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올 1월부터 주말부부가 되었다. 남편을 따라 새로운 직장 근처로 이주한 지 5년! 이주하면서 내 직장도 따라 옮기는 거사를 감행하고 낯선 곳에서 힘든 시절을 함께 견디어 내었다. 3대를 빌어도 힘들다는 중년의 호사를 누리라는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5년 전에 살던 집을 전세로 내놓고 작은 아이를 데리고 지방으로 이주했던 터였다. 그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다른 도시로 떠나게 되자, 나는 더는 집과 옛 친구에 대한 향수를 이기지 못하고 혼자 먼저 정든 내 집을 찾아서 예전에 살았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던 것이다.
남편과 나는 그동안 서로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었다. 둘 다 취업과 동시에 고향을 떠나 수도권에 산지 꽤 오래 되었고 가까운 고향 친구들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에 직장의 동료를 제외하고는 서로가 절친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와 나는 동향에 우연히도 같은 대학을 졸업했던 터여서 추억을 공유할 거리도 제법 있었다. 가까운 곳에 친정과 시댁은 물론이고 친척도 없었던 터여서, 임산부 시절 나의 입덧 뒷감당도 갑자기 아픈 아이의 뒷바라지도 우리 둘이서 꿋꿋하게 감당해 나가야 했다. 남편도 장남, 나도 장녀라 넉넉하지 않은 집에 손 벌리는 것도 싫었고 타향에서 둘 다 맞일을 하고 저녁에 돌아오면 이웃교류를 확대할 만한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워킹맘으로 사는 동안 남편은 늘 가족이 1번이었다. 나에게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남편은 아이들 옆에 가 있어 주었다.
부득이한 출장이 아니면 늘 우리는 여행을 가든 친척집에 가든 함께였지만 남편이 퇴직할 때까지는 이제 어쩔수 없이 주말부부를 감당해야 했다. 그동안은 쇼핑과 여가시간, 문화생활도 늘 남편과 함께 했다. 남편이 근무하는 지역은 편도로 4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라서 남편이 매주 집으로 오기는 힘들 거라고 이미 예상했던 터였다. 노후를 여기서 보내기로 합의했기에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하고 살림을 처분하고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의 방을 다시 꾸미는 등 처음에는 나 역시 무척 바쁜 나날을 보냈다. 남편과의 주말부부를 아쉬워할 틈도 없었다. 남편은 회사에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금요일마다 집에 오기로 했다. 월 1회가 될지 주 1회가 될지 알 수 없었지만 나도 아이들이 다 자란 터라 홀로서기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분리수거와 설거지, 청소까지 곧잘 도와주고 말 친구가 되어 주던 남편의 자리는 생각보다 꽤 컸다.
그런데 이제 좀 살림이 정리되기 시작했을 때 코로나 위기상황이 시작되어 본의 아니게 감염을 우려하여 남편이 수도권으로 올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1개월 이상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고 지내게 된 것이다. 옛 지인들과도 서로가 조심스러워 만남이 쉽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좀 심심하다가 나중에는 내게도 코로나 블루가 왔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궁금하고 답답하고 그렇게 우울한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수도권의 경계가 완화되고 나서야 남편은 주말마다 집에 들러 주었고 나도 한결 안정이 되었다. 그렇게 가끔 보는 사이가 되니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늘 함께 있을 때에는 함께 방송채널을 공유하고 함께 음식 메뉴를 공유하게 된다. 그런데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서로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을 선택하게 되었다.
전업주부로 돌아가 더 시간이 많아지게 되니 나는 정말 전부터 하고 싶었던 소소한 강의와 취미생활 및 독서에 빠져서 지냈고 SNS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댓글과 이웃 교류로 남편의 부재를 느낄 틈 없이 바쁘게 지냈다. 딸아이를 위한 밥상을 차릴 필요가 없을 때는 혼자 먹는 밥이라 메뉴와 가짓수를 줄이게 되었고 요리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 부부가 함께 즐기던 TV 프로그램은 꼭 본방사수를 하고 싶은 프로그램 두어 개를 제외하고는 시청하는 일이 드물게 되었다. 그 대신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나 예능을 아이패드나 스마트폰으로 라디오처럼 틀어놓고 글을 쓰는 일이 많아졌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혼자 있는 공간에서 경제방송을 더 많이 즐기게 되었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도 가끔 함께 보던 드라마가 시작하는 시간을 알려주거나 내가 발행하는 글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서로 유대를 가지려고 해서 고마웠다. 가끔 내가 발행하는 블로그 글의 맞춤법이나 문맥에 대한 깨알 조언도 해 주었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선택이 자유로운 유튜브 방송에서 본인이 원하는 주제를 찾아보고, 틱톡으로 재미있는 영상 보기도 즐기면서 주로 영상물 시청으로 여가를 보내는 듯했다. 내가 떨어져 사는 가족들의 니즈를 고려해서 넷플릭스 서비스에 가입해서 계정 프로필 4개를 만든 것도 그 무렵이다. 각자 분리된 공간에서 좋아하는 영상을 프리미엄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남편이 덜 심심하게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내 바램은 성공인듯 보였다.
그런데 각자 헤어져 있을 때는 서로 불편한 것이 없이 자유롭게 살다가 주말에 함께 있게 되니 하나씩 불편한 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러클 모닝 아침 독서를 즐기던 나는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남편과 함께 밤늦게까지 영상물을 보거나 대화를 하다 보니 늦은 아침을 맞이하기가 일쑤였다. 문제는 내가 주말에 바뀐 컨디션으로 새벽까지 통 잠이 오질 않다 보니 평일에도 늦잠을 자게 되어 아침 독서시간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는 것. 결국 요즘은 아침 독서를 포기하고 틈나는 대로 읽기로 했다. 주말과 평일의 리듬이 달라지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 남편은 음악을 늘 켜 두고 잠을 청해서인지 주말에도 자면서 유튜브 노래를 틀어 두었고, 작은 소리에도 예민한 나는 잠들기가 어려웠다. 아침에 일어나는 동시에 경제방송을 틀다 보니 같이 경제공부를 하게 될 판이었다. 주식이라도 투자해 봐야겠다고 했더니 소소한 투자금을 내 통장으로 넣어 주는 뜻밖의 수확이 생겨서 좋았지만 계속 집중하는 게 나로선 즐거운 일은 아니다. 함께 본방 사수하던 드라마도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져서 가끔 서로 조율을 해야 했다. 남편의 유튜브 영상 시청은 나에게 유익한 일로 연결되기도 했다. 유튜브로 요리 영상을 찾아보았던 모양이다. 드디어 평일에 하루 2끼 이상 연속적인 집밥으로 지친 나를 위해 특별요리를 해 주겠다고 하더니 제법 근사한 고기 요리를 내놓기도 했다.
함께 있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차이점보다는 공감대에 초점을 맞추어 여가시간을 보냈던 모양이다. 그저 당연히 좋아하는 것이 같으려니 했는데 서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보니 남편이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많은 것을 나에게 양보해 주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구태여 고집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떨어져 지내고서야 남편이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게 된 것이다. 남편이 외국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국보다는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것, 틈나는 대로 경제방송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 팔을 걷어붙이면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 등 등... 그리고 나의 코로나 블루 이후로는 매주 집에 오려고 애쓸 정도로 나를 아낀다는 것도. 주말부부가 되고 나면 배우자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보인다. 또 그 빈자리의 크기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