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카문학상 수상작
그를 보았다. 그의 양팔은 매우 짧다. 일반인의 삼분의 일 정도의 길이. 아마 후천적 장애가 아니라 선천적인 것일 거라, 그리 여겼다. 그는 이사 중이다. 여러 개의 큰 트렁크들을 입과 턱과 다리, 그리고 남들보다 짧은 팔로 밀고 당기며 건물 안으로 들인다. 그의 가족은 어여쁜 아내와 딸, 이렇게 세 식구다. 아내는 주차하러 간 듯하고 딸아이는 그가 비집고 열어놓은 문 사이로 머리를 내밀어 살며시 들어와 선다. 캐나다로 와 갓 살게 된 콘도는 보안이 최우선이더라. 딱 보안만을 생각해 설계된, Remote Key Fob으로 여는 자동 잠금장치 문이 버겁다. 가만 두면 저절로 닫힌다. 아니, 잠긴다. 닫힌 문엔 재차 열쇠를 대어야 한다. 그제야 다시 열린다. 열어두면 닫히고, 열려면 번거로운 문 앞에 끙끙댄다. 짧은 양 팔과 다리, 온몸으로 짐을 옮기며 그는 딸아이도 돌본다. 주차장에 간 엄마가 오기까지 아이에게 쉴 새 없이 달래는 듯 말을 쏟는다. 부족한 영어실력이라 완벽히 알아듣진 못해도 그의 순간순간의 절박함의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엄마 곧 올 거야.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야 돼. 아빠가 짐 옮길게.”
네. 곱게 답한 아이는 기특하게도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아빠인 그를 본다. 그의 이마와 짧게 자른 머리의 정수리, 얇은 티셔츠가 덮은 등에 땀이 방울져 솟는다. 온몸으로, 또 음성과 눈빛으로 쉴 틈 없이 움직이는 그는 가진 힘을 끝까지 쥐어짜는 듯 보인다.
머릿속 매뉴얼들을 잠시 뒤져보았다. 이런 순간 어떻게 하라고 학교에서 배웠었지? 꽤 성실한 학생이라 불리며 학교생활을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 이런 상황에 어찌해야 할지는 없었나 보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속에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 봐도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속에 이는 일종의 양심인지, 도덕심인지, 무엇인지 모를 꿈틀거리며 일렀다. 바쁘게 돌려본 기억은 더욱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초등학교까지 더듬었다. 그러다 바른생활 어느 한 귀퉁이에서 봤음직한 착한 일이 절로 튀어나왔다.
가슴 높은 곳에서 들숨을 잠시간 담았다 내쉬었다. 손을 문가로 뻗으며 주춤주춤 용기 내 입을 열었다.
“May I help you?”
그제야 쳐다본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대답을 기다리며 하지 않던 짓을 한 것이 잘못되었나. 제대로 한 것이었나. 무수히 많은 질문이 자신에게로 쏟아졌다. 찰나가 길었다.
“No thanks."
망설임이 없다. 단단하고 엄격한 목소리다. 문으로 향하던 손이 갈 길을 잃어 무안했다. 미처 뻗지도, 갈무리해 담지도 못한 채 애매하게 허공에서 멈추었다. 그 손의 주인인 몸도 둘 곳을 몰라 엉거주춤 바로 서지도, 가로 서지도 못한 채 비스듬히 있다. 도움을 주는 것이 지독히도 싫었던가. 아니면 영어를 잘 못했나, 말을 잘못한 것인가. 기어이 그는 모든 짐을 스스로 다 옮겨 놓고, 딸아이를 다독여 로비 가운데 짐을 정렬해둔다. 그 사이 아내가 돌아온다. 아내가 그를 도와 짐을 옮긴다. 가족이 오른 엘리베이터는 9층에서 멈춘다. 한 가족이 그렇게 새로이 왔다. 그 자리에 엉거주춤 서서 그대로 혼자 남겨졌다. 보안이 철저한 신식 콘도의 쓸데없이 높은 천정과 쓰이지 않는 널따란 입구 로비가 아무도 없이 휑하다.
어느 날, 또 그를 보았다.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오던 오후 엘리베이터에 이미 승객들이 가득하다. 한 명은 안경 쓴 남자, 한 명은 스카프를 두른 여자, 또 다른 한 명은 그다. 발을 내딛어야지. 아주 잠시 잠깐 멈칫했다. 갈 길을 잃었던 손처럼 갈 길을 잃은 눈동자가 엘리베이터 곳곳을 훑었다. 구구절절한 글귀라도 읽는 듯 벽 어딘가에서 바삐 움직이는 눈동자는 그에게로 향하지 못했다.
“Hello."
유쾌하고 밝음 음성이다. 정말 안녕하다는 듯, 기쁨이 배인 목소리가 아래에서 위로 향한다. 헤매던 눈동자를 목소리로 옮겼다. 첫째 아이다. 그를 보며 아이가 환희 웃는다. 즐겁고 반가운 듯이. 아이는 엘리베이터의 이웃들이 그저 좋다. 평소에도 무심한 콘도의 이웃의 무표정은 알바 아니라는 듯 늘 하던 그대로 인사하던 아이는 이번에도 똑같다. Hello. 안녕하세요.
“Hello."
아이보다 더 높은 톤으로 그가 답한다. 아이와 그가 눈을 마주치고 웃는다. 날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단호한 거절은 볼 수 없다. 그저 Hello만 부드러이 주고 또 받는다. 9층에 도착한다. 그가 내린다. 아이가 한 번 더 보탠다.
“Have a good day."
"You, too. Have a good day."
아이는 고민하지 않는다. 거르지 않고, 하고 싶은 그대로 한다. 그의 짧은 팔이 전혀 어색하게 보이지 않는 듯 자연스럽기만 하다.
“네? 이해해줘야 해요.”
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물었다. 아이의 대답에 잠시 숨을 멎었다. 지난 36년간, 장애인과 같은 학교, 교실에 함께 앉아본 적이 있던가. 가까이 있어본 적이 있던가. 장애인이 안 살던 나라였던가. 아니면, 그들을 볼 수 없는 나라였던가. ‘불쌍한 장애인을 보면 도와주자’ 학교에서 배웠다. 로비에서 만난 불쌍한 장애인, 그를 바른생활에서 배운 대로 도와야지. 그렇게 머리와 몸이 움직였다. 그날 밤 잠을 자지 못했다. 잘 수 없었다. 뜬 눈을 꾸벅이며 들숨과 날숨이 번갈아 천천히 오르내렸다.
다시 9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그와 아내, 그리고 딸아이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아이 둘과 나,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동시에 말한다. Hello. 그도, 그의 아내도, 딸아이도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 답한다. Hello. 그래, 그저 Hello. 그거면 된다.
한카문학상에 출품했다가 당선된 작품. 아직 수필이 익지 않았을 때 썼던 글이다. 지금도 수필이 어떤 특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
<심사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