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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느 Oct 30. 2020

고등어조림에 무가 없다!

왜 하필 조림이었을까?



남편이 모처럼 집에 오는 날이다. 

퇴근하자마자 회사 버스를 타고 바로 출발하기에 그는 저녁을 먹을 틈이 없다. 그리고 다시 전철로 갈아타고 서너 개의 역을 거쳐서 내리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집까지 걸어올 것이다.  처음엔 그 시간에 밥이 먹힐까 해서 저녁밥상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더니, 남은 반찬에 대충 한 그릇 긁어먹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게다가 반찬투정을 일도 안 한다. 


잠바 차림에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마스크를 푹 내려쓰고서 배고픔을 참고 여기까지 네댓 시간을 왔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매주 금요일 저녁은 남편을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 뭐 특별히 대단할 건 없다. 남편은 나물무침, 국이나 찌개에 생선구이나 돼지고기 두루치기가 있으면 된다. 


오늘은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고등어조림을 하면 어떨까 하고 장을 보러 갔다. 막상 농협 하나로 마트에 가 보니 싱싱한 과일과 채소, 육류와 생선코너에 눈길이 갔다. 집에 있는 식재료를 떠올리면서 사과, 토마토, 고구마, 닭다리, 고등어와 쌀을 사서 일부는 배달을 부탁하고 육류와 생선만 천가방에 넣어 한 손에 끼고 오후의 햇살을 받으면서 집으로 왔다. 


내 눈으로 신선도를 보고 샀으니 맛있는 고등어조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차서 말이다. 고등어는 비린내가 날 수 있어서 무엇보다 신선해야 한다. 한동안 온라인 마켓 배달로 식재료를 준비했기 때문에 생물 고등어는 구입해 본 지 오래되었다. 게다가 같이 먹을 사람이 없고. 요즘 얘들은 육류만 좋아한다. 비린내 난다고 언제 주어도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뿔싸!! 신나게 집에 와서 가방을 열어 보니 꼭 사야 하는 고등어조림의 부재료가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무가 없었다. 냉장고에 남은 무는 무조림을 해서 이미 다 먹어치운 후였다. 아~~ 고등어조림엔 고등어 밑에 무를 썰어서 깔아주어야 제격인데. 고등어보다 그 푹 익은 무를 우리 둘 다 엄청 좋아한다. 그렇다고 다시 버스 정거장 2개 거리를 도로 가기도 그렇고, 핸드폰으로 인플루언서의 고등어조림을 폭풍 검색했다. 고등어에 무 말고 또 넣어서 맛있는 건 없을까 하고... 


마침 무는 기본이었지만 호박을 넣어도 맛있다고 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지!' 우거지가 있으면 좋은데 그것도 없으니 무 대신 호박과 감자를 넣어보자고 절충을 했다. 남편은 갈치조림에 무보다는 감자를 넣은 걸 더 좋아했으니까! 공교롭게도 감자를 넣으려고 뒤져 보니 며칠 전에 된장국에 쓰고 남은 감자 반 개가 고작이다. 내가 주문한 감자 한 상자는 지금 배송 중이었다. 


아이고~~ 무 대신에 감자라도 했더니. 이 힘없는 호박하고 감자 쪼가리를 깔고 고등어조림을 만들어야 해야 돼? 그래도 할 수 없다 싶었다. 이거 가지고라도 잘해 봐야지 뭐 하면서 비린내를 제거하려고 쌀뜨물에 된장 한 술을 풀어 고등어를 씻어 담가 두었다. 고춧가루에 생강, 간장, 물엿, 설탕, 마늘, 맛술을 넣어 양념장을 만들었다. 양념장은 오래 하루 정도 숙성해 두면 좋다는데 그렇게 계획적으로 살아보질 못해서~~ 30분 정도 양념을 숙성시켜 주었다. 


그리고 싱싱한 고등어를 세 토막으로 나누어 총 여섯 토막의 고등어를 호박과 감자조각 위에 펴서 빨간 양념을 곱게 펴서 발라주었다. 고등어가 끓으면 양념 장위에 양파를 올리고 마지막에 파 송송 청고추와 홍고추를 올려주면 좋다. 멸치 다시마 육수포를 한 장 넣어 고등어조림의 국물을 육수로 만들어주고 고등어를 한참 졸이고 있는데 갑자기 언뜻 스치는 생각이 있다. 바로 푹 익어버린 총각 무!


무가 없지 않았구나? 왜 그 걸 생각 못 했지. 얼른 너무 익어서 인기가 없는 총각 무와 열무를 꺼내어 손가락 마디만큼 썰어서 끓고 있는 고등어조림의 위에 올려 주었다. 익은 깍두기나 총각무를 찌개에 넣어서 끓으면 의외로 꽤 맛이 있다. 좀 시큼해도 김치와 육수에 푹 익으면 밥도둑도 된다. 왜 이렇게 늦게 생각났나? 꿀밤이라도 주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이제라도 생각난 게 어디 야하고 위로를 삼기로 했다. 익은 무시래기가 있었는데 모르고 있었다니~~ 


새로 산 바닥 두꺼운 웍에서 불을 줄이고 고등어조림이 끓고 있는 모습을 내려다보니 옛날 생각이 문득 난다. 기억하건대 우리 집에 냉장고가 들어온 건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던가 보다. 생선을 먹을 수 있는 날은 읍내에 장이 서는 날이었다. 우리 집이 읍에 있고 그나마 시장이 멀지 않아서, 장날이 되면 가끔 엄마는 고등어나 갈치를 한 마리 사 왔던 것 같다. 엄마와 같이 생선가게를 지나면 사 달라는 말도 못 하고 자꾸 눈길이 났다. 그러면 어김없이 갈치나 고등어 한 마리가 그 날 저녁 밥상에 올랐다. 


그 고등어조림이 익어가는 냄새가 집안에 가득 차면 고등어와 시래기와 무조림 먹을 생각에 행복했다. 언제 해도 생선조림이 맛없던 적이 없었다. 또 생선조림이 좋았던 것은 같은 양으로도 푸짐하다는 것. 가끔 연탄불 위에 갈치나 고등어자반을 구울 때도 있었지만 3남매에 할머니를 모신 집에서 1인당 한 토막이 나올 리 있나? 당연히 셋이서 서로 많이 먹느라고 애쓸 수밖에...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신 날 엄마가 따로 남겨 둔 생선구이 한 토막은 또 왜 그렇게 맛있어 보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제 이까짓 고등어쯤이야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어린 시절 고등어조림은 내 머릿속에서 늘 맛있는 반찬이었다. 매일같이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고등어조림 따위 크게 맛있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얼마 전 휴가를 나온 아들은 뭐 먹고 싶냐는 내 말에 '쇠고기 안심'이라고 대답해서 적지 않이 놀랐다. 


까다로운 우리 아이들은 수입육은 안 되고 쇠고기 안심은 당연 국내산인데 1인분에 3,4만 원 할 텐데 그 걸 누구 입에 붙이냐 싶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한 팩만 주문을 했었다. 아직 덥석 쇠고기 안심을 2팩씩 살 용기가 안 나는 것이다. 돼지고기 목삼겹살이면 그 돈에 온 식구가 먹을 텐데 뭐 그런 생각을 나 혼자 해 보는 것이다. 


안심을 굽고 보니 건넌방 딸아이가 생각났고 음식 끝에 마음 상한다고 모처럼 온 아들만 먹일 수도 없고... 얼른 머리를 돌려 보니 연어스테이크용 고기를 세일할 때 사 둔 것이 기억났다. 마치 미리 계획한 것처럼 연어 한 토막, 안심 스테이크 한 토막 구워서 두 아이를 먹였다. 세트로 따라온 타르타르 소스을 올린 연어도 작전 성공이었다. 참 잘 먹더라! 어찌나 맛있게 먹느라고 "엄마는 왜 안 먹어?"라는 말도 안 하더라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고등어조림이 별로 인기가 없다. 나나 우리 남편에겐 가끔 생각나는 그리운 요리지만... 고등어조림에 무가 빠지면 아찔할 정도로 무 넣은 고등어조림은 날씨가 추우면 생각나는 고마운 음식이다. 


그 시절 우리는 고등어조림에서 무를 골라 먹으면서 모자란 고등어에 대한 아쉬움을 풀었다. "시장 갈 때 고등어 좀 더 사 오면 안 돼?" 나는 왜 그 말을 그 때 엄마에게 하지 못했을까? 자식들이 그렇게 잘 먹는 고등어를 왜 많이 사 오고 싶지 않았을까? 이제야 생각해 보니 우리 엄마들은 부족한 생선 대신에 뭐라도 더 먹이려고 육수에 무나 시래기를 넣지 않았을까? 


그런 마음으로 늦은 밤 잠도 안 자고 아버지 밥상에 오른 생선구이를 자꾸 쳐다보는 딸아이를 위해 아버지는 항상 생선구이의 반만 먹고 남기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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