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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느 Jan 05. 2021

위기의 순간 나는 재생 버튼을 누른다.

넷플릭스  미드 리뷰


<위기의 주부들> 위기일까요? 기회일까요?


밖에 나가면 비 올까 살짝 걱정되는 날엔 영화나 드라마가 제격이다. 직업상 수업시간에 청소년에게 보여 줄 만한 영어교육 콘텐츠를 많이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에서 십여 년 전부터 푹 빠져서 여러 번 본 드라마가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이다. 2011년 9월부터 2012년 5월 까지 편성되어 23부작으로 방영 종료되었다. 넷플릭스에도 업로드되어 꾸준히 입소문을 통해 지금도 인기 있는 미드이기도 하다. 안 풀리는 가정사가 있을 때 지금도 다시 이 드라마의 재생 버튼을 누른다.  때로는 풀리지 않는 숙제의 힌트를 찾고 깜작 놀라기도 한다.


미드는 드라마를 좋아하고 영어공부도 하려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콘텐츠이다. 이 드라마 역시 가정생활과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이 대부분이다. 대사가 평범하고 그다지 많이 빠르지 않은 속도라 더 마음에 들고, 왠지 영어가 갑자기 잘 들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해 준다. 사실 이 드라마에 빠져 시즌을 다 주행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영어 청취력도 높아지더라~~ 문화적 차이는 당연 감안하고 봐야 할 성인용이지만 시대적 정신적 유산이 지금과 별 차이가 없다. 여러 가지 사회적 여건을 고려하면 이제야 우리  사회 결혼생활을 좀 더 평등하게 나누는  수준에 와 있는 것 같아 지금도 공감이 팍팍될 때가 있다.




Why?


그 많은 드라마 중에 이 드라마를 결혼한 사람들에게 추천목록에 올리는 이유는 위기의 주부들이 어떻게 인생의 위기를 감당하는지를 보면서 나도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 몰입하여 그 길고 긴 엄마들의 사춘기를 헤치고 나왔던 것 같다. 그런 것쯤 얼마든지 상대해 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며 나의 회복탄력성을 과신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인생은 알 수 없는 것!  그 어떤 인간관 계보다 가족관계가 살다 보면 가장 힘든 숙제이다. 가족은 나의 선택이 아니다. 배우자와의 결혼은 선택이었을망정, 거기서 오는 필연적인 인간관계는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만남이다. 세월이 가면 어제의 당신이 오늘의 당신이 아니듯이 자식과 남편도 다른 환경에 부대끼면서 전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닌 것이다. 남이면 피할수도 있고 끊어버릴 수도 있으련만 이건 살아있는 동안 영원한 관계이니까. 오늘 가족들과 행복했던 당신도 어느 날 쌀을 씻다가 부엌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고 싶은 그날이 올 수도 있다.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그리고 절친에게 배신당한 것 같은 기분~~ 그럴 때 예방주사를 미리 맞는 셈 치고 보면 좋을 드라마이다.



Who?



이 드라마는 교외에 있는 중산층 주부 '브리 밴', '르넷 스카보', '수잔 마이어' '가브리엘' 4명이 중심이 되어 그들과 그들 가정에서 일어나는 다소 기묘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고 별 이야깃거리도 없을 것 같은  미국 중산층 얘기에 기묘한 사건과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서 이들의 인생도 같이 꼬이기 시작한다. 어느 날 그들이 같이 알고 지내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친구 1명이 권총 자살을 하면서부터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기서 내가 아끼는 이 드라마의 주연급 등장인물의 소개를 잠깐 해 볼까 한다. 전업주부 브리 밴은 이상적인 프로주부이다.  의사의 아내로 풍족한 삶에 멀쩡한 아들딸을 한 명씩 가진 집안 일과 손님 접대, 요리, 인테리어, 사교 그야말로 못하는 게 없는 homemaker이다. 게다가 아름답고 교양까지 겸비한... 이상적인 현모양처. 감정 조율을 너무 잘하고 언행에 흠잡을 데 없는 똑똑한 여성이다. 그녀의 패션과 교양 있는 말투까지 따라 해 보고 싶은 세련된 주부 스타일.


워킹맘 르넷 스카보는 남편보다 더 능력 있는 직장에서 업무처리능력을 인정받고 승승장구 경력을 쌓고 있는 쌍둥이 아들로 등장해서 계속 남매를 낳게 되는 슈퍼우먼 다둥이 엄마이다. 다정다감하고 일하는 아내를 너무 잘 지원하는 남편을 만나 훈훈한 가정을 이루고 산다. 합리적이고 강단이 있으며 사업가적 기질이 다분한 책임감 있는 모범적인 워킹맘으로 등장한다. 이 시즌을 처음 보는 당시 나의 워너비 모델이기도 했다.


싱글맘 수잔 마이어는 의사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고 똑똑하고 당찬 딸을 키우며 사는 싱글맘이다. 요리는 영 못하고 돈 버는 능력도 달리지만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소신 있는 성격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정을 많이 쏟는 타입. 남에게 거친 말 못 하고 딸에게는 친구 같은 엄마이기도 다. 가끔 사람에게 통찰력 있는 센스를 발휘하는데 남자 복이 없어 매력적인 외모에도 불구하고 늘 파트너 복이 없는 대책 없는 로맨티시스트 싱글맘이다. 따뜻한 품성으로 공감의 여왕이라 시작은 좋은데 남는게 별로 없다.


전업주부 가브리엘은 전직 모델 출신의 부유한 사업가의 아내로 등장한다. 라틴계의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로 집안일 그런 거 하나 모르고 주로 자신에게 홀딱 빠진 남편이 주는 돈으로 호강하고 산다. 성격이 소탈하고 직선적이어서 감정을 쌓아두지 못하는 성격으로 매사에 통이 크고 시원시원 고민을 모르는 성격. 할 줄 아는 건 연애의 밀당과 옷 잘 입고 몸매 잘 가꾸는 것 정도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하루씩이라도 바꿔서 살아 보고 싶은 개성 있고 매력 넘치는 캐릭터를 배우들이 잘 소화해주어서인지 이들이 각각의 배우자와 함께 엮어 나가는 이야기는 엄청난 흡인력으로 연속적으로 재생 버튼을 누르게 한다.



What?


<위기의 주부들> 내용은 주부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치고는 매우 극적인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나면 내가 끙끙거리고 있는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루할 틈이 없다. 이보다 더 극적인 드라마는 없을 정도로 정신 차릴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면서 과거가 현재에 현재가 미래에 영향을 주면서 빠른 속도로 내용이 전개된다.


사실 크게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이들이 사춘기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동안 집안에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 한두 개씩은 생긴다. 이 미드는 그런 면에서는 삶에 대한 지혜도 주고 더 큰 재앙을 어떻게 겪는지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그리고 훗날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그 사소한 일이 나에게 어떻게 부메랑처럼 돌아오는지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과 영감을 준다.


사람들이 다 언제나 현명하고 똑똑하게 처신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가족이 저지른 한순간의 잘못으로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자초하고 어제의 친구와 오늘의 적이 되는 일~~ 오늘 내가 배우자에게 했던 불성실함과 소통의 결핍이 어떤 결과로 돌아오는지 섬찟할 수도 있다. 


자식 일이라면 뭐든 못할게 없는 르넷의 가정사를 통해 어떻게 사랑과 의리를 지켜야 하는지도 함께 고민해 본다, 인연이 끝나면 새로운 인연이 어떻게 연결되어 전혀 다른 삶으로 인도하는가를 지켜보는 것도 극적 재미 중의 하나이다. 실제로도 이 배우는 자녀 입시비리와 관련 최근 매스컴에 올랐으니  웃고픈 현실이다.


모든 것을 다 가졌던 브리가 남편의 외도, 아들의 사고 이후에 어떻게 자신을 들어 올리고... 기대했던 자녀의 일탈에  어떻게 대처하면서 자신을 구해내는지. 하마터면 놓칠 뻔한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여 전업주부에서 사업가로 대성하는지도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안락하게 살던 사람이 어느 날 초라하고 볼품없게 파산한다면 어떻게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서 자신을 추슬러야 할지 그 과정이 궁금하다면 가브리엘의 삶도 들여다볼 만하다. 자기 몸매밖에 관심 없던 가브리엘이 남편의 파산으로 하루아침에 내팽개쳐지는 신세가 되었을 때 그녀에겐 남편을 닮은 두 아이가 있었다. 화려한 모델 출신 경단녀의 약점을 딛고 자신의 장점을 살려 인터넷 사업가로 대성할 줄은 기대 밖이었다.


이 남자 저 남자 데이트만 하고 소득은 없던 싱글맘 수잔은 내 인생의 멋진 남자를 드디어 만나게 된다.  내가 전 에피소드에서 가장 매력 있는 남성으로 인정하는 사람이다.   불운한 과거를 딛고 핸섬한 외모만큼 따뜻한 품성에 거절할 때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결혼에 실패한 싱글맘이 새로운 가정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고 전 남편과 딸과의 관계, 새로운 아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꽤 설득력 있는 에피소드가 마음에 닿는다. 왜 매력적인 여자들이 가끔 좋은 남자를 놓치는지 이유를 알아보는 것도 싱글에겐 덤이다.


How?


<위기의 주부들>의 원제인 <Desperate Housewives>의 ‘Desperate’은 '절망적인, 자포자기한'의 뜻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위기와 기회를 맞이한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드라마는 그런 질문을 계속하게 만든다. 드라마의 재미와 극적 구성을 위해서 가능한 최고로 위기의 수준을 끌어올리기는 하지만 결혼생활의 위기란 위기는 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듯하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위기를 만날 때 누구나 그렇듯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멈추는 것은 쉽다. 매일 술에 취해 거의 알코올 중독이 되기도 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침대 속에서 몇 날 며칠을 뒹굴어보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이 만만하다고 상처가 될지 알면서 가장 약한 가족에게 내 감정을 다 풀어내 보기도 한다. 나를 챙기지 못하고 나의 자존감이 무너지고 내 주변 사람들을 본의 아니게 정서적으로 학대하다 보면 어느 날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온다.


그때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상상 이상이다. Desperate Housewives에서 질풍노도 같은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는 엄마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남의 인생이지만 다양한 삶의 모습을 통해 결혼생활과 인간관계에 대한 의미 있는 시간을 준다.



위기의 주부들! 위기일까 아니면 기회일까?

늦은 아침 아이들과 남편이 떠난 시간 함께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카드 패를 돌리던 브리와 르넷, 수잔, 가브리엘.... 어느 날 교외의 주택가에서 가까운 이웃으로 만나 한가롭게 수다로 풀던 하루하루가 그들에게 먼 훗날 좋은 추억이 되었듯이~~ 그들이 위기를 이겨내고 스스로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데 가장 큰 힘을 보태 주는 사람들은 결국 가까운 이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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