가 생각난 것이 게임을 좋아하는 남편을 이용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양가 식구들과 친구 접대용으로 소장해 두었던 카드와 화투가 생각났다. 카드는 잘 모르지만 ‘고스톱‘쯤은 어떻게 해 볼 자신이 있었다. 명절에 친척들이 화투를 할 때 어깨너머로 많이 본 적도 있고 엄마 눈을 피해 우리 삼 남매는 겨울밤 밤늦게까지 화투를 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주말에 대청소를 하고 싶었던 내가 먼저 제안을 했다. 지는 사람이 그쪽을 맡아서 청소를 하기로... 1번 큰 방, 2번 거실, 3번 작은 방, 4번 화장실, 5번 부엌 이렇게 나누어 놓고 차례로 지는 사람이 그 부분의 청소를 하기로 한 것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남편은 청소는 하기 싫은데 내 잔소리도 듣기 싫었던 차에 게임에 이겨 당당하게 청소를 모면하고 TV 앞에서 데굴거리기로 했는지 선뜻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혹시 ‘타짜’ 아냐하는 생각에 겁이 났지만 어차피 혼자 청소를 덮어쓰느니 한 번이라도 이기면 나는 좋았던 것이다.




아침 상을 물리고 바로 우리는 화투판을 깔았다. 어떻게든 남편에게 청소를 맡기려는 욕심에 나는 초집중해서 남편의 손에 든 화투장을 꿰뚫어 볼 듯 노려 보면서 수를 읽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남편이 피를 모으기 시작하면 그 피를 나에게 가져오느라고 애쓰고 남편이 광을 모으면 이번엔 광으로 점수가 날까 조마조마해서 손에 땀이 났다. 그러다 나의 허를 찌르고 어느새 몰래 고돌이를 모아놓은 음흉함이란~~ 3명은 있어야 재미가 있는데 뭐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남편은 뭐가 좋은지 웃어대면서 나를 쥐락펴락하는 듯한데 그렇게 이겼다 졌다를 반복하면서 나는 마감시간을 정해 놓지 않은 것을 알았다. 아니 마감이 있었더라도 내가 계속 ‘한 번만 더‘를 반복했을 것. 내가 지고 있었던 것이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또 게임을 계속했고 저녁은 아예 거르고 지나갔다. 예상대로 남편은 나보다는 고수였다. 화투를 하면서 배운다고 점점 스킬을 배우면서 지지 않겠다고 내가 계속 “Go!”를 반복했기 때문에 막판에는 나도 청소구역을 좀 더 확보할 수 있었다. 종이 한 장에 점수표를 만들었는데 계속 청소 담당자의 이름이 바뀌고 지워지다가 나중엔 너덜너덜해졌다. 더는 허리가 아파서 판을 계속하기가 힘들 정도로 내가 진을 다 뺐을 때였다. 서로 비슷하게 청소구역이 나누어졌을 무렵 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해가 지고 별이 떠 있었다. 바깥이 온통 깜깜했다. 그렇게 일요일이 다 지나갔다. 하루가 허무했다. 청소는커녕 잘 시간이었다. 만일 돈을 걸고 화투를 쳤다면 벌써 나는 잃은 돈이 얼마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것이다.


남편은 피곤하니 그만 자야겠다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화투 빚은 지나고 나면 빚도 아니라는데 내일 이 청소의 채무를 이행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이제 이 가사분담의 목표를 어떻게 달성해야 하나 나도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게임은 아니었다. 남편은 게임을 즐기는 사람인 듯했다. 결국 ‘앙앙거리는’ 나를 데리고 하루 잘 놀았다는 표정 아닌가! 화가 난 나는 그 후 남편의 전화번호에 ‘너구리 남편’이라고 저장해 두었다. 어딘가에 화풀이는 해야겠기에...


그리고 좀 더 똑똑하게 결혼생활에 대처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드디어 가사분담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래된 부부의 늦가을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