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택할 수 있고, 온전히 나의 것인 현재의 순간들을 즐길 수 있다. 현재는 나의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의 기준이 되겠다는 결심만 한다면. -행복한 이기주의자 p44'
행복하다'라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을까?
이상하게도 '나는 지금 행복하다'라고 느낀 순간이 많지 않았다. 행복을 너무 거창하고 높은 목표로 생각했던 것일까? 돌이켜 보니, 그때 내가 행복했음을 알겠는데...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을 늘 아쉬워하면서 잡아보려고 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내게 행복이 과거라면 영원히 행복을 돌아보기만 해야 하는 것일까? 행복했다고 떠오르는 과거의 추억을 모아 보았다.
두 손을 호호 불며 조금 덜 추울까 봐 뛰어서 학교에 다녀오던 날, 안방의 아랫목 담요 밑에 손을 넣으면 너무 따뜻해서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방학이 시작하는 날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모르는 것만 콕콕 찍어 물어보는 선생님의 질문이나 시험 대비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매일매일이 두근거렸고, 엄마가 뜨개질하던 안방의 아랫목 담요 속에서 데굴거리며, 좋아하는 만화책 시리즈를 이 밤이 지새도록 봐도 된다는 것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서 해 뜨는 새벽인 줄 알고 '아~~ 숙제도 다 못 했는데 벌써 아침이 왔나?' 울고 싶은 마음으로 후다닥 가방을 챙기려고 보니 평일 아침이 아니라 방학중 저녁 으스름(독일어로는 morgen abend) 일 때 갑자기 온몸에 퍼지는 행복감이란~~ (더 자도 된다!)
여고시절 야간 자기 주도 학습을 하기 전에 저녁 도시락을 먹고 절친과 함께 양치질을 하면서 창문 밖 인적이 드문 들판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막힌 것 없이 황량한 들판을 가득 채우던 그 주홍빛 노을이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이 얼마나 찬란했는지 둘이서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야자 하러 교실로 되돌아 가기 싫을 정도로... 그저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잠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다. '우리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고 무지갯빛 미래는 우리 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다'는 흥분과 함께 왠지 들떠는 가슴을 채우던 순간이었다. 지루한 책과 밤늦도록 공부할 일은 잠시 잊고, 자연이 주는 황홀함에 빠져 있었을 때 누가 물어봤다면 '지금 행복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 또 하나의 은밀한 행복은 비밀을 공유하는 기쁨이었다. 가게의 뒷채에 나란히 붙어 있던 방을 쓰던 우리 삼 남매는 가끔 오빠의 방에 모여 고스톱과 카드놀이를 했다. 저마다 가진 동전 몇 개를 가져와서 흥이 무르익을 때쯤이었다. 가끔 엄마는 불시에 사과나 귤을 가져와서 공부하는 우리를 격려차 방문했는데, 이때 인기척을 들은 사람이 무조건 먼저 두꺼운 솜이불로 모든 것을 순식간에 덮어버리는 게 우리의 작전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와 동생은 자는 척하고 오빠는 책 보는 척을 했었다. 늘 탑을 찍던 오빠를 부모님은 무척 믿고 있었기에 오빠가 함께 하면 뭐든 괜찮았다. 그 '가족 도박'은 오빠가 매 번 이기고 그다음은 내가 나보다 2살 어린 동생이 제일 많이 잃었다. 마지막엔 언제나 동생이 잃은 돈을 우리가 모두 돌려줄 때까지 징징거렸다. 들키면 부모님께 혼날까 지나가던 바람 소리에도 가슴 줄이던 그 아슬아슬한 순간이 돌아보면 행복한 유년시절이다.
한때 인기몰이를 하던 1988에서 주인공이 마지막 편에서 그런 얘기를 한다.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 태산같이 우리를 지켜주던 부모님이 젊으셨던 날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나도 가끔 부모님이 태산같이 지켜주던 그 꼬맹이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먹고 살 걱정과 자식 가르칠 고민 하나 없이 매일매일을 그저 주는 밥 먹고, 책가방 메고 학교 다녀오면 오늘 하루가 끝난 것처럼 홀가분하던 그 시절로~ 기껏해야 맛있는 반찬 한 두 입 더 먹으려고 아웅다웅하던 게 다였다. 아침이면 도마에서 뭔가를 썰던 엄마의 아침밥 짓는 소리와 부모님이 나누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머리맡에서 들려오고 '오늘 반찬은 뭘까?' 즐거운 기대에 가득 차 있던 그 날로 하루만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잠깐 외출했다 오신 것처럼 안방에 떡하니 앉아 계시고 지금은 팔순인 어머니가 큰 소리로 우리를 깨우던 그 날 아침으로~~ 그 행복한 하루하루를 야금야금 좀 더 즐기며 살았더라면...
내가 돌아가고 싶은 행복했던 순간은 대단한 행운을 잡은 날도 엄청난 성공을 거둔 날도 아니었다.
요즘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예전에 꿈꾸던 거창한 꿈이 아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가격이 갑자기 폭등하여 부자가 된다든가 자녀를 글로벌 리더로 키우고자 하는 원대하고 야무진 꿈은 이미 내려놓은 지 오래다. 조기교육의 광풍에 첫아이를 시간 단위로 먹이고 재우고 읽히던 허망함은 세월 지나면 웃음이 나온다. 뭔가에 달달거리며 사는 일에 인생의 반 이상을 바치고 나니 이제야 내가 행복하지 못했던 이유가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몰랐다는 점과 바로 나를 선택에서 늘 꼴찌에 두고 살았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이렇게 덧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도 되는 걸까? 살아 보니 밥 세 끼 안 먹어도 될 만큼 먹는 것에 욕심도 줄고 돈으로 사는 물건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나를 붙들어주지 않더라는 깨달음이 올 때쯤, 행복의 중심에 나를 세우고 보니 어느 날부터 지금 이 순간이 조금씩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남편과 오붓하게 TV 드라마를 보고 늦은 아침 공원 산책을 할 때, 퇴근하고 가공식품이 아닌 건강식 자연밥상을 차릴 때, 설거지를 마친 남편이 차받침도 없이 그 뜨거운 차를 들고 와서 내 손가락에 건네주는 막 추출한 원두커피의 향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날마다 나를 재촉하던 메신저도 출퇴근의 다급한 가슴두근거림도 없다. 대신에 하고 싶은 공부와 읽고 싶은 책을 쌓아놓고 내 마음대로 24시간을 설계할 수 있는 지금이 나는 너무 행복하다. 뒤도 못 돌아보고 워킹맘으로만 살았던 지난 26년 동안 감히 꺼내보지도 못한 나의 작은 꿈들을 꺼내 놓고 하나씩 버킷리스트를 채워가는 지금이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았던 지난 날보다 더 행복하다면 나는 이기적인 사람인가? 나는 행복을 기다리고만 있지 않기로 했다!
가만히 끈기 있게 참고 나를 희생하고 기다리면 행복은 커녕 견딘 세월만큼 푸념이 늘어가고 후회의 시간만 누적될 뿐이다. 행복은 기다리는 게 아니다. 행복해지려면 그냥 지금 이 순간을 누리면 된다! 기쁨을 느낄 때마다 '나는 행복하다'라고 느낄 것!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다면 오늘 행복하면 된다. 행복의 기준은 나! 단지 그것뿐이다! 그저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웃어주면 된다. 행복한 사람은 늘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