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발가락 양말
언제나 발이 문제다. 칼발에 발이 작은데 발가락이 길고 살이 약해서 어떤 신발을 신어도, 그게 모두가 편하다고 하는 신발이라고 해도 피를 보는데, 심지어 오늘은 평소 일주일에 나흘 정도를 신고 이번 여행에도 신고 온 반스 올드스쿨을 신었는데도 결국 피를 봤다. 오전 오후 내내 검지 부근이 아프다 싶더니 숙소에 와서 신발을 벗으니 왼쪽 양말의 앞코 쪽에 피가 꽤 배어나와 있었다. 헐. “<여고괴담> 같은 데서 신발 안에 압정 넣어놓은 거 같잖아요.” 양말을 버리고, 피를 닦아내고 보니 다행히 발톱이 나간 건 아니고 긴 발가락들이 서로 주체를 못하다가 중지 발가락 발톱이 검지 발가락 옆쪽에 파고들어 피가 난 것으로... 더 이상 쓰고 싶지는 않다.
셋이 나란히 한숨 까무룩 잠들었다가 다시 부은 얼굴로 나갔다. 나는 내일 신을 양말을 신고 나가서 양말을 사러 돌아다녔다. 지하상가를 간다고 해서 명동 지하상가를 생각하고 잠시 두려워했으나, 후쿠오카는 후쿠오카. 양말도 하나같이 예쁜 가운데, 발가락 양말을 사서 발가락들 사이의 마찰을 최소화하라는 말을 뜨뜻미지근하게 듣던 나는, 1000엔에 양말 세쌍을 파는 가게에서 한 쌍의 발가락 양말을 샀다. 처음 산 발가락 양말은 내일 신을 것이다. 어제는 오늘 아침에 뭘 먹을지만 생각했고, 오늘은 내일 아침에 뭘 먹을지, 그리고 발가락 양말은 어떨지를 생각하며 잠든다.
오늘은 그 와중에도 25,000 보를 걸었다.
아이패드 프로와 펜슬을 산 게 아까워서 시작한
나 자신과의 1년 짜리 약속.
ps. 나에게는 셀프 약속을 잘 어기는 재주가 있다.